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후 우리은행 '인사청탁 의혹' 얽히며 잡음

발단은 우리은행에서 낸 한 장의 해명자료에서 시작됐다. 박영수 특검팀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수사하는 중에 우리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인사청탁을 시도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입수했다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지난 해 7월 최순실씨가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 앞으로 경찰청장, 우리은행장, KT&G 사장 후보로 10여명의 명단을 포스트잇에 적어 보냈다는 내용이다.
우리은행은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인사청탁 파일이 작성됐다는 지난해 7월은 행장 임기가 6개월 이상 남아 있는 시점이었다”면서 “(차기 행장을 노리던) 일부 내부 인사들이 비선 라인을 통해 인사청탁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인사청탁 시도와는 무관하게 현직 은행장이 민간 주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민선 1기 행장으로 선임됐다”고 주장했다.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우리은행장은 현직 이 행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행장은 2014년 취임 때 이미 인사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지난해 민정수석실에 또다시 이력서를 제출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명 자료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우리은행장이) 이 행장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 (자료를) 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해명자료 내용 중 ‘일부 후보자가 청탁을 시도한 정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구다. 후보군에 올랐던 다른 인사 중 누군가가 인사청탁을 시도했다는 점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가 나간 후 인사청탁 화살은 자연히 올 초 우리은행장에 도전했던 다른 후보들로 향했다.
그러자 5명의 후보자들은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최순실 비선라인을 통해 인사청탁한 사실이 없다며 청탁 의혹을 받아 치욕스럽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특검에 청탁과 무관한 우리은행장 후보자들의 명예를 위해 인사청탁한 자의 신원을 밝혀줄 것도 요청했다.
유력한 우리은행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다 지원서 제출을 고사한 해외 법인장도 이 같은 의혹을 받게 되자 지난 금요일 중국에서 급거 귀국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극비리에 이 행장과 면담을 가진 후 이번 사건으로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며 관련 책임자를 색출해 문책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명단만 있고(로비) 정황은 없다”며 포스트잇에 등장하는 실명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행장 공모가 끝나면서 모든 역량을 민영화 조기 안착에 쏟으려던 우리은행은 이런 상황에 몹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한 우리은행 직원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되는 것은 (우리은행의) 영업력에도 손실을 미칠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의혹이 투명하게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해외법인장은 이번 민선 우리은행장 공모 때 유력한 후보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으나 정작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그가 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핵심 인사와 가깝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행장 응모를 안 한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해당 인사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최순실을 전혀 모른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부인했다.
금융권 주변에서는 '우리은행-최순실' 의혹에 대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라며 뭔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이른바 서금회 출신 논란을 뚫고 연임에 성공한 이 행장이 연임 후 ‘최순실 불똥’을 맞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은행 측이 좀더 세련되게 해명했더라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지 않았을 텐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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