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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행-우리들의 '장발장'
장발장은행-우리들의 '장발장'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4.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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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비례 무시한 벌금형..가난해서 교도소가는 건 국가적 수치

 

장발장(Jean Valjean)은 프랑스의 문호(文豪)-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이다. 작자는 이 인물을 통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자가 죽음에 이르러서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찾게 되는 영혼의 과정을 묘사했다. 한 사제(司祭)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을 뜨게 되고, 사회에 항거해 가면서 고민하다가 점차 순화, 성화(聖化)하는 과정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벌금형을 선고(확정선고)받은 사람은 30일 안에 완납을 해야 한다. 납부를 못하면 독촉에 이어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진다. 낼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끝내 벌금을 내지 못하면 노역장에 가야 한다. 벌금 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은 최근 4년 동안 평균 28000여명에 이른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 갈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장발장은행이다.
 
지난 2월 출범한 장발장은행은 몇십만~몇백만원의 벌금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심사를 거쳐 최대 300만원까지 이자와 담보 없이 빌려준다. 다만 선고받은 벌금 액수가 넘는 금액은 신청할 수 없다. 현재까지 장발장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은 65, 이들에게 모두 1억원이 넘는 대출금이 전달됐다. 돈을 빌릴 때 담보는 필요 없고, 6개월 이후 1년 내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면 된다. 이들에게는 생명줄과 다름없는 대출금은 시민모금으로 충당한다. 지금까지 개인·단체 등 후원자 676명이 14800여만원을 장발장은행에 후원했다.
 
우리나라에 벌금을 못 내서 교도소에 가는 사람이 4만명이나 된다. 잘못은 했지만 오로지 가난한 이유 탓이다. 이런 일들이 사회적으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은 죄질이 나빠서 또는 위험해서 교도소에 가는 경우가 아니다. 경미한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가는 것이다. 소설속 장발장을 연상케 하는 이 은행을 두고 세간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좀도둑을 미화하지 말라는 비난부터 형벌의 범죄 예방 기능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장발장은행은 단돈 몇 십만 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태어났다. 이 은행이 생긴 계기는 인권연대에서 진행하던 ‘43199’ 캠페인이다. 431992009년에 돈이 없어 노역장에 수감된 사람의 숫자다. 벌금형은 징역형보다 가벼운 징벌임에도 집행유예가 없고, 한 달 안에 현금으로 벌금을 완납해야 한다. 또한 일수벌금제(재산에 따라 벌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를 시행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처음 장발장은행 사업을 시작했을 때 ‘1000만 원 정도만 모금해서 몇 명만 돕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기엔 장발장들이 너무 많았다. 아르바이트가 끊겨 고시원 방세도 밀린 중에 길에서 잠든 취객의 2만 원을 훔쳤다가 벌금 90만 원을 받게 된 20대 청년, 남편의 가정폭력을 못 이겨 무고죄를 저지른 20대 엄마. 눈감고 넘어갈 수 없는 사연들이 밀려들었다. 문의 전화를 걸자마자 울먹이며 제발 도와달라고 말하는 이들을 다독이는 게 사무실 직원들의 일과가 됐다. 너무 많은 상담전화가 밀려드는 바람에 활동가들은 성대결절에 걸려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에게 생활 형편에 따라서 벌금을 유예해 주거나 하는 제도가 전혀 없다. 징역형이 벌금형보다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인데도 집행유예가 있다. 하지만 벌금형에는 집행유예 자체가 없다. 벌금은 지금 한 달 이내에 전부 현찰로 완납해야 한다. 카드 납부도 안 받아준다. 그래서 카드납부를 안 받아주는 건 검찰의 횡포라고 비난도 적지 않다. 돈 많은 사람들은 징역 5년 받을 범죄를 저지르고도 모두 집행유예로 나오는데, 왜 고작 벌금 100만원 가지고 교도소 가서 살아야 되냐는 다큐멘터리도 나왔다.
 
문제는 똑같은 벌금액수라고 해도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형벌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그냥 선처에 불과할 뿐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100만원, 200만원 돈 때문에 대신 교도소에 갈 만큼 굉장히 무거운 형벌, 중형이 된다. 법원리상 형벌은 똑같은 잘못에 대해서 똑같은 고통을 부과해야 한다. 그런데 빈부격차에 따라서 재산이 많냐 적냐에 따라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면 모순이다. 형벌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공평함, 평등함 같은 것들을 놓치는 탓이다.
 
따라서 벌금형도 소득수준으로 비례를 해서 고소득자에게는 큰 벌금을, 그리고 저소득자에게는 그에 비해서 부담을 주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실제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런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재산이나 소득에 따라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을 달리 내고 있다. 이에 대해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로 여기는 것이다. 지금 이를 바꿔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꼭 고쳐져야 할 그런 제도가 바로 벌금형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빈부격차가 대단히 심각하다. 경기회복이 지연될 경우 저소득층의 빈곤과 가계부채 문제는 다른 계층에 비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장발장은행엔 매일 3백 통가량 문의 전화가 쏟아지지만 지난 달 문을 연 이후 대출을 받은 사람은 65명에 불과하다. 장발장은행은 100% 시민 기부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기금이 14천만 원 밖에 안된다. 하지만 기금이 부족해 혜택은 소수에 그친다. 잘못하면 어렵게 시작한 장발장은행의 금고가 바닥을 드러낼 형편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쳐 징역 19년을 살게 된다. 지금도 장발장처럼 벌금을 못내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는 사람이 매년 4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런 장발장이 없도록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장발장 은행인 것이다. 사회에서 미리엘 주교의 온정도 중요하지만, ‘자베르 경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일각에서는 국가 형벌권을 가볍게 보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벌금을 나눠 갚으며 오히려 반성할 기회를 더 오래 갖게 되지 않을까. 이른바 먹튀우려에 대해서도 선의로 해석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받은 도움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믿음이 살아있는 까닭이다. 경미한 범죄에 가난한 처지로 교도소에 가야하는 건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개인별 소득 비례를 도외시한 벌금형이 부자에겐 선처, 빈자에겐 재기불능의 치명상으로 작용하는 것은 불행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역할을 하는 장발장은행에 박수를 보낸다사회 곳곳의 미리엘 주교들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장발장은행에서는 기부할 좋은 뜻을 갖고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장발장은행을 치면 홈페이지로 갈 수 있고, 계좌번호가 나와 있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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