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4:25 (금)
최수현의 歸去來辭
최수현의 歸去來辭
  • 김영준 기자
  • 승인 2014.11.19 01:48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벼슬길 나서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음

 
"물러날 때는 깨끗하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금감원장으로서 제 소임은 오늘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18일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9월부터 청와대에서 경질설이 계속 흘러나왔지만 최 원장은 지금까지 "사퇴할 의사가 없다"며 단호하게 맞섰다. 그러나 돌연 사의 표명과 동시에 후임 내정자까지 발표되면서 청와대의 준비된 교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날 오전 830분께 금감원은 최 원장이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사의를 표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금융감독 수장으로 임명된 최 원장은 20133월 취임해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18개월 만에 중도하차하게 됐다주목받지 못했던 관료 시절을 극복하고 특유의 뚝심으로 금융감독 당국 수장에까지 오른 최 원장은 '일벌레'로 불릴 정도로 우직했다. 하지만 잇따라 터진 금융사고가 끝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최 원장은 지난 해 3월 금융감독 수장으로 임명된 후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한 채 중도하차했다. 최 원장 사퇴설은 지난 8월부터 금융권 안팎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최 원장이 연말쯤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일단 최 원장의 표면적 사퇴 이유는 '일신상의 사유'. 최 원장은 잇따라 터진 굵직한 금융이슈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만큼 물러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최 원장이 인사적체 상황인 금감원의 후배들을 위해 용퇴를 결정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KB 사태와 관련한 징계건과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등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경질사유로 꼽힌다. 금감원 내부는 정작 새 원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 원장의 돌연한 경질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한 국장급 인사는 "어제(17) 저녁 원장 사임설에 대한 '찌라시'가 돌았다, 그래도 원장은 불사조처럼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겠거니 했는데 정말 사의를 표명해 당황스럽다""내부 직원들은 (최 원장의)사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고, 아직 직원들도 입장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 경질설은 2개월 전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 9월 한 중앙일간지가 "(청와대는) 국민은행 내분사태 처리 과정 등 최 원장의 대형 금융사고·비리 사전 감독과 사후 수습에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조만간 경질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인선 작업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청와대와 최 원장이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경질설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최 원장은 준비한 이임사를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강당에 모인 200여 명에 가까운 직원들은 침묵을 지켰다. 일부 직원은 "적자생존인가"라고 수군거리며 최 원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에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다시는 후진적인 금융사고가 없어야 할 것"이라며 "부족한 저에게 금융감독원장이라는 영예스러운 자리에서 소신껏 일할 기회를 주신 박근혜 대통령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도 전했다. 그는 "그간 감독당국에 대한 따가운 눈총,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 등 파열음이 많이 났다""그러나 요란한 소리가 난다는 것은 시장이 살아있고 제도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금융시장과 산업이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고,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연의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임사를 읽던 최 원장은 "공직이 사적 관계나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최 원장은 "공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존귀한 자리"라며 "사적 관계나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다른 장차관급 공직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금감원장도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중책이며 힘든 자리다. 최원장은 주말과 명절도 반납하고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는 힘든 업무 여건 속에서 꿋꿋이 책임을 다해 온 사람이다. 그는 그동안 공직자로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혜택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돌려드려야 하는지 앞으로 많은 고민을 할 것"이라며 말을 마쳤다금융권에서는 또 다른 해석이 나온다. 임기 중 줄줄이 터진 메가톤급 금융사고도 최 원장의 퇴진을 촉발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금융당국으로선 동양사태, KB사태 등 잇단 대형 금융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속죄양'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관운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올라갈 때가 있으며 내려갈 때도 있다. 그것이 인생살이의 철칙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 관직을 버리고, 자연을 벗삼는 전원 생활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는 기쁨을 나타낸 글이다.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사부(辭賦).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내용이다.
 
퇴임사를 발표하고 집으로 돌아간 최 원장은 떵떵거리던 고위 관직에서 밀려난 지금 매우 서글프고 착잡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 또한 오래 전부터 선현들이 겪었던 세상사의 이치인 것을.. 그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꺼내서 한번 읽어봤으면 싶다.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