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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은행이 장고(長考)를 끝낼 때다
이제 한국은행이 장고(長考)를 끝낼 때다
  • 김병주
  • 승인 2015.03.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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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칼럼> 한국은행이 뜸을 많이 들이고 있다. 신중하다는 것은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존재 의의는 물가안정 이외에도 금융시장 불안과 위기를 시기적절하게 해소하는데 있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항로(航路)없는 해역(海域)으로 배를 몰아가고 있다. 불경기가 깊어지는 와중에 전통적 금융정책수단의 유효성이 떨어지자 미국 연방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파격적으로 늘이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이하 QE)를 시행하는 과감한 조치를 감행했다. 2008년 11월 말부터 국공채를 매입하는 QE를 실시, 그 후 두 차례 더 확대했다. 세 차례 QE이후 경제지표 호조의 조짐이 보이자 2014년 10월 말로 일단 중단했다.

QE가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전달경로를 분명히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확립된 바 없다. QE를 주도한 벤 버냉키 자신도 작년 젝슨 홀 미팅에서 아마도 ‘시장의 심리효과’가 자극되었을 것이라고 솔직한 소감을 토로했다. 경로야 어찌되었거나, 정책 유효성은 일단 인정된 셈이다. 영란은행도 국채와 우량 회사채를 매입하는 QE를 몇 차례 시행해왔다.

  며칠 전 일본은행 쿠로다 총재가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와 그에 따른 신용평가 기관의 등급하락 문제를 거론하며 아베수상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으나 QE정책은 그대로 지속될 것이다. 한편 중국 인민은행은 비은행 금융부실 심화 방지에 유의하는 동시에 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기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필요한 어떤 조치라도 다하겠다.’는 말로 유명하다. 그간 QE가 미루어져 왔었으나, 바로 며칠 전 3월 9일부터 유로존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각국의 국채를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마이너스 수익률로 매입하기 시작함으로써 QE가 본격화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 중앙은행은 ‘필요한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나? 셰익스피어 희곡의 햄릿왕자 모습이 역력하다. 다만 금융위기 초기 2008년 가을 약 8조 규모의 공채(자산관리공사, 토지주택공사 등 발행채권)를 환매조건부로 단기간 운용한 실적이 보인다. 근래 한은이 시중은행을 상대로 공급하고 있는 금융중개 지원제도가 눈에 띈다. 최근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지원 대상에 넣고 지원 분야를 확대하고 지원 자금 규모를 30조원까지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무언가 일하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시중의 심리’를 긍정적으로 돌릴 가시적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시중의 관심은 기준금리의 향방이다. 더 인하하자니 빚 규모가 이미 1,089조원 초과한 가계부문의 대량부실화가 우려되고, 기업 설비투자 유발효과도 기대난이다. 더구나 경기회생조짐이 뚜렷한 미국이 머지않아 금리인상 조치를 취할 개연성도 높아 보이고, 이 경우 달러자금의 대량유출, 국내금융시장 격동이 우려된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형세이다.

  세계 주요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서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견해차이가 있어도 좀처럼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게 처신한다. 행여 쌍방 간의 다툼이 외부에 표출되는 경우 선진국 꿈은 멀어진다. 유효한 금융정책의 관건은 중앙은행의 권위와 신뢰 뒷받침이다. 현재 한국은행에 대한 금융시장과 일반경제 주체들의 인상은 어떠한가? 아마도 힘을 암시하는 정부의 성급한 다그침을 의식하면서도, ‘독립성’ 의식에 마비되어 움직임이 굼뜬 모습일 것이다. 서로 권위를 세워주어야 정책이 유효하게 작동하는데도 말이다.

  현 단계에서 금리 향방은 일단 인하로 가닥을 잡아야 할 듯하다. 그것이 현재 경직된 국면을 해소하는 길이다. 어차피 금리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이미 시장에 반영되어 금리조치의 알림효과(announcement effect)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대화하라! 조용히, 그리고 이성적으로 말이다.

  정책기관들이 동일한 지향성을 가지고 보조를 같이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실질적 내용보다 신호가 더 효과적인 때가 있다. 바로 현재 이 시점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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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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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병주 ( pjkim@sogang.ac.kr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재단법인 나눔21 이사장
 
   (전) 한국경제학회 회장
 
   (전) 한국은행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전)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이사장, 소액서민금융재단 이사장
    (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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