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재판과 지도급 인사들의 처신
론스타 재판과 지도급 인사들의 처신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5.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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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의 비극’..때가 되면 공성신퇴(功成身退)가 아름다워

 

 외환은행-론스타 로고

필자가 어릴 적에 존 웨인 감독, 주연의 '알라모(The Alamo)'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알라모 요새가 유명한 것은 존 웨인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 미국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상징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평화롭게 살고 있던 북미대륙을 유럽의 백인들이 콜럼버스 항해를 통해 생뚱맞게도 '신대륙 발견'이라 칭했다. 야만적 약탈자인 그를 영웅시하거나 식민지배를 개발·문명화라고 강변했다. 알라모 요새의 전투에 머리가 다소 먹먹했던 것은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명을 인간 이하의 것으로 간주하는 백인중심의 이기적인 세계관과 연관이 있다. 그때 궁지에 몰린 백인들이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동부지역에서 영국과 전쟁중이던 미국은 지원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알라모 요새는 외롭게 홀로 싸우다 전멸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알라모 요새'의 '외로운 별' 론스타

 
그것이 바로 텍사스를 가리키는 '외로운 별' 론 스타(lone star)의 유래였다. 외환은행 등을 헐값에 삼켜 천문학적 돈을 긁어모은 미국 투자펀드 론스타의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IMF 외환위기 후에 론스타는 당시 외환은행 등 다양한 국내 자산을 사고팔아 46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수익을 봤다.외환은행을 너무 헐값에 샀다는 의혹과 함께 제대로 된 세금을 안 냈다는 논란이 제기돼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이른바 론스타 '먹튀 논란'이다. 먹튀의 주인공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ISD)이 지난 15(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됐다
 
2003년 외환은행을 샀다가 2012년에 되팔아 47000억 원의 이익(배당금, 매각대금)을 남긴 론스타가 다시 5조 원을 웃도는 돈을 손해봤다며 그만큼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먹튀를 한 마당에 이번에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소송을 건 것이다. 결국 새로운 국제 소송으로까지 오게 됐다. 만약 한국정부가 소송에서 지게 된다면 이는 두 번이나 상투를 잡히는 꼴이다. 국격과 자존심이 걸린 매우 중요한 일이다. 19세기 알라모 요새의 수비대는 외롭게 홀로 싸우다 전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투기자본 론스타는 다르다. 서울에서만큼은 연전연승 중이다.
 
지난 2012년 론스타는 스타타워를 1000억 원에 사들여 2500억원 넘게 남기고 판 거래에 대해 국세청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자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또한 지난 해 6월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13.6%를 판 차익으로 부과된 양도소득세 1192억 원에 대해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론스타의 자회사인 LSF-KEB는 벨기에 법인이므로 양도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지난 해 11월에도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 매각 건에 원천징수된 세금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1172억 원을 돌려받게 됐다.
 

가만히 앉아서 따귀맞고 봉 잡히는 한국정부

 
그렇다면 한국정부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따귀맞고 또 봉 잡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론스타가 연전연승한다는 것은 한국정부로서는 연전연패를 당하는 것이다. 너무도 어이없이 론스타가 하는 대로 연속적으로 끌려다니며 국제사회에서 이꼴 저꼴 개망신을 당하는 꼴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정부가 애매한 처신과 극단적인 비밀주의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그동안 국익을 해칠 수 있다며 증인명단과 심리일정 등 ISD소송에 대한 모든 사실을 비밀에 부쳐온 탓이다.
 
한국정부의 론스타 소송과 관련한 참담한 처지를 낳게 된 원인과 뿌리를 가상으로 그린 소설 은머리 외국인(이시백·레디앙)’이 최근 출간됐다. 저자 이시백씨는 대한민국을 '까멜리아', 론스타는 '유니온페어'로 설정해 1997IMF 이후부터 기업과 노동자들 추락의 실상과 투기자본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씨는 "외환위기 속에서 까멜리아의 수많은 기업들이 속절없이 도산하고 헐값에 팔려나가면서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던 무렵의 일"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론스타(까멜리아)의 외환은행 인수자금의 물주가 실은 한국인('검은 머리 외국인')일 것이라는 의심을 담은 장면도 연출돼 있다. 이씨는 이 소설에 대해 "작가의 상상에 의해 쓰였으며 대한민국의 어떠한 특정 사실이나 인물과도 무관함을 밝혀둔다"고 머리에 써놓았다. 하지만 내용을 읽다보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 까멜리아은행(외환은행)을 미국 사모펀드 유니온 페어가 인수할 때 이에 저항하다 해고돼 사채업을 하던 주인공 루반이 이 은행 인수의 흑막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 책의 중심 줄거리이다.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 인맥 '내부의 탐욕'

 
주목할 것은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 인맥 내부의 탐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매각 저지 투쟁을 벌이던 노조 내부의 갈등도 나타난다. 자본가와 모피아가 악이고, 이들에 당하거나 싸우는 사람은 선이라는 구도를 넘어 노동자들 역시 자본의 욕망의 덫에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 이시백씨는 소설 맨 뒤편 '작가의 말'에서 "까멜리아의 비극이 모피아들만의 것이 아니라,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에 주목했다"고 썼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취임한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의 처신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법무법인 세종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5조원대 투자자-국가소송(ISD)을 대리하고 있는 탓이다. 더욱이 윤 고문은 대표적인 모피아 관료 출신이다. 옛 재무부 출신으로 금융감독원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문제가 된 외환은행장 등을 거친 윤 전 행장이 론스타의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간 것은 아무리 봐도 부적절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매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고 했다. 윤 전 행장과 세종 모두 론스타 ISD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문 계약 해지 촉구 목소리까지 나올 만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파동의 직,간접적인 당사자가 론스타를 대리하는 로펌의 고문으로 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일반국민의 정서상 용납하기 힘들다.
 

한국 금융에 교훈과 생채기 남긴 '론스타 먹튀'

 
이른바 론스타 사태는 한국 금융에 커다란 교훈과 생채기를 남겼다. 당시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이 잇따라 법정에 서면서 공무원사회의 보신주의가 심해졌다. 촉망받던 재무관료였던 변양호 전 국장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내긴 했다. 하지만 남은 상처와 충격이 아직도 크다. 해외자본을 놓고 투기 자본이라며 적대시하는 경향도 커졌다. 지금도 국내 기업이 해외 자본에 팔릴 때마다 론스타는 꼭 한 번 씩 거론된다. 이미 지분을 다 팔고 떠난 론스타이지만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론스타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가경제와 직결된 사항을 철저히 함구한 채 정부가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조용한 다수의 국민(silence majority)들은 이 대명천지에 밀실재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더군다나 세금 수조원이 걸린 세계적인 재판이다. 우리 정부가 소송에서 질 경우 5조원이 넘는 돈이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가게 된다. 소송이 이런 식으로 극도로 밀실재판으로 진행되면 자칫 진실이 모두 파묻히게 될 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모피아 출신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의 처신이 다시 한번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소설 속  까멜리아의 비극이 꼭 모피아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씨가 공성신퇴(功成身退)’라는 옛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주기를 바란다. 공성신퇴는 공을 세워서 이룬 뒤에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정치권이나 관료 사회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공을 이루었다고 보상을 바라는 것은 더 이상 공이 아니란 의미다.
 
종종 관료사회에선 현직에서 퇴진한 뒤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관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용퇴하는 선배 관료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공성신퇴의 모습이 아닐까.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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