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와 적폐청산
조광조와 적폐청산
  • 정종석
  • 승인 2017.05.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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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개혁, 역사에서 지혜와 용기 얻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연산군이 패륜과 실정을 거듭하자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난다. 반정(反正)공신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정국공신'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특권을 보장해 줘야 했다. 정국공신은 반정에 가담한 당사자 뿐 아니라 공신들의 부자, 형제, 숙질, 조손에 심지어 사촌들까지 골고루 혜택을 입는 친족집단으로 구성돼 왕권을 약화시키며 정치를 어지럽힌 요인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은 정치를 이끌 경륜도 없었고, 자신을 도와줄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도 없었다. 중종 초기는 공신세력들이 나라를 이끌어 나갔다. 그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던 중종으로서는 이들 훈구파를 견제할 세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름대로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려 했던 중종에게 이른바 ‘구원투수’가 나타난다. 바로 정암 조광조(1482-1519)였다. 그는 중종에게 딱 필요한 인물이었다. 성종 대부터 중앙 정계 진출을 시도했던 신진 사림들은 조광조를 밀어주는 중종의 정책에 힘입어 적극 등용된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무리한 개혁정책, 기묘사화의 참화 초래

하지만 조광조의 무리한 개혁정책은 1419년 실시한 '정국공신 위훈삭제(僞勳削除)'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일로 결국 중종은 조광조에 등을 돌리게 되고 그 결과 기묘사화가 일어난다. '정국공신 위훈삭제'는 신진세력인 사림이 기성세력인 훈구파에 직접 칼을 꽂은 정면도전이었다. 현량과 실시로 훈구파를 외직으로 몰아낸 것만 해도 충분히 반발을 가져왔다.

신진세력들의 집요한 개정논의 끝에 중종반정의 공신 3/4에 이르는 76명의 위훈을 삭탈하고 이들에게 분급한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게 했다. 이를 마지못해 허락한 중종마저도 내심으로는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성급하고 과격하게 개혁을 몰아붙이는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중종은 다시 사림을 견제할 방법을 모색했다. 공신들 역시 공신삭제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김전·남곤·심정 등과 희빈 홍씨의 아버지인 홍경주는 중종의 이런 심경변화를 알아채고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들은 희빈 홍씨를 앞세워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고 왕권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중종에게 속살거리게 하고, 조씨가 왕이 될 것이라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새겨 왕이 보게 하는 '모함'을 연출했다. 이 때 조광조를 죽여서 생사여탈의 권한이 임금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온다. 명분을 찾던 중종은 즉시 조광조·김정·김식·김구 등을 사사하라고 명을 내린다.

돌이켜보면 기묘사화는 사림이 주도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자인 공신재상들의 반격으로 야기된 정치적인 사건이었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왕도(王道)정치를 행하려던 조광조의 개혁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런 사화마저도 사림정치로 바뀌는 대세를 막지 못했다. 조광조는 조선 중기에 훈구파에서 사림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도기에 중추를 담당하며 사림정치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개혁드라이브..적폐청산과 향후 개혁성공이 관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러 가지 개혁드라이브와 함께 적폐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비록 국무총리와 각료들의 국회청문회 준비과정에서 일부 실망스런 인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현 정부가 곪고 부패한 곳을 도려내기 위해 단단한 결심을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한번은 거쳐야 할 과제다. 역대 정부에서 취임 초기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하지 않은 정부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 정권과 뭔가 달라야 한다.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졌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박근혜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정권교체의 이유와 당위성을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에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적폐청산과 앞으로의 개혁을 어떻게 성공하느냐 하는 점이다. 급진적 개혁을 무리하게 시도했던 송나라 왕안석(1021~1086)의 신법당이 실패로 끝난 것은 개혁주체들의 인간성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왕안석은 재주는 많았으나 소인이었고(조선 세종의 평가), 원칙에 치우친 이상주의자(북송 신종의 인물평)로 대화와 타협을 아예 무시하고 공안정국까지 조성해 배척과 숙청을 일삼았다는 등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의 포용력 없는 독불장군 스타일, 고집불통의 면모에 실망과 염증을 느낀 사마광을 비롯한 당대의 인재들인 한기, 구양수, 소동파 등도 정적(政敵)이 되어서 그를 간신이라고 극언하며 모두 등을 돌렸다. 결국 신법당과 구법당의 심한 당파싸움에 따른 분열과 탄압은 국력을 약화시켰다. 당시 북방의 강국으로 부상한 금나라의 침공을 유발해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게 후세의 평가다.

개혁에 실패한 후 유배 중이던 정암은 ‘능성적중시(綾城謫中詩)’에서 자신의 처지를 ‘활 맞은 새(驚弓之鳥)’ 또는 ‘독 안에 든 쥐’의 신세에 비유하고 비통한 심정에 빠진다. “누가 활 맞은 새와 같다고 가련히 여기는가. 내 마음은 말 잃은 마부 같다고 쓴웃음 짓네. 벗이 된 원숭이와 학이 돌아가라 재잘거려도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 독 안에 들어있어 빠져 나오기 어려운 줄 누가 알리오.”

개혁은 만병통치약? 오히려 개악(改惡)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아

과연 개혁은 만병통치약이 될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절대선, 절대악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나 차악이라도 만족해야 하는 것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며, 또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대안이 아닐까. 역사에서 때로는 구악(舊惡)을 척결하고 나니 신악(新惡)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개혁이 오히려 개악(改惡)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래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속설도 존재하는지 모른다. 개혁을 명분과 의리로, 청산해야 할 기득권이라고 보이는 세력을 타파했으나 그 빈자리에는 어느 새 현재와 미래의 기득권들이 밀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른바 '또 다른 기득권'의 탄생이다. 사람만 바뀌었지 결국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는 푸념과 한탄이 나온 경험도 많다.

조광조가 왕과 세상을 가르치려 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 아무리 이상이 높고 뜻이 좋아도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고압적 자세는 자신을 죽이게 된다. 조광조는 왕을 가르치려다 왕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우리 대한민국이 부정부패와 적폐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부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현 정부는 개혁을 차분이 하되 꼭 성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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