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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과 발권력 동원
중앙은행과 발권력 동원
  • 최영희 기자
  • 승인 2015.03.2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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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찍어서 경기부양‥우려되는 '최후의 보루' 발권력

 
지난 200411월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가 환율 방어를 위해 중앙은행의 '발권력'까지도 동원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말들이 무척 많았다. 경제수장이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인 발권력을 거론할 수 있느냐는 비판론에 직면한 탓이다. 사실 발권력은 경제의 최후 보루이다.일국에 전쟁이 발발하면 보통 화폐를 찍어 낸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화폐 가치가 어떻게 되는가. 전후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화폐가 순식간에 휴지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런데 경제수장의 현실인식이 부재하거나 안일하다는 지적이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번갈아 가며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한은은 사상 첫 연 1%대 기준금리 인하도 모자라 5조원의 돈을 찍어 시중에 풀기로 했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10조원짜리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한은의 대책이 꺼져가는 경기 불씨를 살릴지는 미지수다.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를 꺼리고 있고 얼어붙은 소비심리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26일 경기회복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이어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 확대와 함께 대출금리까지 내리는 등 그야말로 동원할 수 있는 경기 부양 카드를 모조리 쏟아내는 모습이다. 하지만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증액하기 위해서는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 시행중인 금융중개지원대출(구 총액한도대출) 한도를 15조원에서 20조원으로 5조원 증액하고 대출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의 지원대상도 중견기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연 0.51%의 저리로 은행에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금융중개지원 대출 한도가 한꺼번에 5조원 늘어난 것은 1994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거나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6월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금융중개지원대출 프로그램 중 3조원 한도의 기술형창업을 신설했다. 지난해 3월에는 정부의 회사채시장 정상화를 측면사격하고자 정책금융공사에 3조5,000억원을 저리 대출했다. 9월에는 3조원 한도 설비투자 금융중개지원대출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경제는 상대적이다. 우리가 발권력을 동원해 환율전쟁에 가세한다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나올까. 일본의 엔화, 유럽의 유로화 등이 가만히 앉아 있을까.또 각국의 재무 장관들이 달러 강세를 저 멀리서 관망만 하고 있을까. 세계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모두들  어떤 방식으로든 외환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의 향후 환율 제도에 대한 개입 여부이다. 개입 여부가 어느 정도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 같으면, 시장 개입을 국내에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경제는 이미 각국이 쇠사슬로 연결돼 있다. 그 쇠사슬 중에 어느 하나가 끊어지면, 그 고리가 더욱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라면, 전체가 무너진다우리 대한민국 자체 만을 본다면, 발권력 아니라 발권력 보다 더한 것을 동원해도 된다. 세계경제 시대에는 각국과 발을 맞추어야 산다. 우리만 성질을 내고, 우리만 어떤 정책을 세운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그에게서 나온 경제 정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식으로 튀어나온다.  해법이라고 생각하면 뭐든지 '무당춤'이라도 추는 양상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시원스레 성과를 본  것이 별로 없다.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증액하기 위해선 한은의 발권력이 동원돼야 한다. 따라서 논란도 적지 않다. 발권력이 자칫 과도하게 동원되면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꺼내든 카드가 되레 전 국민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금융중개지원대출 대상이 중견기업으로 확대되면서 과도한 지원이라는 비난도 나온다정부가 재정을 통해 수행할 수 있는 중기·중견 지원 정책을 한은이 이를 중견기업으로 까지 확대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서는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한은이 발권력을 이용해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뉜다. 수긍론자들은 금리를 낮춰도 소비나 투자가 살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부문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특정 영역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은 세금을 재원으로 해야 하며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중앙은행이 이런 형태의 지원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며, 정치적인 중립성을 유지하는 명분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특정 영역에 대한 발권력 동원이 늘어난다면 통화당국도 행정부처럼 입법부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지 못한 기업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받은 경쟁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중립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특정 목적에 계속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 앞으로도 문제가 있으면  다른 사안에도 발권력을 동원해야 하는 까닭이다. 
 
아무쪼록 이주열 총재가 최경환 경제팀의 '널뛰기'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중앙은행의 위상을 차분히 잡아주기를 바란다. 차분히 10년 후를 내다보며 발권력동원에 따른 세간의 우려를 잠재워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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