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사 (1,70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100)청도 김씨(淸道金氏)-75,567명 (100)청도 김씨(淸道金氏)-75,567명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의 7세손이며 고려 때 시중을 지낸 김여흥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의 난이 일어나자 조충을 따라 출정한 뒤 개선한다. 후에 청도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청도를 본관으로 삼았다.청도김씨 후손들은 시조 김지대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남긴 ‘충효쌍수(忠孝雙手)’를 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36 (99)경주 손씨(慶州孫氏)-78,450명 시조 손 순(孫順)은 신라 개국 당시 6부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손사성은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손 욱과 손 소(孫昭) 형제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가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손 소는 조선 초기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그는 세조 5년 김종직과 함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33 (98)무안 박씨(務安朴氏)-78,817명 시조 박진승(朴進昇)은 신라 경명왕의 여섯 째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5세손이다. 그는 고려 초 나라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무안을 본관으로 삼았다.박진승의 아들 박 섬은 고려 현종 때 공신이며 명신으로 이름이 났다. 그의 증손으로 당대에 학문이 뛰어났던 박승중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시독학사를 지냈다. 박 섬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31 (97)연안 김씨(延安金氏)-79,788명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이다. 그는 고려 명종 때 국자감의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내고 가문을 일으킨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을 연안으로 삼은 것은 선대에서 연안으로 귀양 간 인물이 있었기 때문으로 전한다. 연안김씨는 22개의 파(派)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파는 17개 파이다중종 때 영의정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28 (96)삼척 김씨(三陟金氏)-79,985명 시조 김 추(金錘)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로 문하시중을 지내고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자손들이 관향을 삼척(三陟)으로 하였다. 그의 외아들 김위옹(金渭翁)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졌다. 실직군은 삼척시의 옛 이름이다. 김위옹의 묘소는 삼척군 삼척읍 성내리 갈야산에 있으며 음력 3월 15일 향사한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24 (95)나주 정씨(羅州丁氏)-82,863명 나주정씨는 본관이 같고 성이 다른 두 개의 나주정씨가 있다. 하나는 나주정씨(羅州丁氏)이고, 또 하나는 나주정씨(羅州鄭氏)이다. 한문 자체가 다른 성씨이지만 한글 성이 똑같아 언뜻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인구도 거의 비슷해 더욱 혼란스럽다.2000년 현재 나주정씨(羅州丁氏)는 82,863명이고, 나주정씨(羅州鄭氏)는 93,845명으로 정(鄭) 씨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22 (94)영산 신씨(靈山辛氏)-83,798명 시조 신 경(辛鏡)은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 온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른다. 그 뒤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터를 잡았다. 신씨는 9세손 때 영산과 영월로 본관이 갈라진다. 2000년 현재 영산신씨는 83,798명, 영월신씨는 67,489명으로 영산신씨가 더 많다. 한편 최근에 발견한 신경의 4세손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20 (93)안동 장씨(安東長氏)-83,961명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장군인 장 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5살 되던 892년(신라 진성여왕 4) 나라 정치가 문란하자 이를 피해 아버지가 신라에 망명 할 때에 따라 들어와서 강릉에 살다가 경북 노전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18세 때에 중국으로 파견하는 정조사를 따라 다시 중국에 들어가 24세 때 문과에 장원 하였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14 (92)고성 이씨(固城李氏)-84,383명 시조 이 황(李璜)의 선대는 중국 한나라 사람이다. 한무제 때 중서사인이었던 이 반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온 뒤 눌러 살게 되었다. 이 황은 그 후손으로 24세손이다. 이 황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올라 이부상서에 이르고 고성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고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철성(鐵城)은 고성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철성을 본관으로 하는 철성이씨(鐵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12 (91)순천 박씨(順天朴氏)-87,631명 시조 박영규(朴英規)는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의 후손 박란봉(朴蘭鳳)이 순천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는 원래 순천 사람으로 견 훤의 사위다. 그는 견훤이 아들 신검과의 불화로 고려 왕 건에게 도피하자 고려에 귀순하여 공을 세운다. 그 뒤 박영규는 왕 건과 사돈을 맺는다. 큰 딸은 태조의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이 되었고 나머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03 (90)성주 배씨(星州裵氏)-90,239명 성산(星山)과 성주(星州)는 같은 지명이다. 