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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열풍'의 저변
'피케티 열풍'의 저변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09.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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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의 대물림에 대한 불만과 허탈감..새 '프레임 전쟁'?

 
경제학자가 이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세상사와 경제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굴러가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도, 은행장, 펀드 매니저, 명문대 교수도 정작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증거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경제문제를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을까. 내로라 하는 경제학자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난 2010년 저서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23가지(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를 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화, 경제학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고 싶었다. 자유시장주의에 대해 부자들이 흔히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야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된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쓰니까 경제성장률이 도리어 줄지 않았나. 이처럼 잘못된 경제지식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은 경제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통념도 깨져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피케티 열풍이 불고 있다. 토마 피케티는 올해 43세의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교수이다. 그는 지난 해까지만 해도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무명에 가까웠다. 프랑스 내에서조차 소장학자 축에 들었다. 하지만 지난 4월 그의 책 한권이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저서 '21세기 자본'이 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는 이달 한국어판이 출간되면서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왔다.
 
지난 19일 그의 첫 방한 행사였던 '1%99%' 토론회장에는 한국의 유명 경제학자와 경제관료, 심지어 정치인까지 몰려들어 그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어판 출간기념회에서는 그의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어판 '21세기 자본'은 출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이처럼 피케티 열풍이 부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주장이 단순명료하고 서술방식도 쉽기 때문이다. 피케티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앞지른다. 이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즉 돈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생기고, 반대로 돈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피케티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런 불평등의 심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상위 1% 계층에 최고 한계세율 80%의 누진 소득세율과 10%의 누진부유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선동적이고, ‘없는 자들에게는 달콤한 속삭임인가.
 
피케티의 이같은 주장에 진보진영은 양극화와 분배의 문제로 바라보며 동감을 표시한다. ‘피케티의 주장이 한국에서도 대체로 들어맞는다. 한국의 자본수익률이 세계평균과 유사하고 인구 고령화 등으로 경제성장률도 정체한다면 더 빠른 속도로 부의 집중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보수경제학자들은 피케티에 대해 '남의 부()를 배 아파하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보수경제학자들을 동원해 '21세기 자본'을 금서(禁書)처럼 취급하는 '북콘서트'를 잇따라 여는 등 극도의 경계태세를 취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피케티에 열광하는 것은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는 한국의 현실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피케티가 문제를 제기하는 '소득 불평등''부의 세습', '사교육비' 등은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경제학을 모르더라도 그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2년 전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일각에서는 피케티의 주장에 피케티와 마르크스의 차이점은 마르크스는 불평등을 혁명으로 바꾸려 했고, 피케티는 세금으로 바꾸려 한다고 꼬집는다. 피케티는 이런 비판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며 자본주의는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로 응수한다. 피케티의 주장에 반박하는 출판물도 잇따른다. 피케티의 논의가 한국사회에 아주 위험할 수 있으며, 오랜 기간 방대한 자료에 천착한 연구와 경제학적 공헌을 인정하지만 피케티 열풍은 자칫 사회의 분열과 대립만을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피케티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슬로건 자체가 갖는 강력한 이미지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분배’, ‘복지와 같은 좌익적 슬로건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바 있다. 아직 그 후유증이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갖는 이미지는 배가될 수 밖에 없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필자가 볼 때는 훌륭한 경제정책을 위해 탁월한 경제학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모형(model)으로 얘기한다. 복잡한 현실을 간단하게 정리한 게 모형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가끔 모형이 추상적(abstraction)이란 사실을 잊어버린다. 예전에 비해 데이터 수집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으나 그것들을 완벽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학자들이 만약 이걸 얻으려면, 다른 건 희생하고식의 트레이드 오프(trade-off)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는게 큰 단점이다. 최종 정책결정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알아서 고르라는 식이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경제학자들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하도 경제학자들이 한편으론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고(on the one hand, on the other hand)’하며 조언을 하니까 손을 내저으면서 팔이 한쪽만 있는 경제학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경제 시절, 김학렬 경제부총리가 항상 비판만 일삼는 기자나 무책임한 경제학자들의 얘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고 앞만 보고 매진하라는 얘기를 경제관료들에게 수시로 했다. 갈 길이 바쁜데 이 얘기 저 얘기를 모두 경청하다 보면 할 일을 못한다는 논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제대로 된 경제학자라면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득실을 나눠서 조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가 하도록 해야 한다. 신진 경제학자 피케티 이론의 핵심은 소득격차 자체가 아니라, 엄청난 소득이 자본화되어 대물림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저변에 (부의 대물림에 대한) 불만과 허탈감이 이번 피케티 열풍의 이면에 있다는 지적이다.
 
