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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여양 진씨(驪陽陳氏)-97,372명
(84)여양 진씨(驪陽陳氏)-97,372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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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진총후(陳寵厚)의 선대는 중국인이다. 북송(北宋) 말엽 우윤(右尹)벼슬을 지내던 복주(福州) 사람 진수(陣琇)가 난을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고려에 건너와 여양현(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에 정착했다.

그 뒤 진수의 후손 진총후가 고려에 출사하여 예종 때 상장군 겸 신호위대장군(神虎威大將軍)에 이르렀다. 진총후는 인종 4년 김 향, 이공수 등과 함께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여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진총후의 아들 진 준(陳俊)은 명종 2년(1172년) 판병부사 등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덕장으로 유명하다. 그는 의종 24년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 문신들의 가족까지 대량 학살되자 같은 무신이면서도 무차별 살해를 적극 반대해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의 아들 광순(대장군). 광경(대장군). 광의(대장군). 광현(상장군) 등 5형제 또한 고려의 무신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처럼 여양진씨 가문은 처음에는 문보다는 무로써 가문을 일으켰다.

전통적인 무신의 가문에 문을 꽃피운 사람은 대문장가 진 화(陳華)이다. 매호공(梅湖公) 진한림(陳翰林)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고려 강종 2년(1213년)에 한림학사를 거쳐 서장관으로 금나라에 다녀왔다. 그의 시재(詩才)는 고려의 대문장 이규보와 쌍벽을 이룬다. 특히 금나라에 갔을 때 지은‘봉사입금시(奉使入金詩)’는 유명하다. 이 시는 당시 아세아 정세와 고려의 앞날을 예언한 명시로 유명하다.

현대 인물은 진헌식(내무부장관, 제헌국회의원), 진의종(8·9·11·12대 국회의원, 보사부장관, 국무총리), 진필식(외무부차관, 캐나다대사), 진봉현(농림부차관), 진승록(고시위원장), 진형하(국회의원, 변호사), 진태구(서울고법부장판사), 진갑덕(약학박사, 영남대환경대학원장), 진종채(육군대장, 제2군사령관), 진두정(육군소장), 진치범(공군소장, 국회의원), 진념(해운항만청장), 진동식(의학박사, 연세대부총장), 진성규(서울고법부장판사), 진태하(문학박사, 명지대인문사회대학장), 진용철(서울시교위부교육감), 진계호(전주대법정대학장), 진우석(삼익공업 회장), 진봉섭(태백산업 사장), 진재철(부래당, 평리사장), 진인권(인권학원이사장), 진형근(동양전기사장), 진덕규(정치학박사, 이화여대법대교수), 진강백(동양화가), 진광수(이학박사, 부산대교수), 진광학(안전기획부서기관), 진광호(합천군문화원장), 진교근(서호주정공업 회장), 진국홍(국방부이사관), 진국환(서울대교수, 변호사), 진규영(영남대교수), 진근찬(공학박사, 국방부과학연구실장), 진기남(강릉경찰서장), 진기배(국회의원), 진기정(공주전문대학장), 진기영(영광군수), 진기풍(전북일보사장), 진기홍(광주체신청장), 진대제(전자공학박사, 미IBM연구원), 진덕호(청주세무서장), 진동수(재무부서기관), 진병춘(부산고법판사), 진복기(민주정의당당수), 진석중(국회의원), 진선주(충북대교수), 진성계(국토통일원교수), 진성진(수원지검검사), 진세인(건국대교수), 진영(변호사), 진영길(경상대교수), 진영철(공학박사, 전북대교수), 진영한(연세대교수), 진용상(변호사), 진용옥(경희대교수), 진용우(문학박사, 경희대교수), 진원숙(문학박사, 계명대교수), 진원중(교육학박사, 서울대교수), 진위교(철학박사, 경북대교수), 진현수(서호주정공업 전무이사), 진일섭(미국오클라호마종합대학교수), 진윤구(원주고교장), 진성섭(신일여고교장), 진경종(삼양사상무)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4世 하(夏), 25世 성(成), 26世 범(範) 희(熙), 27世 용(庸) 광(廣), 28世 장(章) 언(彦), 29世 수(壽) 선(善), 30世 호(昊) 환(奐), 31世익(翼) 우(遇), 32世 원(元) 구(九), 33世 상(商) 남(南), 34世 녕(寧) 전(殿), 35世 재(載) 무(茂), 36世 면(勉) 기(紀), 37世 도(度) 경(慶), 38世달(達) 재(宰), 39世 성(聖) 정(廷), 40世 규(揆) 발(發), 41世 기(冀) 용(用), 42世 집(執) 광(光), 43世 주(周) 동(同), 44世 백(百) 형(衡), 45世 함(咸) 의(義), 46世 용(龍) 선(選), 47世 상(庠) 곽(廓)이다. 주요파는 시중공파, 어사공파, 예빈경파, 매호공파, 전농공파 등이다.

