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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제주 양씨(濟州梁氏)-133,355명
(63)제주 양씨(濟州梁氏)-133,355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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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양씨의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의 삼신인 중 한사람인 양을나(梁乙那)다. 양씨는 제주, 남원 등 몇 개 본관이 있으나 모두 제주에서 분관되었다. 제주도에 분포된 토박이 양씨를 제양(濟梁), 육지에 널리 퍼져 있는 양씨를 육양(陸梁)이라 부른다.

중시조 양 순은 682년(신라 신무왕 2년) 신라에 입국하여 국학에 입학하고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신들이 외국인 고관을 꺼려 승진을 못하게 되자 왕이 한라군에 봉하게 되어 중시조가 되고 본관을 제주로 하였다.

제주양씨의 주요파는 성주공파, 유격공파 등이 있다. 성주공파의 파조 양구미는 고려 태조 때인 937년 탐라성주를 지냈다. 그 때부터 제주도는 제주양씨의 집성촌을 이룬다. 지금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는 전체 4백여 가구 중 80%가 제주양씨 후손들이다. 인근 1백50만평 밀감 밭도 대부분 양씨 문중의 소유다. 성주공파는 사직공파, 천호공파, 중랑장파 등으로 갈라진다.

유격공파의 파조 양보승은 고려 때 유격장군을 지냈다. 그 뒤 부사공파, 직장공파, 현령공파, 교리공파, 사직공파, 소쇄원파, 학해공파, 혜강공파, 주부공파, 금성군파, 서두봉관파 등으로 갈라진다.

학포(學圃) 양팽손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이다. 그는 송 흠의 문인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정언(正言)을 거쳐 조정암 등과 함께 사가독서 했다. 중종 4년 교리(校理)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기묘사화로 삭탈관직 당하고 고향에 은거했다.

그에게는 5형제가 있었다. 이중에서 둘째 양응태와 셋째 양응정이 뛰어났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이며 대학자인 송천 양응정은 선조 5년(1571)에 간신의 시기와 모함을 피해 성균대사성 벼슬을 그만두었다. 그 뒤 처가마을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에 정착했다. 이곳은 제주양씨의 400년 이상 집성촌이 되었다.

양산숙(1561~1593)은 천문, 지리, 병학에 뛰어난 제주양씨 인물이다. 그는 기묘명현 양팽손의 후손이며 대사성 양응정의 아들이다. 성혼의 문하에서 수업했으며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경서에만 전심했다. 양산숙은 1591년(선조 24)에 장차 국란이 있을 것을 예언, 상소까지 하여 대비책을 건의했다가 사람들의 배척을 받았다.

그는 임진왜란 발발 후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천일과 함께 북상해 수원에서 활약하고 강화로 이전할 당시 곽 현과 함께 선조에게 영남과 호남의 전세를 자세히 보고했다. 이 공으로 공조좌랑에 제수되었고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끝까지 싸우다가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한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양한묵(1862~1919)은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 출생이다. 지방의 세무 관리로 일하다가 사직하고 베이징과 일본을 여행하던 중에 일본에 망명 중이던 천도교(당시 동학) 교주 손병희와 전직 개화파 관료 출신인 권동진, 오세창 등을 만나 천도교에 입교한다.

양한묵은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1905년 이 준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를 조직했다. 헌정연구회는 근대적인 헌정 연구를 내세운 계몽단체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다. 손병희의 교육 운동에 적극 동조하여 보성전문학교, 보성중학교, 동덕여학교 등 근대 교육기관의 경영에 참여했다. 3.1운동 때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양기탁(1871~1938)은 상해 임시정부 주석, 국무령 등을 지내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롭게 살다간 독립 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한학을 공부하다가 상경하여 관립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구국 계몽운동에 뛰어들었고, 민영환의 개혁당에 이상재, 이 준 등과 함께 참가했다.

양기탁은 1904년 궁내부에서 영어 통역을 맡게 되면서 영국인 기자 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영자신문‘코리아 타임즈’를 발간했다. 이듬해 국한문 혼용체로 발행되는‘대한매일신보’(주필 박은식)를 창간하는데 참여한다. 영국인 베델을 사장으로 내세워 검열을 피했던 이 신문은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실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양응정(梁應鼎) : 문과(文科) 명종 11년(155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상기(梁相器, 1827 丁亥生) : 문과(文科) 고종 2년(1865)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진손(梁震孫, 1827 丁亥生) : 문과(文科) 세조 10년(1464) 춘당대시 정과(丁科), 양석관(梁奭觀, 1746 丙寅生) : 문과(文科) 순조 4년(1804) 식년시 병과(丙科), 양정명(梁井明, 1746 丙寅生) : 문과(文科) 단종 1년(1453) 증광시 정과(丁科), 양응태(梁應台, 1746 丙寅生) : 문과(文科) 중종 38년(1543) 식년시 병과(丙科), 양덕호(梁德浩, 1791 辛亥生) : 문과(文科) 순조 31년(1831) 식년시 병과(丙科), 양덕하(梁德厦, 1714 甲午生) : 문과(文科) 영조 15년(1739) 정시 병과(丙科) 등 모두 48명이 있다. 문과 14명, 무과 8명, 사마시 26명이다.

본관 제주는 탐라·제주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려왔다. 신라의 속국이었던 탐라국(耽羅國)은 938년(태조 21)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가 제주도에 웅거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었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회복되었다.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했다. 제주 본관 성씨는 제주강씨(濟州姜氏), 제주고씨(濟州高氏), 제주김씨(濟州金氏), 제주부씨(濟州夫氏), 제주양씨(濟州梁氏), 제주오씨(濟州吳氏), 제주이씨(濟州李氏), 제주진씨(濟州秦氏), 제주초씨(濟州肖氏), 제주한씨(濟州韓氏), 제주현씨(濟州玄氏) 등이다.

집성촌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일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전남 화순군 능주면 일원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제주양씨는 1985년에는 총 26,702가구 113,442명, 2000년에는 총 41,169가구 133,35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5천여 가구,2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3,516명, 부산 5,454명, 대구 844명, 인천 2,666명, 경기 7,922명, 강원 1,277명, 충북 721명, 충남 2,350명, 전북 4,086명, 전남 39,267명, 경북 1,083명, 경남 2,357명, 제주 21,376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다음 제주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9,296명, 부산 5,472명, 대구 1,105명, 인천 5,940명, 광주 16,041명, 대전 1,589명, 울산 1,114명, 경기 21,504명, 강원 1,395명, 충북 1,074명, 충남 1,889명, 전북 3,551명, 전남 18,148명, 경북 1,411명, 경남 2,447명, 제주 21,379명이다. 제주, 전남, 광주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인구가 많은 일선 시군을 보면 2000년 현재 제주시 11,408명, 서귀포시 2,813명, 북제주군 4,327명, 남제주군 2,831명, 광주광역시 서구 3,354명, 광주광역시 남구 3,069명, 광주광역시 북구 5,247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2,860명, 전남 화순군 1,456명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2000년에는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도 15년 만에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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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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