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와 홍라희 여사
혜경궁 홍씨와 홍라희 여사
  • 정진교 기자
  • 승인 2017.03.0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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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구속과 삼성가 안방마님의 '퇴진'
    홍라희 여사

[금융소비자뉴스 정진교기자] 사도세자의 아내로 끔찍한 세월을 감내하며 궁에서 천수를 다한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 그녀는 10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온 뒤 81세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 왕실의 여인으로 살다, 한낱 여인으로 죽음을 맞이한 혜경궁 홍씨는 조선시대 왕실의 화려함이나 영광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비밀스럽고 고독한 궁중생활은 스스로 쓴 ‘한중록(閑中錄)’에서 잘 나타난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인 임오화변(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죽은 사건)을 둘러싼 왕실의 속내를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을 바탕으로 풀어나간다. 한중록은 3대에 걸친 왕가의 비극과 혜경궁 홍씨의 지난한 삶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혜경궁은 자신의 출생부터 어릴 때의 추억, 9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된 이야기에서부터 이듬해 입궁하여 이후 50년간의 궁중생활을 회고하는 가운데 사도세자가 당한 참변의 진상을 폭로한다

한중록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한산함과 대비된다. 권력 핵심부의 여인이 칠순이 넘은 나이에 한 많은 인생을 회고하며 드러낸 격정의 목소리와 절규가 독자의 심장을 오래도록 움켜쥐고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팔십여 년의 인생에서 칠십 여년을 삼엄한 궁궐 시집살이로 보내야 했던 그녀는 한 많고 억울한 감정을 호소하기 위해 글을 썼을 것이다. 멈추지 않는 칼바람 속에서 오열하는 혜경궁이 비통한 마음을 담아 절절하게 써내려간 문장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한중록’이 되었다는 평가다.

최순실 뇌물공여 혐으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의 모친이자 삼성가의 안주인인 홍라희(72)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6일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에서 돌연 사퇴했다.

두 미술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은 이날 홍라희 관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 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퇴 배경이 알려지지 않았다. 후임도 아직 미정이다. 홍 관장의 돌연 사퇴로 두 미술관은 당분간 동생 홍라영 총괄 부관장과 이준 부관장에 의해 운영될 전망이다.

홍 관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와 관련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재계와 미술계 일각에서는 최근 삼성그룹 창립 이래 최초로 구속 수감된 장남 이 부회장의 구속 사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추측이 흘러나온다. 남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년째 와병중인 가운데 이 부회장까지 수감되자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미술관 관장직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웠음직 하다.

실제로 홍 관장은 이 부회장의 구속과 관련해 최근 지인들에게 “참담한 심정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고 토로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홍 관장은 그동안 ‘미술계의 큰손’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경기여고,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해 재력과 인맥, 안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오랫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시아버지이자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을 지켜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병철 회장이 경기도 용인에 설립한 호암미술관 관장직에 1995년 1월 취임했으며, 2004년 10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자 두 미술관의 관장 직을 맡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 1위 재벌의 안주인인 홍 관장의 생활은 남 부러울 것 없이 화려하고 행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3년 가까이 와병 중이고 외아들은 현재 구속 중이다.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홍 관장과 혜경궁 홍씨가 오버랩된다.

홍 관장은 자유당 때 내무장관을 지낸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장녀로 196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결혼했다. 아버지가 이병철 회장의 삼남과 결혼하라고 했을 때 홍 관장이 “이 땅에서 홍진기의 딸로 살기도 힘든데 삼성재벌의 며느리로 사는 것은 더 고단할 것”이라며 처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도세자는 비운의 죽음을 맞았지만 이후의 조선을 지배한 왕들은 모두 사도세자의 후손이었다. 순조는 손자, 헌종은 고손자, 철종은 서자인 은언군의 손자, 고종 역시 숙빈 임씨와 사이에서 낳은 은신군의 증손이었다. 삼성가 홍 관장의 사퇴소식을 들으며 문득 한중록의 혜경궁 홍씨가 생각난다.

왕실과 재벌가에서 부귀영화와 인간의 진정한 행복 사이를 오갔을 그녀들. 그리고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 많은 인간군상들, 그들 모두는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고뇌, 희노애락, 권력과 재력의 무상함, 인생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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