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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사회'
'약탈적 금융사회'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0.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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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권하는 사회..또 다른 '경제적 살인' 우려를 따져야

 
"하느님 아버지, 저를 가엾게 여기신다면 제발 저희 아버지 좀 죽여 주세요!"

영화 화차(火車)’에서 여자 주인공 경선은 이렇게 기도를 올린다. 철없는 하소연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이다. ‘화차는 아버지가 쓴 불법 사채로 인해 딸은 물론 딸의 가족까지 송두리째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화차는 2012년 개봉된 우리나라의 미스터리 영화다. '화차''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라는 뜻이다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 불수레로, 화차에 한 번 올라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
 
이 영화는 일본의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망가져가는 개인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부한다.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들어 온 변영주 감독이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서 화제가 됐다. 순제작비가 18억 원이었던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이 관객 100만 명이었다. 개봉 7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 흥행에 성공했다
 
암울한 이 영화가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둔 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생각보다 우리 현실과 가깝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사실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이미 엄혹한 금융의 '약탈'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이 화차속 얘기보다 더 무섭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약탈적 금융'에 사로잡혀 삶 자체가 부채의 포로가 된 우리네 이웃들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나라에는 동양사태, 카드정보 유출, 국민주택채권 위조, KT ENS 협력업체의 대출사기, KB 전산사태,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 숱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필자가 평범한 금융소비자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 금융은 지금 대단히 문제가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서 항상 금전문제가 발생해 왔지만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들은 '봉'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느낌이다. 수 많은 금융뉴스를 듣다보면 이는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아니라 대명천지에 약탈적인 금융횡포가 벌어지는 탓이다. 마치 날씨가 화창한 날에 우산을 주고, 비가 오는 날 빼앗아 가는금융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어느 취업 전문 포털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월급고개를 겪는다고 답했다. ‘월급고개란 예전 보릿고개처럼, 지난 달 받은 월급은 바닥이 나고 아직 이번 달 월급은 받지 않은 때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월급날이 매월 말일인 경우 다음 달 20~25일쯤 되면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다. 이때가 바로 월급고개인 셈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월급고개를 신용카드로 넘는다고 한다. 60%가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응답했고, 현금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12%나 됐다. 그나마 비상금을 쓴다는 22%의 사람은 가진 자로 불린다. 직장인 A씨는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은행에 가입한 예적금을 비롯해 결혼 직후 받은 주택담보대출·마이너스통장까지 여수신 상품을 10년째 운용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기묘한 경험을 했다. 업무로 바빠 자금운용을 잘못하면서 연체를 했고 그 대가로 10%에 가까운 연체이자를 내야 했다.
 
그는 궁금했다. 10년 사이 예금금리는 무려 2%포인트 넘게 내려앉았으나 연체이자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은행 수익원인 대출금리는 예금금리보다 덜 내렸다. 기준금리 변화에 따라 금리도 등락한다고 들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씨는 은행지점을 찾아 연유를 물었지만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내주는 이자는 적게 주고 거두어들이는 이자는 많이 떼는 행태-, 이른바 '약탈금리'.
 
2금융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보험사 약관대출이다. 약관대출은 고객이 낸 보험료를 담보로 보험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하는데 약관대출 금리도 요지부동이다. 약관대출 금리의 경직성은 가산금리 흐름에서 확인된다. 한 대형생보사의 약관대출(금리연동형) 가산금리 현황을 보면 최근 5년째 1.5%로 변함이 없다.
 
카드사들의 행태는 이보다 더 하다. 최고 연 28%에 육박하는 대출금리는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은 '2금융권 금리체계 모범규준'을 마련해 카드사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했다이에 카드사들은 회사별로 카드론 금리 평균 0.9%포인트 인하, 현금서비스 금리 평균 0.6%포인트 인하계획을 전달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효과는 없었다. 20개 카드사(겸영은행 포함)의 현금서비스 금리는 연 최고 27.9%에 이른다. 현금서비스 이용자의 63%가 연 20% 이상의 고금리대출을 쓰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해 3“'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16개월이 지났지만 금융권의 약탈금리 행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준금리는 저점을 경신하고 있지만 연체금리는 수년간 요지부동이다. 또 수신금리는 곧바로 내리면서 여신금리는 늦게 내리는 습성도 여전하다. 생명보험사들의 약관대출,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등도 마찬가지다.금융회사들이 당국의 눈치만 살피며 수익에 집착하는 사이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는 것이다.
 