본관 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長谷面) 일대의 옛 지명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량(新良)으로 개칭하여 결성군의 관할로 두었다. 고려 초에 여양현(驪陽縣)으로 바뀌었고, 1018년(현종 9)에 운주(運州, 홍성)로 폐합되었다. 여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여양진씨(驪陽陳氏)와 여양천씨(驪陽天氏) 가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진복창(陳復昌) : 문과(文科) 중종30년(1535) 별시3 갑과(甲科) 장원급제, 진병섭(陳秉燮 ,1834 甲午生) : 문과(文科) 철종2년(1851) 알성시 을과(乙科), 진두병(陳斗柄, 1663 癸卯生) : 문과(文科) 숙종 28년(1702) 식년시 병과(丙科), 진문한(陳文翰, 1663 癸卯生) : 문과(文科) 중종 23년(1528) 식년시 병과(丙科), 진상립(陳尙立, 1585 乙酉生) : 문과(文科) 인조 7년(1629) 별시 병과(丙科), 진종시(陳宗蓍, 1843 癸卯生) : 문과(文科) 고종 4년(1867) 함경도도과 병과(丙科), 진식(陳寔, 1519 己卯生) : 문과(文科) 명종 2년(1547) 알성시 병과(丙科), 진명한(陳溟翰, 1649 己丑生) : 문과(文科) 현종14년(1673)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1명이 있다. 문과 13명, 무과 4명, 사마시 24명이다.

집성촌은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이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1백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곳에 여양진씨가 터를 잡게 된 때는 4백50여 년 전 조선 중종조 때부터이다. 수차례의 옥사를 일으켜 당시의 실권을 장악하고 이를 유지하려 했던 권신 김안로가 여양진씨 문중의 진 우(陳宇)와 진 식(陳寔) 등 형제에게 이언적 등을 축출하는 옥사사건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들 형제는 협조를 거부했다. 그러자 뒤이어 무서운 보복이 이어졌다. 진 우는 궁정 뜰에서 김안로 일파에게 참살당했고 그의 아들들도 곧 밀어닥칠 화를 피해 뿔뿔이 흩어져 은신했다. 그 중 둘째 아들 진한번이 이곳 반곡리 마을로 피해 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곳 마을 전체 6백여 명이 모두 그의 후손들이다.

또 다른 집성촌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이다. 처음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용구(용인)계파의 파조인 진 화(陳華)이다. 그가 임지에서 죽자 사패지였던 용인에 장사함으로써 여양진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진 화의 증손 진사문(陳斯文), 8세손 진윤평(陳允平), 23세손 진평호(陳平鎬)에 이르기까지 6백여 년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후손들이 대부분 외지로 나가 전국에 퍼져 살고 있고 세거지에는 몇몇 후손들만이 살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여양진씨는 1985년에는 총 24,189가구 100,233명, 2000년에는 총 30,492가구 97,37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 수는 6천여 가구가 늘어났다. 반면 인구는 오히려 3천여 명이 줄어들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9,812명, 부산 12,027명, 대구 4,602명, 인천 2,136명, 경기 9,520명, 강원 4,769명, 충북 3,081명, 충남 5,476명, 전북 6,291명, 전남 9,629명, 경북 5,239명, 경남 17,396명, 제주 254명이다. 경남과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7,766명, 부산 11,877명, 대구 5,086명, 인천 3,408명, 광주 3,115명, 대전 2,273명, 울산 2,407명, 경기 15,984명, 강원 3,462명, 충북 2,707명, 충남 2,802명, 전북 3,979명, 전남 4,326명, 경북 4,027명, 경남 13,918명, 제주 23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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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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