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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평해 황씨(平海黃氏)-137,150명
(61)평해 황씨(平海黃氏)-137,150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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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황씨의 시초는 중국 후한 때 한학사(漢學士)였던 황 락(黃洛)의 후예이다. 그는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에 후한(後漢)의 유신으로 구대림(丘大林-평해구(丘) 씨의 시조) 장군과 함께 교지국(옛 월남의 한 지방)에 사신으로 갔다.

그 때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착(漂着)하여 정착하여 살았다. 그 뒤 황 장군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현재에도 평해(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 지역에는 황 장군의 묘가 있다. 한편 구(丘) 장군이 살았던 곳은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른다.

황 락의 후손에서 황갑고(黃甲古, 기성군), 황을고(黃乙古, 장수군), 황병고(黃丙古, 창원백)의 3형제가 나왔다. 그 뒤 기성군은 평해황씨, 장수군은 장수황씨, 창원백은 창원황씨로 나누어졌다. 인구는 2000년 현재 창원황씨가 252,814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 장수황씨 146,575명, 평해황씨 137,150명 순이다.

평해황씨는 큰 아들 기성군(箕城君)의 후손이다. 그러나 그 뒤의 계대가 분명치 않아 고려조의 금오장군. 태자검교를 지낸 황온인(黃溫仁)을 기세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기성은 평해의 옛 이름이다. 평해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지명이다. 평해황씨는 4세조인 황 진의 후손이 검교공파, 황 서의 후손이 충절공파, 황 용의 후손이 충경공파로 갈라진다.

황희석은 이성계의 휘하 무장으로 위화도 회군에 참여한다. 정몽주를 숙청할 때 앞장 섰으며 도진무(都鎭撫)로써 이성계 즉위에 기여했다. 조선 개국공신으로 평해군에 책봉되었다. 양무(襄武)란 시호가 내렸다. 양무공의 아들 황상은 태종 신숙옹주의 부마가 되었고, 병조판서로서 8도도총제를 지냈다.

황계하는 세종 32년 과거에 올라 감찰을 지냈고, 황진손은 세조 6년 과거에 올라 선공정(繕工正)에 이르렀다. 황준양은 이황의 문인이다. 중종 35년 식년무과에 오른 후 단양군수, 성주목사를 지낸다. 문집‘금계집’이 전한다.

황여일은 선조 18년 문과에 오르고 임진왜란 때 도원수 권 율의 종사관으로 참전하였다. 선조 27년 형조정랑이 되고 다음해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황윤석은 영조 3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익찬을 지냈다. 그의 저서 가운데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와‘자모판(字母辦)’은 오늘날 국어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영화배우 황정순씨는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는 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10월 동양극장의 전속극단이었던 청춘좌에 입단하여 데뷔한다. 1943년 영화 〈그대와 나〉에 출연할 때까지 악극단의 배우로 활약했다. 영화계에서의 활동과 함께 타고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울방송국의 전속성우로도 활약했다. 극단 신극협의회(신협)에 소속되어 연극배우로도 활동을 계속했다.

