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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대한민국
기로에 선 대한민국
  • 임 수 환
  • 승인 2017.06.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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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환칼럼>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은 민중주의자들의 정치적 승리다. 건국과 발전을 위해 국제협력을 활용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반민족 분단세력으로 폄훼하는 사고는 엘리트들을 민중의 적으로 여기는 민중사관에서 나온다.

  민중사관의 아버지는 신채호라 할 수 있다. 그는 1923년 의열단을 위해 기초한 「조선혁명선언」에서 “돈없고 군대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여 외국의 도적들도 쫓아내니”라고 썼다.

  민중혁명을 주창하던 신채호는 독립운동의 방법론으로서 교육, 문화, 외교에 기량을 보이는 엘리트들의 가치를 부인하고 무장투쟁에만 의미를 두었다. 그의 투쟁사관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한 구절로 요약된다.

  신채호가 구성한 투쟁사관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이해하는데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구실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대는 배신당하고 일제는 전승국으로 독일의 식민지와 조차지들을 접수한 후 만주사변까지 일으켰다. 신채호가 활동하던 당시 동북아 대륙은 수탈과 투쟁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신채호가 사망한 다음 해에 발발한 중일전쟁이 대동아전쟁으로 커져서 1945년에 끝났다. 종전 후 세계역사는 그의 사관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이 건설한 서방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투쟁이 아니라 상호의존(interdependence)과 시장경쟁의 원리로 민중의 삶을 비약적으로 개선했다.

  상호의존과 시장경쟁이 20세기 후반기의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1920년대의 개념을 대남 혁명공작에 이용하는 시대착오적 사기극을 벌였다. 김일성은 신채호가 구성한 민중적 투쟁사관을 주체사상으로 각색해서 산업건설에 열중하고 있던 남한사회에 수출했다. 남한의 민중주의자들로 하여금 미국을 비아로 규정하여 반미자주화 투쟁에 나서게 했다.

  김일성은 같은 시기 북한에 민중을 성분차별하고 약탈하는 수령체제를 구축했는데, 이것은 절대적 평등사회를 지향하던 신채호의 민중사관에 정면 배치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런 터무니없는 사기극에 농락당해서 민중주의자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48년,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 왕조(王朝)체제가 아닌 국민이 주인되는 민국(民國)체제를 열었다. 민국은 농지개혁으로 수천년 내려 온 지주계급을 소멸시켜 가면서 정치공동체를 결속시켰다. 농지개혁 와중에 김일성이 남침하자 피를 바쳐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을 격퇴시켰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이후, 민국의 중산층은 물질주의와 가족주의에 빠져서 민국의 정체성을 챙기지 않았다. 민주화와 함께 반공교육을 걷어치우면서 국가 정체성 교육도 같이 내다 버렸다. 정체성 혼란에 빠진 시민들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민국은 전후 서방사회의 국제협력(international cooperation)과 상호의존에 참여하여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국제협력과 상호의존의 원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만 작동한다. 미국이 분산된 권력구조와 개방된 정책결정과정을 유지하기 때문에 동맹국도 미국의 정책결정자들과 여론에 자기의 이익과 의견을 호소할 통로가 열려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국제협력과 상호의존이 제도화될 수 있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밖에 있는 국가들과의 관계에는 여전히 아와 비아의 투쟁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 밖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계속 위치하게 될 것인가,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수환 ( suhwan.lim@gmail.com )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
    국립대만대학교(NTU) 정치학과 교환교수
    Journal of East Asian Affairs, 편집장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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