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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승절, 대만의 전승절
중국의 전승절, 대만의 전승절
  • 허영섭
  • 승인 2015.09.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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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칼럼>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의 전승절 행사는 끝났지만 대만에서는 그 여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한 것이 지금의 중국이 아니라 과거 장제스(蔣介石)가 이끌던 중화민국 군대라는 기본적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입니다.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친(親)중국 성향을 보이면서도 전승절 행사와 관련해서는 중국에 완전히 등을 돌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 3일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병식이 거창하게 펼쳐진 직후에도 대만 정부는 “제2차 대전에서 중화민국 군대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은 국제사회가 널리 인정하고 있으며 역사적인 근거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중국 정부에 대해서도 역사를 직시하도록 주문했습니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가해 열병식을 참관하고 귀국한 롄잔(連戰) 전 국민당 주석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국민당 내부에서도 당 차원에서 그를 징계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과거 부총통을 지냈고, 총통 후보로까지 출마했던 정치 지도자의 입장에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중국 행사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너무 무책임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를 반역죄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고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들이 결국 대만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일 텐데도 그에 대해 박수를 보낸 것은 대만 군인들에 대한 모독이자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것입니다. 롄잔의 열병식 참관 좌석이 홍콩과 마카오 대표들과 같은 자리에 마련됐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반발 여론은 더욱 거세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에게 매달 지급되는 37만 대만달러(약 1,300만원)의 연금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이처럼 제2차 대전 당시 중화민국의 공적에 대한 국민당 정부의 역사 인식은 확고합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해방군이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쟁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할은 거의 미미했고, 오히려 종전 이후에 대비해 전력을 비축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1943년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카이로 회담에 참석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와 함께 전후 대책을 논의한 주인공도 장제스였습니다.

그러나 대만 사회가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당이 제2차 대전에서 공헌했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지금의 대만과는 관련이 없다는 생각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에게 패배하고 1949년 대만으로 쫓겨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요. 중화민국은 중화민국이고, 대만은 대만일 뿐이라는 또 다른 역사 인식입니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제2차 대전에서 일본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싸웠다”고 언급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일본에 저항하는 전쟁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오히려 “그때 우리 두 형제가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까지 말합니다. 그가 당시 이와사토 마사오(岩里政男)라는 이름으로 참전했으며, 그의 친형인 리덩친(李登欽)도 필리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입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중국 열병식에 등장한 신무기에 대한 대만 사회의 걱정은 한결같습니다. 중국이 열병식을 통해 주변국들에 대해 무력시위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지만 중국 대륙과 불과 2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만으로서는 그 위협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30만명의 병력을 줄이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대만 언론들은 뒷전으로 흘려듣는 분위기입니다. 군 병력을 무장경찰이나 공공보위기관 소속으로 전환하는 정도의 서류상 조치에 불과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특히 중국이 최근 군사훈련에서 대만 총통부 청사를 장악하는 모의훈련을 벌였다는 사실까지 전해진 터라 이러한 우려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사정입니다. 중국이 내몽고 군사기지에서 총통부 청사 모형을 만들어놓고 공수특전단 부대가 낙하산을 타고 침투하는 훈련 장면이 중국 텔레비전에 방영됐다는 것이지요. 대만이 연례적으로 한광(漢光)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이 경제교류를 통해 협력관계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이렇듯 잠재적으로는 무력공격의 가능성을 서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전승 기념일을 보내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지요. 더구나 내년 대만 총통선거에서 현재 진행되는 구도대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당선될 경우 양안관계는 다시 심각하게 얼어붙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차이 후보가 양안관계에서 ‘현상 유지’를 내세우고 있으나 민진당이 기본적으로 대만의 독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갈등 요인이 불거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앞서 리덩후이 전 총통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한편, 이번 기간 중 대만에서도 종전 70주년을 축하하는 갖가지 행사들이 진행됐습니다. 2차대전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렸고, 그때 중국 전선에서 싸웠던 각국 참전용사들에 대한 초청행사도 열렸습니다. 베이징에서 열병식이 열렸던 바로 그날이 대만에서는 ‘군인의 날’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행사가 이어졌던 것이지만 열병식에 거의 가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승 기념일’마저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대만 국민들의 심정이 어떠할 것인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요.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동서남북'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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