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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골키퍼'
한은은 '골키퍼'
  • 이민혜 기자
  • 승인 2014.09.2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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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경기 때 감독 흥분해도 제 자리 지켜야

 
“우리(한은 금통위)가 우리 스스로 판단해서 금리를 내렸다고 해도 (시장이) 믿어줄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 발언에 대한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들은 매우 불편한 기색이다. 이제는 안쓰러운 마음까지 든다.

최 부총리의 ‘가벼운 입’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금리 관련 발언이 너무 잦고 갈수록 위험천만이다. 정치인 인 최 부총리의 이런 언행은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은으로서는 설사 경기 요인 등을 보고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정부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정부 역시 중앙은행 독립성을 해쳤다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기준금리를 두고 “척 하면 척”이라는 최 부총리의 발언이 나왔다. 그는 연세대 선배인 이주열 한은 총재에게 와인을 대접했다며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 하면 척’”이라고 말했다. 도를 넘은 발언에 한은엔 말 없는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금리의 ‘금’자도 안 꺼냈다”는 말은 이제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새로운 유행어가 될 판이다. 7월말 최 부총리가 취임 후 이 총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금리의 ‘금’자도 안 꺼냈다”고 했지만, 그 때도 ‘척 하면 척’이었는지 2주 뒤 기준금리가 15개월 만에 인하됐다.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은 최 부총리의 ‘도발’이 금리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이 총재의 말대로 ‘통화정책은 기대를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의 한 마디에 시장금리가 뚝뚝 떨어지고, 심지어 기준금리 밑으로 하락한다. 그런데도 정작 한은은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용감산'이다. 아무런 말이 없다. 

한은은 밀실에 갇혀 익명으로 된 50페이지 분량의 의사록만 내놓는다. '동어 반복(tautology)'에 알듯 모를 듯한 페이퍼를 잘 읽어보면 금통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거란다. 8월 금통위 의사록이 나왔을 때만 해도 ‘추가 금리 인하는 없다’가 시장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장을 주름 잡은 것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선제적 대응’ 등 최 부총리의 발언이었다.

금통위 의사록엔 이렇게 쓰여있다. 시장의 기대가 정책의도와 다르게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묻고 싶다. 누가? 금통위원들은 각자가 의견을 외부로 표출할 경우 ‘혼란’을 걱정한다. 금통위 의장이 있기 때문에 금통위의 질서를 해치는 ‘절대 안 될 일’이란 반응도 있다.

금융계에서는 최 부총리가 '제8 금통위원(금통위 공식 멤버는 7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거시경제를 이끄는 두 축으로서 정부와 한은이 물밑 공감을 가질 수도 있고 경제수장이 통화정책 기대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그 방법이 너무 세련되지 못하다.

경제관료(행시 22회) 시절의 거친 일처리 단점을 아직도 극복 못한 것인가. 아니면 정권 최고 실세이자 3선 금배지라는 자만심 때문인지 모른다. 그를 향해 '하수(下手)”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노골적인 ‘신호’를 주지 않으면 융통성 없는 한은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인 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제감각을 갖춘 세련된 경제부총리가 되려면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KB금융 내분사태로 '관치금융'이 문제되는 가운데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금리에 대해 "밤놔라, 곶감놔라"하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지 않을까.

금리 인하가 과연 바람직하느냐는 좀 더 논란이 있다. '최경환노믹스'는 국민들이 집을 사기 위해 빚더미에 앉아야 성공한다는 치명적인 패러독스(역설)를 안고 있는 탓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나라 곳간을 허물고 있는 판에 금리까지 더 내려 가계부채를 키운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느냐는 반문이다.

정치인 출신 경제수장은 재임기간의 ‘지표’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고 치자. 반면 이 총재 등 한은 집행부는 물론 금통위원들은 경제와 물가안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과거 1990년대 한은독립 투쟁 때도 한은은 항상 '조용한 투쟁'을 했다. 원래 보수적이고 막강한 재무부에 저항할 마땅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에 대비해 항상 '쓴소리'를 준비하고, 정부가 즐겨 벌이는 '파티의 흥'을 깨는 역할은 어느 나라나 보수적인 중앙은행의 고유영역에 속한다.

만약 축구경기에 지고 있는 감독이 열을 받아서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하라고 흥분했다가 수비가 뚫려 대패한다면 그건 누구 책임일까. 한은은 국가경제의 골키퍼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골키퍼 한은'이 정위치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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