따라서 성주배씨와 성산배씨는 뿌리가 같다. 그러나 지금도 본관을 성주와 성산으로 각각 쓰고 있다. 시조 배위준(裵位俊)은 배현경(裵玄慶)의 후손으로 고려조에 삼중대광벽상공신에 올랐다. 본관을 성주로 정한 것은 그의 현손 배인경이 고려 원종 때 흥안(성산의 옛이름)군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조에 성산군에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9 (89)벽진 이씨(碧珍李氏)-91,907명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벽진(碧珍)장군 이총언(李悤言)이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태조는 그를 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벽진장군에 봉하고‘백자천손 대대로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자’는 친서를 보냈다.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벽진으로 하였다. 벽진은 경북 성주군 벽진면의 지명이다. 매년 10월 3일 경북 성주군 벽진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7 (88)초계 정씨(草溪鄭氏)-93,586명 시조 정배걸(鄭倍傑)은 1017년(현종 8)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상서와 중추원사를 지냈다. 그는 초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성장한 뒤 초계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초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초계는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지명이다.정배걸은 개인 서당을 열어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문종 이후 개경의 12사학 중 하나인 홍문공도(弘文公徒)를 이루었다. 홍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5 (87)나주 정씨(羅州鄭氏)-93,845명 나주정씨(羅州鄭氏)의 시조 정해(鄭諧)는 고려 중엽 때 사람이다. 그의 증손 정가신(鄭可臣, 1224~1298)이 고려 고종 때 문과에 올라 수사도(守司徒)를 지낸 뒤 군기감에 추증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나주에 정착하면서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정가신(鄭可臣)은 나주 사람으로 자는 남헌, 호는 설재(雪齋),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그는 전남 나주시 동강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3 (86)청풍 김씨(淸風金氏)-94,468명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인 김순웅의 12세손이다. 김대유가 고려 말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청성(淸城,청풍의 별호)부원군에 추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청풍으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있다.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 김 식은 청풍김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당시는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들이 정치개혁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0 (85)영천 이씨(永川李氏)-94,491명 영천이씨(永川李氏)는 한문 본관이 다른 또 다른 영천이씨(寧川李氏)가 있다. 전혀 뿌리가 다른 성씨지만 한글 본관이 같아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서도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영천이씨(永川李氏)는 1985년에는 총 2,401가구 9,772명, 2000년 조사에서는 총 7,222가구,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8 (84)여양 진씨(驪陽陳氏)-97,372명 시조 진총후(陳寵厚)의 선대는 중국인이다. 북송(北宋) 말엽 우윤(右尹)벼슬을 지내던 복주(福州) 사람 진수(陣琇)가 난을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고려에 건너와 여양현(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에 정착했다.그 뒤 진수의 후손 진총후가 고려에 출사하여 예종 때 상장군 겸 신호위대장군(神虎威大將軍)에 이르렀다. 진총후는 인종 4년 김 향, 이공수 등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6 (83)풍천 임씨(豊川任氏)-99,986명 시조 임 온(任溫)은 고려 때 경상도 추동 안찰사를 거쳐 어사대부, 감문위 대장군을 지냈다. 그 뒤 6세손 임 주(任澍)에 이르기까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임 주는 충렬왕 때 경상도안찰사, 조봉대부, 감문위대장군을 지냈다. 그 뒤 충숙왕 때 그의 아들 삼사판사 임자송(任子松)과 민부전서 임자순(任子順)이 각각 백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4 (82)나주 나씨(羅州羅氏)-108,139명 시조 나 부(羅富)는 고려 때 중국에서 건너와 정의대부, 감문위상장군을 지낸 뒤 나주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나 부를 시조로 하고 여황나씨로 하였다. 그 뒤 고려 성종 때 여황이 나주로 바뀌면서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나주의 다른 이름인 금성을 본관으로 한 금성나씨는 나주나씨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 구분하기 쉽게 나주나씨를 당라(唐羅), 금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1 (81)원주 원씨(原州元氏)-109,505명 원주원씨(原州元氏)는 시조가 다른 3개 파가 있다. 첫째 원 경(元鏡)을 시조로 하는 운곡파(耘谷派)다. 원 경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고구려 보장왕 때 당태종이 파견한 홍 경(洪鏡), 지 경(池鏡), 신 경(辛鏡) 등 경(鏡, 거울경) 자를 이름으로 하는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당태종은‘모든 사람이 본받을 수 있는 거울이 되라’는 뜻으로 경(鏡)을 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37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818283848586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