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현대그룹 오너, 사재출연 등 해운사 구조조정 놓고 큰 차이
한때 잘 나가던 해운업이 이처럼 처참하게 몰락할 수 있을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국내 2대 국적사가 모두 자율협약에 돌입하는 등 각각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각 사는 자율협약이 다시 회생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있으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보다 앞서 자율협약에 돌입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달부터 채권단과의 조건부 자율협약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이에 용선료 인하 및 채무조정 등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현정은 회장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300억원 규모의 사재출연을 하고 이사직을 내려놨다. 특히 경영정상화 방안 중 하나였던 현대증권 매각 절차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한시름 놓았다는 반응이다.
현대증권 매각 대금 전액은 산업은행과의 협의 하에 현대상선의 운영자금으로 우선 활용하고, 자구안 완료 이후 사업 정상화와 재무구조 안정화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도 지난 2014년 2분기부터 영업익을 내고, 조양호 회장도 한진해운에서는 연봉을 받지 않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불황을 견뎌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업가의 처지에서 애써 일궈놓은 기업이 구조조정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와 주식감자 선언은 예정된 수순이다. 현대상선 등기이사 직을 내려놓고, 무상감자를 결정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정작 문제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사태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와 방식이 너무도 다르다는 점이다.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현대상선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현대상선 이사회 의장직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사재 300억원 출연을 약속했다. 업계에서는 이 모든 것이 상장폐지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해석했다. 반면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은 22일 한진해운 경영권을 전격적으로 포기하고 채권단 자율협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특히 채권단의 경영 정상화 논의 과정에서 일시적인 부족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한진해운이 답을 가져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는 우회적으로 조 회장의 사재출연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영권을 내놓더라도 대주주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채권단 입장이다. 경영권 포기가 사재출연 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 주식을 1주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 지분 940만 9517주를 보유중이다. 22일 종가기준 1788억 원에 해당한다. 주식담보 등을 통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 다만 스스로 경영권포기 선언을 한 조 회장이 사재출연에 응할 지는 미지수다. 사재출연을 결정하더라도 지원 규모 등을 놓고, 채권단과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이 점이 현정은 회장은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과 함께 300억 원의 사재를 털어놓은 것과 대비된다.
놀랄 만한 일은 또 있다. 전직 한진해운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그 자녀들이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한진해운 지분을 전량 처분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저가 메리트에 끌려 한진해운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의 대량 손실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이달 최 회장 일가가 보유 주식을 전량 처분한 것을 두고 자율협약 신청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 손실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최 회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제수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조수호 회장이 2006년 벌세한 이후 제수인 최 회장이 독자 경영했다. 이번에 매각한 주식은 한진해운 지분의 0.39%에 해당한다. 한진그룹 측은 “매매 사실에 대해서는 사전에 전혀 몰랐고 상의된 바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단순히 알고 모르고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똑같은 곤경을 겪고 있으면서도 기업에 따라. 오너의 경영스타일과 기업의 경영문화에 따라서 대처방식이 너무도 다른 점이 주목된다. 한진해운이 처한 상황이 현대상선보다 훨씬 나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채권단이 요구하는 사재출연 규모가 상당할 전망이다. 한진해운은 "이제 막 자율협약 신청을 결정한 단계"라며 "대주주 사재출연을 논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과연 조양호 한진 회장이 사재출연을 논하기에 시기가 이른지 아니면 사재출연을 할 의도나 생각이 없는 지를 잘 모르겠다는 우려들이 재계주변에선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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