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6:55 (금)
돈-권력-명예, 뜬구름 욕망
돈-권력-명예, 뜬구름 욕망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4.19 15:29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완종과 정주영, 반복하는 '정경유착' 역사

 
"잘봐 주라고 와이료를 먹였다". "어려운 일인데 와이료를 쓰고 해결했다."

어릴 적에 일제 강점시대를 살아온 옛 어른들이 사석에서 부지불식 간에 에 내뱉는 이같은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이 말 와이료(蛙餌料)가 모두 일본말로 알고 버려야할 일본어투 용어라고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해석이 있다. 일본어로는 회뢰(賄賂).뇌물(賂物)을 와이로 또는 아이로로 발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와이료에 대해서 해학적이고 재미난 유래가 따로 있다.
 
이 말의 어원과 뜻을 풀어보면 와()는 개구리 와,()는 먹이 와, ()는 되질할 료, 즉 계량할 수 있는 값이다. 한마디로 "개구리 밥값" 이 와이료인 셈이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시대에 어떤 임금이 백성들의 삶을 파악하기 위해 야간에 미복으로 갈아입고 잠행에 나섰다가 어떤 가난한 선비를 만났다. 임금이 이 선비의 집을 막 나올려고 보니 이집의 벽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有我無蛙(유아무와)人生之恨"(인생지한)이다. 문장의 내용은 ‘(나의 학문적 실력은 출중하나) 개구리가 없는 게 내 인생의 한이로다하는 뜻이었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던 글을 본 임금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선비에게 물었다. 부끄러워하는 선비를 재촉해서 뜻을 알아냈다. 중국고사의 우화에서 꾀꼬리와 까마귀(또는 뜸북새)가 서로 자기 목소리가 훨씬 아름답다고 다툰다. 둘 만으로는 승부를 가름 할 수가 없어서 이웃의 두루미를 심판으로 내세우고 그 결과발표를 사흘 뒤로 정했다. 자신만만한 꾀꼬리는 사흘을 기다렸다. 반면 까마귀는 두루미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서 꾀꼬리가 모르게 매일같이 바쳤다. 그 결과는 개구리를 뇌물로 바친 까마귀가 꾀꼬리의 목소리 보다 더 좋다는 판정이 나버렸다는 뜻이었다.
 
이런 우화를 들어 당시 부패한 조정에 대한 자탄(自嘆)의 글이라고 선비가 설명했다. 옳은 정답을 써냈는데도 10년 동안 줄곧 과거에서 낙방한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선비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임금은 5일 후 조정에서 실시하는 과거에 선비를 응시케 한다. 그리고 직접 시제를 有我無蛙 人生之恨!’으로 내걸었다. 모든 과거생들이 처음 보는 생소하고 어려운 시제였다. 결과는 가난한 선비가 장원급제로 끝났다. 이에 감격해서 고개를 들고 보니 5일 전에 배고파 찾아왔던 손님이 임금님의 용상에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뒤 이 가난한 선비는 충성스런 신하로서 천수를 다했다고 한다. 이 선비의 이름은 고려 명종 때의 유명한 문신인 백운거사 이규보란 말이 전해 내려온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역사에서 변하지 않고 거듭되는 게 있다. 그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망이다. 이 세 가지가 지금도 수많은 사건과 스캔들, 피와 눈물과 회한을 남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대부분 현대판 와이료의 문제에서 생겨난다. 최근 세상을 뒤흔드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그가 남긴 리스트 파동도 결국 와이료와 뇌물문제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정치인형 기업인인 그가 자신의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뇌물(와이료)을 뿌려야 했다. 그리고 급기야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수많은 비자금을 만들어 뇌물과 로비자금으로 활용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 가게 되자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이 비극적인 사태를 보면서 새삼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결코 한꺼번에 모두를 가지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이 세가지를 모두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되며, 가진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은 소리일 것이다. 물론 , 권력, 명예...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사람들이 돈, 권력, 명예를 좇는 것 역시 바로 그 지배욕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 명예 사이에는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성완종 전 회장은 국민학교 중퇴 후 신문배달과 같은 허드렛일으로 시작하여 대아건설과 경남기업 회장을 지냈다. 그의 꿈이 해방 후 자수성가한 최고의 사업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처럼 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수성가해 매출액 2조원대의 경남기업을 인수했다. 정 명예회장 역시 통천송전소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농사를 돕다가 집을 나와 현대그룹을 세웠다. 두 사람이 기업을 일군 이후 정치에 발을 담근 것 역시 닮았다.
 
