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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120주년의 교훈
청일전쟁 120주년의 교훈
  • 이종각
  • 승인 2015.04.2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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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각칼럼>일본의 가장 유명한 복요리 전문점으로 성업 중인 시모노세키의 요정 슌판루(春帆樓). 1895년 4월 17일, 이곳에서 청국의 전권공사 리훙장과 일본의 총리 이토 히로부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청일전쟁 강화조약을 조인했다. 그 주요 내용은, ①청국은 조선의 ‘완전무결한 독립’을 인정한다, ②청국은 라오둥반도와 타이완, 펑후열도를 일본에 할양한다, ③청국은 배상금 2억 량(일본 화폐 3억 엔)을 일본에 지불한다 등이었다. 작은 섬나라 일본이 수천 년간 동양의 맹주로 군림해온 중국에 압승하여, 막대한 전리품을 챙긴 것은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청일전쟁(1894년 7월~1895년 4월)은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점령(1894년 5월)하자 다급해진 조선 정부가 청국에 군대지원을 요청해 청군이 출병하는 것을 핑계로 일본이 8천명 규모의 대군을 파견하고 일본군 2개 대대가 1894년 7월 23일 새벽, 경복궁을 기습 점령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일본군대가 남의 나라 궁궐을 무단 점령, 고종을 사실상 인질로 삼아 대원군을 앞세워 친일정권을 세운 것이다. 이후 잘 훈련되고 사기충천의 일본군은 오합지졸에다 사기저하의 청군을 초전부터 육전과 해전에서 압도, 청국은 개전 9개월여 만에 백기를 들었다.

  당시 일본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청일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 즉 동양에 있어 서양문명의 대표자인 일본과 전통적 동양문명, 즉 야만을 대표하는 청국간의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국수주의자뿐만 아니라 저명한 기독교 지식인 등 대부분의 일본인들도 이 '문명전쟁'론에 동조했다.

  일본의 대승으로 조선 등 주변국가가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던, 조공책봉 체제라는 천수백년 간 지속되어 오던 동아시아의 기본 질서가 무너졌다. 대신 일본이 조선지배의 교두보를 확보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거기에다 일본은 타이완을 영유하게 되어 백인 국가가 아닌 나라서로서는 유일하게 해외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랴오둥 반도는 1895년 5월 러·독·불의 삼국간섭에 의해 중국에 반환). 병든 노대국, 청에 대승을 거둔 일본조야는 의기충천한 가운데 러시아와의 일전에 대비하고, 이어 러일전쟁(1904년 2월-1905년 9월)에서도 승리한다.

  일본이 대국 중국과 러시아에 잇달아 승리한 원천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국력 신장이었다.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추진한 일본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이, 노쇠한 중국은 물론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던 러시아의 군사력에 앞서고 있음을 세계에 증명한 셈이었다. 청일전쟁은 우리에게 약육강식이란 국제정치의 냉엄한 원리와 약소국, 약소민족은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올해(2015년) 4월로 청일전쟁이 끝난지 정확히 120년이 된다. 작금 동북아시아 정세는 중국과 일본이 이 지역의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일촉즉발의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의 한국은 60만 군대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한 만큼 농민봉기를 제압하지 못해 대국으로 섬기던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던, 허약한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국력이다. 거기에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주변정세는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어, 강대국 틈에 끼인 우리의 입지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오늘의 중국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의 슈퍼 파워로 '대국굴기(大國屈起)', '중국몽(中國夢)'을 천명하며, 가히 욱일승천의 기세를 올리고 있다. '잠자던 노대국' 청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슈퍼 차이나'가 되었다. 한반도 유사시, 6.25 이래 북한과 '조중혈맹'으로 맺어진 중국의 향배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은 아베정권 출범 후 평화헌법개정, 집단자위권 논의 등 극우노선으로 치달으면서 한·중과는 영토분쟁, 과거사문제 등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거기에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우리와 주변국을 위협하고…

  어쨌든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란 강대국에 둘러싸인 반도국가이다. 이웃나라가 싫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정학적 제약은 어쩔 수 없다. 120년 전 처럼, 강자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작지만 강한 나라'(강소국)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청일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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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종각 ( jonggak@hotmail.com )  
    동양대학교 교수 (교양학부, 한일관계사)
 
   EBS이사
 
   (전) 일본 주오(中央)대 겸임교수
 
   (전) 동아일보 사회부·정치부기자, 정치부차장, 심의팀장
    

 
   저  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 동아일보사, 2009년
    이토 히로부미, 동아일보사, 2010년
    추락하는 일본, 나남, 2011년
    일본난학의 선구자 스기타 겐파쿠, 서해문집,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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