필자는 피케티의 연구결과가 맞느냐 틀리냐를 따질 능력이 없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지금 이 시점에 왜 이러한 연구 결과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느냐에 있다. 한국도 경제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라는 논쟁이 과거부터 진행돼 왔다. 우리나라에서 소득 분배와 불평등 문제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실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비정규직의 증가, 부동산값 폭등,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 등 복합적 요인들로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세월호에 발목이 잡혀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정체(停滯)적 위기’의 상황이다. 필자는 여기서 피케티 열풍이 혹시 또 다른 프레임 전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가 말하는 부익부 빈익빈같은 좌익적 프레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한국 사회도 곧장 그 프레임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
 
이미 우리는 프레임에 갇혔던 경험이 있다. 18대 대선 때다. 그 때는 복지’, ‘분배’, ‘평등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혀 사회 전체가 들썩였다. 그래서 보수정당이라고 하는 새누리당 조차 복지카드를 꺼내들었다. 결국 좌향좌해버린 보수정당이 여당인 지금 한국 사회는 아직도 복지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도 피케티의 주장은 개인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요즘 우리의 시대정신은 격차 해소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그만큼 피케티 열풍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화두로 부상했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프레임싸움이다정치인의 자세한 공약보다는 이미지, 정치 슬로건으로 그 정당이나 정치인을 판단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프레임은 곧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이자 무기가 된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가해자라는 프레임이 현 정부를 괴롭힌다. 냉정하게 보면 이 주장은 정치공세이고, 터무니 없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야당은 이를 꽤나 강력한 '무기'이자 호재로 활용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선거에선 부익부 빈익빈’과 '부의 대물림'이 새로운 프레임 전쟁의 소재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이것은 서민이라는 수식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이 프레임은 선거에서 서민보다 강력하고 더 설득력, 호소력이 있다.

따지고 보면 지구상 경제학자들은 '불(火)'을 지르는데 익숙한 반면 '불끄기(消防手)' 역할을 정치가에게 맡겨왔는 지도 모른다. 필자가 볼 때는 피케티같은 경제학자가 불을 지피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과제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비판과 감시가 주업인 언론이 실질적인 정책대안까지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저 견제와 균형을 꾀할 뿐이다. 경제학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들도 경제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모형으로 내놓을 뿐, 선택은 결국 정치가와 행정가의 몫이 될 것이다.

한국은 현재 소득양극화와 경제불황으로 보일러에서 다시 연탄을 때는 집이 늘어날 정도로 서민경제가 취약하다. 사회의 기둥인 중산층이 줄어드는 가운데 하위 소득자, 즉  하층민과 소외계층의 불만이 극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민란이라도 일으킬 정도로 폭발직전이다. 이제 '부의 대물림' 만이 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대물림'이 더 큰 문제다. 이른바 '빈곤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poverty)'이 현실화하고 있다.

만약 앞으로의 한국정치가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프레임 전쟁'의 형태로 전개된다면 이는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당과 정치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선거를 통해 정권을 쟁취, 국민의 신임을 먹고 사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보다 지금의 경제 현안에 솔직하고 사명감 있게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여론을 바꿔야 하는 법이다. 그게 정치의 과정이고, 그 안에 경제학자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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