문제는 은행이나 보험사, 카드사 등에서 돈을 빌려 쓰는 사람들은 갑자기 금리가 올라가면 생활 필수자금을 연체 이자를 갚기 위해 쓰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최근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담보대출을 받아서 이를 이자가 높은 신용대출을 갚는데 쓴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체 이자에 대해 명확한 개념이 없는 서민들의 경우 끝내는 이자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연체 이자를 한번 물게 되면 액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까닭이다,
 
지난 2012년 발간된 약탈적 금융 사회(제윤경·이헌욱 공저)’는 은행, 카드사, 보험사, 저축은행 등 우리가 굳게 믿어 왔던 금융권이 사실은 우리를 철저히 약탈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가계 부채 1000, 집에 과도한 빚이 딸린 하우스 푸어가 150만 가구, 대한민국 가계의 60%가 빚을 진 시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토록 헤어날 길 없는 빚의 굴레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저자들은 바로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그 배후로 지목한다. 외환 위기 직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아래서 약탈적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또 금융권이 마냥 이득을 취하면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긴 결과 우리 사회의 대부분이 금융의 노예가 되었음을 낱낱이 고발한다.
 
요즘은 어린 아이라도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갖고 있다. 5천만 국민 모두 금융소비자인 셈이다. 그러나 금융상품은 간단한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보통의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와 같은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 금융회사는 소비자가 금융상품을 구매할 때까지는 ''으로 대접하지만, 일단 구매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소비자는 ''이 된다. , 금융소비자는 금융기관보다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전문지식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돈을 투자하는 만큼 금융소비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또 스스로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금융회사가 그 간격을 메워줘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금융회사는 '상품을 팔고 나면 나 몰라라'식이었다. 알아듣기도 어려운, 일부는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설명과 약관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할 것을 했다'라는 식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기회복을 위해서 정부가 앞장을 서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권유하고, 이에 맞장구를 치는 서민들은 덩달아 빚이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 부채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증가세가 더 가팔라져 앞으로가 무척 걱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단 1,040조 원이라는 가계부채 숫자 자체가 엄청나다.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다.
 
지난 2002465조원 정도였던 가계부채가 지난 분기에는 1,040조원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여기 못 미친다. 2002년에는 가계 부채가 GDP64.5%였던 게 201275.7%까지 올랐다. GDP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빚이 더 빨리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소득보다 빚이 더 빨리 느는 상황이 계속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저소득층이 타격을 더 받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부동산을 예로 들면 전체 대출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부동산 담보대출이다. 정부가 대출 등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 정부의 기대는 집 살 여력 있는 사람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거래도 활성화되고, 전세 시세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집값과 전셋값이 따라 오르고 있다. 아직 정책이 자리를 못 잡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이 장기적으로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빚은 늘리면서 경기도 못 살리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정부의 규제완화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들이 영원한 채권자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영화 화차에서 한 남자(장문호)가 실종된 약혼녀 선영을 찾아 나서고, 그의 사촌 형인 전직 형사(김종근)가 그를 돕는다. 이 과정에서 약혼녀의 이름 뿐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와 관련한 충격적인 사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실종 사건의 이면에는 빚으로 인해 '화차'에 올라탄 한 개인의 비극이 숨어있다.
 
경선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협박 당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그런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사람의 삶을 꿈꾸게 된다. 경선은 언제 사라져도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선영을 표적으로 삼게 된다. 또 선영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후 선영을 죽이고 선영 행세를 한다하지만 그런 선영 또한 빚 때문에 개인 파산 상태란 사실을 알게 된 경선은 또 다른 범죄를 꾀하게 되고, 경찰은 그런 경선을 추격한다. 그 추격 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경선은 철로에 투신하며 최후를 맞이한다
 
지난 2003년 카드 대란 때 우리 금융권은 소득이 낮거나 불규칙한 이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해 줬다가 40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그 난리를 겪고도 지난 몇 년 동안 가계 대출을 늘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이제 부동산 시장이 하락하니 얼굴을 싹 바꾸고 채권을 회수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금융기관으로선 어떻게 해도 꽃놀이 패이고, 남는 장사다. 채무자가 돈이 있을 때는 대출이자와 원금을 챙기면 되고, 돈을 갚지 못할 때는 그대로 담보물건을 경매에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이야 말로 대표적인 약탈적 금융의 행태와 수법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약탈적 금융은 돈없는 서민을 죽음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경제적 살인행위'나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가 빚을 권하는 사회라면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만 배를 불리고 불쌍한 서민들을 죽게 만드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약탈금융의 서막이 아닌가를 곰곰이 따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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