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세금폭탄'과 조세 저항
연말정산 '세금폭탄'과 조세 저항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1.1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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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적 판단능력 없는 참모들..'거위깃털' 함부로 뽑지 말라

 
지난 20138월 박근혜 정부의 첫 경제팀은 세법개정안 파동으로 최대 위기를 맞는다. 박 대통령 말대로 '방향이 옳아도 방법은 틀릴 수 있음'에 대비하지 못한 정무적 판단 착오가 일어난 탓이다. 현오석 부총리가 직접 나서 '사과'는 했지만 정서보다는 수치를 신봉하는 경제관료들의 상황판단이 배경에 자리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현오석 경제팀이 국민과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게 된 원인은 샐러리맨에게 부담을 지우는 세법개정안의 내용이 1차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경제관료들이 보여준 민심 동향에 대한 무지가 큰 몫을 했다. 대표적인 게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거위깃털론'이었다. 조 수석은 세법개정안을 설명하면서 "거위로부터 고통 없이 깃털을 뽑는 방식"이라며 "한 달에 13000원 세금이 느는 건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세전 연봉 3450만원 이상은 상위 28%에 해당하는 '중산층'이란 경제 통계에 근거한 말이다. 그러나 3450만원이라면 한 달 월급이 20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들의 13000원짜리 깃털이 고통 없이 뽑힐 것이란 조 수석의 '단언'은 사실상 '실언'에 가까웠다. 증세(增稅)라는 개념은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증세가 아니다"라고 교과서적으로 국민을 가르치려 든 것도 오히려 여론의 큰 반감을 샀다.
 
이로부터 15개월 만에 박근혜 정부가 똑같은 문제로 다신 한번 위기에 몰렸다. 연말정산 시즌이 본격화하면서 이른바 '13월의 세금 폭탄' 문제가 현실화하는 까닭이다. 바뀐 세법으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연말정산을 통해 지난 해까지는 더 낸 세금을 돌려받던 사람들이 올해는 환급액이 줄거나 돈을 토해내야 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법개정안 발표 당시 정부가 총급여 5500만원 이하는 세부담이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당 구간 직장인들도 세금을 더 내는 사례가 속출할 전망이다. 특히 연봉에서 가장 먼저 빼주던 근로소득공제가 줄면서 부양가족 공제 혜택 등을 적용받지 않는 미혼 직장인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개편된 세법을 적용해 연봉 2360만원3800만원 미혼 직장인의 올해 납세액을 산출할 결과 근로소득공제는 247500원 줄어든 반면 근로소득 세액공제 증가는 74250원에 그쳤다. 만약 연봉이 3천만원인 미혼자라면 총 907500원을 근로소득세로 내야 하므로 2013년의 734250원보다 173250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지난 해 자녀를 낳은 경우에도 세 혜택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정부가 세금 증가액이 약 33만원일 것으로 발표했던 연봉 7천만원8천만원 구간의 근로소득자 세 부담 증가액도 60만원에서 75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추정치도 나왔다. 이처럼 올해 연말정산이 예상 밖으로 직장인들에게 '빡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번 세법 개정으로 많은 소득공제 항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득공제 방식이 적용됐던 항목의 경우 지출액만큼 전체 소득을 그만큼 줄여 계산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과세표준을 낮추는 데에 유리했다.
 
하지만 이제 대다수 소득공제 항목이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공제받을 수 있는 세금액은 제한적이 된 반면, 근로소득자 상당수가 전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연말정산을 통해 연봉 구간과 상관없이 '무차별적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직장인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현재 근본적인 문제는 법인세다. 정부는 소득세법을 개정한 지 1년이 넘도록 법인세는 여전히 손을 대지 않고 있다. 2년 전에도 여론의 반발이 심했던 것은 소득세부터 먼저 올리는 증세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비판과 지적이었다. 지난 해 국회에서 야당이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자고 요구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부가 소득세 징수에 집중하면서 지난 해부터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많이 걷힌다. 지난 2008년 법인세가 소득세보다 28000억원 더 걷혔지만 2013년에는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39000억원 더 징수됐다. 특히 지난 해 10월까지 소득세는 전년 대비 39000억원이 더 걷힌 반면 법인세는 7000억원이 적게 징수됐다. 그만큼 격차가 더 벌어질 전망이다경기가 좋지 못해 법인세가 줄어들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단행된 법인세 감세 효과도 크다는 추정이다. 지난 2009년 이후 2013년까지 5년 동안 줄어든 세수는 무려 372000억원에 이른다.
 