한국사회는 학연(學緣)과 지연(地緣)-혈연(血緣)이 판치는 사회다. 성 전 회장이 학연이 없었다. 따라서 다른 인맥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은 동창회 명부를 보고 전화를 걸어서 도와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성 전 회장은 인맥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주목한 것은 지연이었다. 그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성 전 회장이 본격적으로 인맥을 쌓기 시작한 것은 1982년 한국청년회의소(JC) 충남지구 회장이 되고 난 뒤였다. 당시 경쟁자가 성 전 회장의 학력을 문제삼기도 했다.
 
하지만 회장이 됐고, 이 때부터 지역에서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서른한살 때 젊은 시절의 일이다. 성 전 회장은 그 뒤로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1991년에는 서산장학재단을 세워 스스로 이사장을 맡았다. 2000년에는 충청포럼을 만들어 충청도 출신 유력인사들과 교류해 왔다. “충청도에서 성완종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말도 나왔다. 지역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성 전 회장은 충청도 쪽에서 후원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이 다른 한 축으로 신경을 쏟은 곳은 권력기관이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정보기관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성 전 회장이 청와대 등 권력기관에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정보에 민감해 국정원 쪽으로 인연을 많이 쌓으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꼽히며 말년에 정치에 투신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 주로 비교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기업의 오너였던 정 회장 역시 국회의원이 된 뒤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한 기업인으로서 특별한 정치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에서 기업인이 정치인 진출을 꿈꾸는 일이 되풀이하고,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나도는 배경에는 이른바 정경유착이 자리한다. 돈을 쥔 기업인과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손을 잡는 부정부패는 우리 현대사에 끊이지 않고 반복돼 왔다. 1980년대 신군부 정권, 당시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경유착을 선택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신군부의 압력'에 눌려 동양방송을 내놨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역시 중공업 계열사였던 현대양행을 넘겨줬다. 재계 7위에서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된 국제그룹, 정치권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한 기업들은 속절없이 사라졌다.
 
정권과 재계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유는 단연 돈이다.전두환 전 대통령이 2,2595천만원, 노태우 전 대통령은 5천억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철창신세를 졌다. 20년 전이니 지금으로 따지면 수조원에 달하는 액수다. 2002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한나라당에 삼성 340억원, LG 150억원, SK 100억원, 현대차 109억원 등 모두 823억원이 전달됐다. 스타렉스 승합차로 돈을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차떼기 정당'이라는 꼬리표가 지금도 따라다닌다. 민주당 역시 삼성 30억원, SK 10억원, 한화 10억원 등 113억원을 받았다. 이전과의 차이라면 규모가 수천억원에서 수백억원대로 줄어들었다는 점 뿐이다.
 
부정부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성완종 발 정경유착' 태풍에 공무원연금개혁, 노사정 대타협 등 산적한 현안들이 묻히면서 피해는 다시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됐다. 인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줄곧 존재한 뇌물과 와이료(蛙餌料)’의 부끄럽고 슬픈 역사가 천년 전 고려시대에 이어 지금 이 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고인이 된 성완종 전 회장이 돈과 권력 명예 모두를 쫒는 신기루같은 삶을 살지 않고 기업인으로만 만족하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큰 돈을 못벌어도 평범한 중소기업인으로서 보람을 찾고 천수(天壽)를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완종 사태는 지금 우리나라와 우리 세대에게 다신 한번 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와이료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해야만 우리 세대가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조상이 될 것인가.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