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기사 (15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52)신안 주씨(新安朱氏)-151,227명 시조 청계공 주 잠(朱潛)은 중국 남송 사람으로 유학자인 주 자(朱子)의 증손이다. 신안은 중국 하남성의 지명이다. 한림원태학사였던 그는 남송이 몽고에 망하자 아들 주여경(朱餘慶)과 문하생 섭공제 등 7명의 학사를 데리고 고려로 망명했다.중원의 주인이 된 원은 고려에 주 잠의 압송을 요구했다. 주 잠은 이때 이름을 주적덕(朱積德)이라 고치고 용담(현 전북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43 (51)광주 이씨(廣州李氏)-158,249명 시조 이 당(李唐)은 고려 말에 국자감 생원시에 합격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흥지승람(興地勝覽)’경기도 광주 인물 편에 의하면 그는 원래 광주 출신 관리로 국자(國子) 생원에 올라 행실이 어질었으며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고 한다.1세조는 시조의 아들로 고려 말에 판전교사사를 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41 (50)하동 정씨(河東鄭氏)-158,396명 하동 정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3계통이 있다. 밀직공 국룡파는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파조로 한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을 1세조로 10세 정인지,12세 정여창 등으로 이어진다. 정승공 응파는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김자광록대부, 도첨의 좌정승 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파조로 하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29 (49)연안 차씨(延安車氏)-161,325명 연안 차씨의 득성시조(得姓始祖)는 차무일(車無一)이고 시조는 고려 왕 건 때 공을 세운 차효전(車孝全)이다. 차무일은 신라 태조가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워 시중벼슬에 오르고 왕으로부터 차씨 성을 받았다. 1258년(고종 45) 차송우(車松祐)가 공을 세워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받고 지복주사(知復州事)가 되었다. 복주는 연안의 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26 (48)단양 우씨(丹陽禹氏)-162,479명 시조 우 현(禹玄)은 고려 때 호장을 지냈다. 그의 10세손 우현보가 고려 공양왕 때 단양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으로 했다. 우현보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그는 청백리에 오르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우중대는 단양우씨를 명문의 위치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의 아들 천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22 (47)강릉 김씨(江陵金氏)-165,953명 시조는 명주군(강릉의 옛 이름)왕 김주원(金周元)이다. 그는 신라 통일을 이룩한 무열왕 김춘추의 6세손이며 37대 선덕왕 때 각간으로 시중(신라 최고 관직)겸 병부령(군사 총책임자)을 지냈다. 신라 6만 군을 통솔하는 총사령탑으로 그의 권한은 막강했다. 그는 명주를 중심으로 양양·삼척·울진 등 영동 일대를 통치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18 (46)창녕 성씨(昌寧成氏)-167,903명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 때 호장을 지냈다. 호장은 고려시대에 지방민을 다스리는 호족장이다. 성인보 이래 대대로 창녕에서 호장을 지낸 후손들이 창녕을 본관으로 삼았다. 성씨가 명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성인보의 아들 성송국이 문하시중과 군기감을 역임하면서 시작된다.창녕성씨의 계보는 성송국의 아들 성공필과 성한필 등 형제 대에서 ‘노상파(路上派)’와 ‘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16 (45)이천 서씨(利川徐氏)-172,072명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52대 왕인 효공왕(재위기간 : 897~912) 때에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냈다. 그러나 나라의 운이 다함을 알고 이천 효양산에 복성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자칭 처사라 하고 후진 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그래서 후손들이 은거지인 이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효양산에 있으며 음력 10월 1일에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12 (44)강릉 유씨(江陵劉氏)-178,913명 시조 유 전(劉筌)은 중국 송나라 사람이다. 고려 문종 36년(1082년) 임팔급, 설인검, 허 동, 송 규, 최 호, 권지기, 공덕수 등 8학사의 일원으로 고려에 귀화했다. 9경, 백가서 천문, 지리에 정통했던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경북 영일에 정착, 후진양성에 노력했다.유 전의 12세손 유창이 조선 개국공신으로 강릉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유창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09 (43)해주 최씨(海州崔氏)-181,840명 시조 최 온(崔溫)은 널리 알려진 해동공자 최 충의 아버지이다. 최 온은 해주 대령군 수양산 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 곳의 별칭이 고죽군(孤竹郡)이어서 고죽최씨라고도 한다. 최 온은 일찍이 해주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떨쳤다. 문장으로도 명성이 높았고, 뒤에 판사부사를 지냈다. 그 뒤 여러 대에 걸쳐 해주서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해주를 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06 (42)성주 이씨(星州李氏)-186,188명 시조 이순유(李純由)는 신라가 망하자 지금의 경북 성주읍 경산동에 숨어 살았다. 