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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수호조약, 그 치욕의 현장에서
강화도수호조약, 그 치욕의 현장에서
  • 허영섭
  • 승인 2017.03.0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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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칼럼> “역사는 간단없이 흘러가되 교훈은 남는 것이니 이곳 연무당은 그 역사의 교훈을 듣는 데다. 일찍이 여기에서 강화부의 군사들을 훈련했었고 최근세 1876년 고종 13226일 이른바 병자년 한일수호조약을 체결했던 곳이다.”

강화읍 관청리 615번지 연무당(鍊武堂) 옛터의 비석에 새겨진 글의 첫머리입니다. 조선이 일본의 압박에 억지로 문호를 열었던 병자수호조약 체결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병자수호조약이 국제법에 근거해 조선이 외국과 맺은 첫 번째 조약이라고 하지만 명백한 불평등 조약이라는 점에서 치욕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됩니다. 비석에 적힌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의 유려한 문장이 아니라도 역사에 대한 비장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강화 읍내를 관통하는 중심도로가 끝나는 공터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연무당 옛터라는 비석 자체가 숙연한 모습입니다.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서문(西門)의 높다란 위용에도 비교가 됩니다. 원래 강화 진무영(鎭撫營) 병사들을 훈련하던 곳으로, 훈련장 한쪽에는 연무당이 세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둥 자리조차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채 비석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럴지언정 비문은 지난 역사를 그대로 증언합니다. 조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일본이 군함 운양호(雲揚號)를 동원해 초지진 포대를 공격하고 영종도에서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다는 사실에서부터 수호조약 체결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술책으로 마침내 망국의 운명에 처했던 비극적 장면까지 상기시킵니다. “그로 인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마는 실상은 도둑에게 문을 열어 주었던 것과 같다는 것이 노산의 분개 섞인 표현입니다.
 
때마침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대륙에서 해양으로전시에서도 이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었다는 점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선은 자주의 나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하면서도 부산 외 2곳의 개항과 조선의 해안 측량, 영사 재판권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연한 조선 땅인데도 일본이 회담장에 군사는 물론 대포까지 배치한 채 회담을 진행했다는 사실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문호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밀리듯 회담에 임함으로써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조선 조정의 대표로 나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헌(申櫶)이 일본의 구로다 기요다카(黑田淸隆)를 맞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협상을 펼쳤다는 것이 위안입니다. 하지만 이미 판세는 기울 대로 기울어진 처지였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미국과의 무역장정(1882)과 영국·독일(1883), 러시아·이탈리아(1884), 프랑스(1886)와의 통상조약이 제대로 체결됐을 리 만무합니다.
 
지금의 관심사는 우리가 과연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역사는 흘러가되 교훈은 남는다는 노산의 첫 문장을 새삼 떠올리는 이유입니다. 요즘 우리가 처한 상황이 구한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현안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통 우방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도 방위비 분담금에 환율 문제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우리 내부의 모습입니다. 특히 요즘의 모습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그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습니다.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정치인들은 대권을 놓고 이념과 노선으로 갈려 이전투구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포퓰리즘 공약만 내세우고 있을 뿐이지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난하지만 다음 지도자가 지금보다 나라를 더 잘 이끌어 가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국민들의 단합된 의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주말마다 도심 집회에 몰리는 촛불과 태극기의 행렬을 지켜보면 이미 생각들이 갈라진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어느 한쪽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팽배합니다. 결국 사회적 혼란은 가중될 테고, 그런 분위기에서 대한민국은 외세의 간섭이 없어도 서서히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다시 연무대 비석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오직 제 힘을 기른 다음에라야 어떤 고난이든지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이기에 그 뜻을 돌에 새겨 자손만대에 길이 전한다는 마지막 문장에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이제 연무대 옛터에도 봄이 오려는지 누렇게 시들어버린 잔디 사이로 새움이 하나씩 돋아나려는 기색입니다. 잔디가 새싹을 틔워 다시 계절의 기쁨을 노래할 즈음 대한민국의 운명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역사의 현장에서 느끼는 단상입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동서남북'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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