악극단 시절의 대표작으로 〈대지의 어머니〉·〈아들의 심판〉·〈망향초〉 등이 있다. 신협의 연극무대에서는 〈원술랑〉·〈수전노〉 등이 있다. 〈박서방〉·〈마부〉 등의 1950년대 서민 멜로 드라마에 출연하여 가난하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황씨는 어머니, 맏며느리로서의 이미지로 〈팔도강산〉 시리즈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황산덕 씨는 서울대 법대교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성균관대 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 문교부장관을 지냈다. 변호사로 학술원 회원을 겸하기도 했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황대봉(영진건설회장, 대원신용금고회장, 국회의원), 황병우(국회의원), 황윤기(국회의원), 황온순(여성교육사업가, 휘경학원이사장), 황원구(연세대사학과교수), 황호항(치안본부장보좌관), 황병태(국회의원), 황찬길(동양화가), 황동성(중앙일보국장), 황진경(동국대학재단이사장), 황이수(전매청장), 황인표(고교교장), 황지성(백암관광호텔 사장), 황운룡(동아대학교박물관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한편 지난 1989년 현재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종친회 임원은 다음과 같다. 대종회장 황정구, 부회장 황원근. 황지성, 감사 황일청. 황병성, 총무 황용수 씨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황서(黃瑞) : 문과(文科) 명종 7년(1552)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황하겸(黃夏謙,1821 辛巳生) : 문과(文科) 고종 4년(1867) 함경도도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황윤형(黃允亨, 1821 辛巳生) : 문과(文科) 세조 14년(1468) 춘당대시 병과(丙科), 황여일(黃汝一, 1556 丙辰生) : 문과(文科) 선조 18년(1585) 별시 을과(乙科), 황내정(黃乃正, 1743 癸亥生) : 문과(文科) 정조 4년(1780) 식년시 병과(丙科), 황정(黃玎, 1743 癸亥生) : 문과(文科) 성종 5년(1474) 식년시 병과(丙科), 황경(黃, 1790 庚戌生) : 문과(文科) 헌종 3년(1837) 식년시 병과(丙科), 황현(黃鉉, 1372 壬子生) : 문과(文科) 태조 2년(1393)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황세영(黃世英, 1856 丙辰生) : 문과(文科) 고종 23년(1886) 정시 병과(丙科) 등 모두 90명이 있다. 문과 22명, 무과 19명, 사마시 47명, 역과 2명이다.

항렬자는 28世 섭(燮) 윤(潤) 구(九), 29世 재(載) 식(植) 병(昞), 30世 석(錫) 찬(燦) 범(範), 31世 하(河) 달(達) 현(鉉), 32世 주(柱) 종(鍾) 수(洙), 33世 환(煥) 영(永) 래(來), 34世 기(基) 동(東) 열(烈), 35世 흠(欽) 희(熙) 재(在), 36世 태(泰) 규(奎) 호(鎬), 37世 식(植) 호(鎬) 순(淳), 38世 병(炳) 한(漢) 식(植), 39世 규(奎) 락(樂) 찬(燦), 40世 종(鍾) 경(景) 배(培), 41世 순(淳) 기(基) 련(鍊) 이다.

주요파는 검교공파(제학공파, 중랑장공파, 전서공파, 불권헌공파), 충절공파(예빈공파, 소윤공파), 충경공파(양정공파, 찬성공파, 밀직공파, 관찰사공파(감사공파) 등으로 갈라진다.

본관 평해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와 신라에 속했을 때의 근을어현(斤乙於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평해로 고쳐 유린군(有隣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 예주(禮州)의 영현이 되었고,1172년(명종 2)엔 지군사로 승격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울진군 평해면이 되었고, 1963년에는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1980년 평해읍으로 승격되었다. 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평해구씨(平海丘氏), 평해구씨(平海具氏), 평해김씨(平海金氏), 평해손씨(平海孫氏), 평해오씨(平海吳氏), 평해정씨(平海鄭氏), 평해황씨(平海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 경북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 경북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경북 울진군 기성면 다천리, 경북 울진군 온정면 덕산리, 경북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 경북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경북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경북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평해황씨는 1985년에는 총 30,200가구 124,072명, 2000년에는 총 43,207가구 137,1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3천여 가구, 1만3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2,299명, 부산 10,327명, 대구 12,372명, 인천 2,833명, 경기 11,043명, 강원 13,775명, 충북 5,134명, 충남 1,737명, 전북 883명, 전남 605명, 경북 35,883명, 경남 7,009명, 제주 172명이다. 경북, 대구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3,981명, 부산 10,921명, 대구 16,081명, 인천 6,167명, 광주 286명, 대전 552명, 울산 6,391명, 경기 21,338명, 강원 10,218명, 충북 5,008명, 충남 1,514명, 전북 772명, 전남 480명, 경북 27,826명, 경남 4,105명, 제주 247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북, 대구 지역에 가장 많다. 평해황씨 후손들은 경상북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실제로 전체 인구 가운데 경상북도 지방이 35% 가량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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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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