고려 태조는 "나의 신하는 아니지만 같은 백성"이라며 호장 벼슬을 내린다. 후손들이 대대로 호장을 맡아오면서 성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성주는 경북 성주군의 지명이다.고종 때의 인물 이장경은 성주이씨의 중시조다.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4:53 (41)법흥 김씨(法興金氏)-199,544명 법흥김씨(法興金氏)의 시조 김 춘(金春)의 선대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후손인 김렴이다. 그가 고려 때 김해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경순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경주김씨와 한 뿌리다.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와는 뿌리가 다르다.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 참전했다가 우리나라에 귀화, 김씨로 사성(賜姓)된 김충선계의 김해김씨(우록김씨)와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4:50 (40)은진 송씨(恩津宋氏)-208,816명 (40)은진 송씨(恩津宋氏)-208,816명 우리나라 모든 송(宋) 씨의 시조는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던 송주은이다. 그 후 고려 때 그의 후손 송자영이 송유익(여산군), 송천익(은진군), 송문익(서산군) 등 3형제를 두었다. 이들이 송씨의 3대 산맥을 이룬다. 은진송씨는 이들 3형제 중 둘째 송천익의 후손이다. 그러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를 지내고 은진군에 봉해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6 16:33 (39)평택 임씨(平澤林氏)-210,089명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 사람으로 정치적인 화를 피해 우리나라에 온 8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신라에서 이부상서를 역임하고 팽성(현재의 평택)에 살았다. 그러나 그 후의 기록이 없어서 고려 말에 세자전객령을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중시조(1세)로 한다. 평택임씨는 임경업으로 이어오는 계통(전객령파)이 있으며 특히 임경업의 8형제가 모두 8개 파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6 16:30 (38)청송 심씨(靑松沈氏)-212,717명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때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 심덕부가 고려 공민왕 때 왜구를 격퇴하여 공을 세운 뒤 청송백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증손인 심덕부, 심원부 형제에서 크게 두 파로 갈린다. 이성계의 역성혁명 후 좌의정을 지낸 형 심덕부의 후손은 대대로 서울에서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동생 심원부의 자손들은 새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6 16:28 (37)연일 정씨(延日鄭氏)-216,510명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영일정씨(迎日鄭氏) 혹은 오천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연일은 포항시 영일읍(迎日邑)의 옛 지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연일은 포항시 연일읍의 지명이며, 오천은 포항시 오천읍의 지명이다. 지금도 연일, 영일, 오천으로 본관을 각각 쓰고 있다. 경북 영일(迎日)은 해돋이, 해맞이 뜻을 지닌 지명이다. 지난 95년 영일군과 포항시가 통합되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6 16:24 (36)남원 양씨(南原梁氏)-218,546명 양(梁) 씨는 제주양씨, 남원양씨, 충주양씨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제주양씨에서 분관되었다. 우리나라 모든 양씨(梁氏)의 시조는 탐라(오늘날 제주도) 개국 설화의 삼신인 중 한 사람인 양을나(良乙那)이다. 제주삼성인 양(梁), 고(高), 부(夫) 씨의 시조인 삼신인은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등 세 명이다.양씨는 원래 양(良) 자를 성씨로 썼다. 시조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6 16:21 (35)여산 송씨(礪山宋氏)-232,753명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본관을 여산으로 삼았다. 시조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때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그는 3형제를 두었다. 장남 송유익은 여산송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송천익은 은진송씨, 막내 송문익은 서산송씨의 시조가 되어 우리나라 송씨의 근간을 이룬다.고려 후기 원종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5 15:04 (34)나주 임씨(羅州林氏)-236,877명 시조 임 비(林庇)는 고려 충렬왕 때 대장군이었다. 시조의 9세손 임 탁이 해남 감무를 지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회진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본래는 회진임씨(會津林氏)였으나 회진이 나주에 속하면서 나주임씨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후손들은 회진을 본관으로 한다.임 붕은 조선 중종 때 경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5 15:02 (33)진주 정씨(晋州鄭氏)-238,505명 진주정씨는 동성동본이면서도 각각 시조를 달리하는 8개 파가 있다. 이 가운데 충장공파, 은열공파, 공대공파, 어사공파 등 4개 파가 주류를 이룬다. 본관 진주는 고려조 역대 선조들의 세거지이다. 진주정씨는 고려의 개국에 참여한 집안으로 고려조에 이미 수많은 인재를 냈다. 조선 개국 후에도 탄탄한 인맥을 형성했다.▲충장공파(忠莊公派)의 시조 정 예(鄭藝)는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5 14:56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