결국 ‘13월의 월급‘13월의 납세로 전환되면서 8600억원의 세금납부가 이뤄지는 올 1~2월은 민간소비가 축소할 우려가 있다. 더욱이 올 2월은 5일 연휴의 설까지 끼어있어 가계부담이 상당하다. 거위깃털 뽑기란 말은 조세행정 분야의 유명한 경구(警句)이다. 세수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급격히 세율을 인상하는 것을 자제하자는 뜻이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재무상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가 바람직한 조세 원칙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는 조세행정 분야에서 유명한 경구 가운데 하나다국민은 각종 조세법률관계에 있어서 평등하게 취급돼야 한다. 조세부담은 국민이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담세력)에 따라 공평하게 져야 한다. 이것이 조세 공평주의(공평부담의 원칙)이다. 조세가 국민의 담세력을 무시하고 불공평하거나 무리하게 부과될 때 국민들이 저항감을 갖는다. 이른바 조세저항이다. 따라서 공평부담의 원칙은 어느 정부나 조세저항을 줄이기 위한 필수적인 그리고 최선의 정책이다.
 
깃털(세금)을 많이 얻으려고 거위(경제 상황)를 함부로 다룰 경우 거위가 소리를 지르게 된다.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생활을 하는 서민들은 올 들어 담배값 인상에 이어 연말정산 폭탄으로 새해 벽두부터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담배 한 모금 마음놓고 피울 수 없게 된 데다 곳곳에 세금 지뢰밭이 깔려있기 때문이다200여년 전 프랑스 재무상 콜베르가 거위깃털 뽑기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거위(국민)들의 깃털(세금)을 맘놓고 뽑으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급격히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늘려선 안 된다는 경고의 뜻을 담고 있다.
 
작년 자동차세 인상에 이어 지금 담배값 인상으로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걸리기만 해봐라"며 화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눈치다. 이러한 때에 연말정산 세금폭탄 파동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告訴願)’격이라고나 할까. 마치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꼴이다. 지난 20138월 세법개정안 파동 때도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은 미시적인 수치에 매몰돼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잘했다고 할 것"(당시 현오석 부총리 당정협의 발언)이라고 되레 호언장담했다. 현오석 경제팀의 정무적 판단능력이 사실상 백지상태였던 셈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5%대로 취임 이후 사상 최저로 내려앉았다. 연말연시의 정윤회 문건파동이나 연두 국정 기자회견 때 국민과 맞서는 듯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 지지를 거둔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한 결과라고 한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담배값 인상과 연말정산 '세금폭탄'이다. 정치적 요인 말고도 경제적 실망감이 한몫을 했다는 풀이다. 요즘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도진개진이라고나 할까. ‘백면서생인 현오석 부총리에 이어 정치인 출신인 현 최경환 경제팀의 정무적인 판단능력이 한심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슬기로운 관료들은 정책 입안단계에서부터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한다. 세법개정안을 발표안대로 시행할 경우 어떤 효과와 파장, 그리고 혹시라도 국민적 저항이 없을 것인 지를 예상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을 충정으로 보좌하는 충직한 참모들의 모습일 것이다. 서민증세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세수가 부족한데도 법인세는 털끝만큼 손도 대지 못하면서 거위들만 마냥 쥐어짜는 식으로 깃털을 뽑는다면 곤란하다. 마구잡이로 깃털(세금)을 뽑힌 거위(국민)들이 당연히 비명을 지르고, 경우에 따라서 극한투쟁에 나설 것이 뻔한 탓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판 조세저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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