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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장수 황씨(長水黃氏)-146,575명
(54)장수 황씨(長水黃氏)-146,575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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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황씨는 중국 사람 황 락(黃洛)을 먼 시조로 한다. 그가 신라 유리왕 때 평해에 건너와 자리를 잡으면서 황씨의 뿌리를 내리게 된다. 황 락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 황갑고의 후손 황온인은 평해황씨, 둘째 황을고의 후손 황 경은 장수황씨, 셋째 황병고의 후손 황충준은 창원황씨의 시조가 되면서 3개 본관으로 갈린다.

장수황씨의 시조 황 경(黃瓊)은 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벼슬은 시중을 지냈다. 1세조는 조선조 명상인 황희의 증조부 황석부(黃石富)이다. 시조의 후손들이 고려 명종 때 권신 이의방 등의 화를 피하여 고향인 장수로 내려가 터를 잡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장수를 본관으로 삼았다.

황 희(1363-1452)는 부사를 지낸 황군서의 아들로 호는 방촌이다.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한때 은거하기도 했다. 양녕대군을 폐할 때 반대하여 관직이 삭탈된다. 그러나 그 뒤 6조 판서를 두루 거치고 오랜 세월 동안 의정부에서 재직했다. 조선시대의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정승의 지위에 24년간을 역임했다. 그 중 영의정에 18년간 있으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賤役) 면제 등 치적을 쌓았다. 소신이 굳으면서도 원만하고 청렴하여 청백리에 뽑히는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황 희 아들도 모두 입신출세하여 가문의 번성이 시작된다. 장수황씨의 분파는 황 희의 아들 대에서 크게 3개 파로 갈린다.

첫째 황치신의 후손은 호안공파, 둘째 황보신의 후손은 소윤공파, 셋째 황수신의 후손은 성열공파로 각각 갈라진다. 황치신은 음보로 관직에 나아가 한성판윤 등을 거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도총관, 판중추부사에 올랐고 품계는 종1품의 숭록대부에 올랐다.

황수신은 세종 때에 음보로 종묘부위가 되고 지평, 장령, 지신사를 역임했다. 장령으로 있을 때 성 안의 무당들을 성 밖으로 몰아냈다. 문종 때 병조참판이 되어 군기를 확립하고 병영과 진지의 정비를 일신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어마(御馬) 1필을 하사받았다. 단종 때 경상감사로 삼포왜란을 평정한 후 찬성사 겸 예조판서에 올랐다. 황수신은 그 뒤 세조 즉위에 참여하여 좌익공신이 되고 남원군에 봉해졌다. 황사효는 세종조에 문과에 올라 직제학, 대사헌,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황정욱은 이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냈다. 황경원은 대제학을 비롯해 이조, 예조, 공조판서를 역임했다. 황윤길은 선조 때 일본에 다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예고한다. 195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전한다.

황 진(黃進)은 선조 9년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을 거쳐 통신사 황윤길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서 그들의 침공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1592년 진안에 침입한 왜적의 선봉장을 사살하고 나서 적군을 안덕원(安德院)에서 격퇴했다. 훈련원 판관이 되어 이치(梨峙)싸움에서 적을 격퇴, 그 공으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에 올랐다. 그 뒤 진주성 싸움에서 김천일, 최경회 등과 함께 전사했다.

황 현(1855-1910)은 조선의 학자이자 우국지사였다. 1885년(고종 22)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고 향리에 은퇴했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자결한다. 이듬해 ‘매천집’이 영남과 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출간되었다. 한말의 역사를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은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황의돈(1887-1964)은 호가 해원(海圓)이다. 그는 1908년 만주 간도의 명동서숙을 창설하고 안흥학교, 대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항일운동연맹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38년 조선일보 편수고문,1945년 문교부 편수관, 동국대·건국대·단국대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현대 인물은 황낙주(국회의원), 황용주(중앙대교수), 황도연(대전지법원장), 황필주(육군소장, 범한무전 회장), 황하주(한국감정원장), 황정연(해군참모총장), 황인용(아나운서), 황인철(변호사), 황인만(변호사), 황상현(서울지법부장판사), 황한주(검찰청국장), 황인수(장수황씨대종손), 황인행(대구지법부장판사), 황덕주(군수), 황인모(광주포병학교장, 준장), 황용주(동영기업 사장), 황영주(장수황씨열성공파회장, 한의사), 황의성(동원토건 사장, 해군소장), 황의복(상주중고교교장), 황인동(성균관전의, 한문학강사), 황두하(명지대교수), 황영하(감사원기획실장), 황규선(의학박사, 치과원장), 황규선(육군준장), 황종현(공안건축설계사무소장)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장수(長水)는 전라북도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우평현(雨平縣)이었는데,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택현(高澤縣)으로 개칭하여 벽계군(장계현)에 속하였다. 고려 초에 장수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장수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장수이씨(長水李氏), 장수장씨(長水張氏), 장수황씨(長水黃氏) 등이 있다.

항렬자는 17世 주(周), 18世 의(義), 19世 연(淵), 20世 (示변) 인(仁), 21世 (土변) 하(夏), 22世 (水변) 규(圭), 23世 (人변) 상(商), 24世 (火변) 영(永), 25世 (土변) 진(震)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충남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충남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전남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전북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경북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등이다.

1930년 당시 장수황씨는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경기도 파주군 임지면, 충남 보령군 웅천면, 전북 무주군 부남면, 전북 남원군 사매면, 전북 완주군 용진면, 전남 장흥군 대덕면, 경북 상주군 모동면, 경북 문경군 산북면, 경북 경산군 안심읍, 경북 금릉군 일원,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황 혁(黃赫, 1551 辛亥生) : 문과(文科) 선조 13년(158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황위(黃暐, 1605 乙巳生) : 문과(文科) 인조 16년(1638)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황명한(黃明漢, 1771 辛卯生) : 문과(文科) 순조 2년(1802) 정시3 갑과(甲科) 장원급제, 황성창(黃誠昌, 1771 辛卯生) : 문과(文科) 성종 22년(1491) 별시 을과(乙科), 황박(黃博, 1771 辛卯生) : 문과(文科) 중종 27년(1532) 별시 을과(乙科), 황붕(黃鵬, 1771 辛卯生) : 문과(文科) 선조 16년(1583) 정시 병과(丙科), 황석(黃奭, 1569 己巳生) : 문과(文科) 광해군 3년(1611) 별시 병과(丙科), 황익청(黃益淸, 1589 己丑生) : 문과(文科) 인조 8년(1630)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160명이 있다. 문과 45명, 무과 16명, 사마시 98명, 의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장수황씨는 1985년에는 총 29,971가구 126,746명, 2000년에는 총 45,567가구 146,57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5천여 가구,2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2,694명, 부산 6,576명, 대구 3,828명, 인천 4,459명, 경기 14,720명, 강원 1,693명, 충북 5,564명, 충남 11,703명, 전북 13,839명, 전남 20,582명, 경북 5,277명, 경남 5,504명, 제주 305명이다. 전남과 전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4,994명, 부산 7,024명, 대구 4,700명, 인천 8,163명, 광주 7,607명, 대전 7,012명, 울산 1,680명, 경기 29,878명, 강원 1,768명, 충북 5,352명, 충남 5,702명, 전북 11,124명, 전남 10,773명, 경북 5,096명, 경남 5,277명, 제주 425명이다. 전북, 전남, 광주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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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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