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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석 어르신들
경로석 어르신들
  • 허영섭
  • 승인 2017.07.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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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 칼럼>요즘 낮 시간대의 지하철 승객 중에서는 젊은 층보다 어르신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가끔씩 오후에 지하철을 타 보면 목격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경로석뿐만 아니라 일반 좌석도 절반쯤은 노인들 차지입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게 되므로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지만 낮에는 사정이 달라지기 때문이겠지요. 노인들로서도 가급적 거동하기 편하고 승객도 붐비지 않는 낮 시간을 택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일 겁니다.

퇴근시간 무렵의 경로석 광경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시내에서 모임을 끝내고 귀가하는 것인지 노인들끼리도 자리에 앉지 못해 한참이나 서서 가야 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연세가 드셨다고 해서 일반 좌석에 앉은 젊은이들이 자리를 선뜻 양보해 주지 않는 데다 ‘경로 무임승차’라는 자격지심으로 인해 혼잡한 때는 어차피 서 있을망정 서로 경로석 구역으로 몰리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노인들끼리도 웬만큼 머리가 하얗게 세지 않고는 자리에 앉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철 경로석도 이미 만원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노인들에 대한 무임승차 제도가 지하철 운영에 심각한 애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만 65세가 되면 전국 지하철의 무임승차가 허용되기 때문에 지하철 당국으로서는 그만큼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 등 전국 도시철도가 노인 무임승차로 인해 5,400억 원 가까이 적자를 냈다는 명세표가 제시됐을 정도입니다. 지하철 적자의 원인이 ‘지공거사’들에게 떠넘겨진다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는 은근히 불만이겠지만 부인하기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규모가 전체 운영 적자의 70%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노인들이 덤터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민간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신분당선이 앞으로 노인 승객들에 대해서도 요금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그런 배경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당기 손실액이 340억 원에 이르렀다는 이유를 들어 노인 운임 유료화의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파산에 직면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신분당선 주식회사가 당초 경로 무임승차를 개통 후 5년 동안만 허용한 뒤 국토교통부와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고 하니, 이제 노인들에게 요금을 받겠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2011년 개통된 신분당선이 올 연말로 개통 만 6년을 맞게 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노인들에 대해 요금을 받는다고 해도 전액을 받기보다 일부만 받겠다는 것인 만큼 요금을 받으면서도 나름대로는 선심 쓰는 모양새가 갖춰지게 됩니다.

갈수록 인구 고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 더욱 심각합니다. 경로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도 자꾸 늘어나겠지요. 65세 이상 인구가 2015년 654만 명에서 2045년에는 1,818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 당국의 우울한 전망까지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까운 주변에서도 확인되는 현상입니다. 동네마다 산부인과나 어린이 육아시설이 폐쇄되는 반면 노인정을 비롯한 노인복지 시설은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노인들끼리도 주민등록번호를 따져가며 경로석에 먼저 앉으려고 자리다툼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게 있습니다. 설령 나이가 차서 ‘지공거사’ 자격증을 땄다고 해도 스스로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공짜로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게 마음에 걸린 때문이겠지요. 이와 함께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얘기도 없지 않습니다. 아예 75세로 올리자고도 합니다.
방법이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나이에 따라 차등 할인제를 적용하자는 주장도 그럴듯합니다. 외국의 사례도 없지 않습니다. 65세 이상 승객에게도 요금을 받되 ‘반값 할인’ 혜택을 주는 독일이나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할인 요금을 적용하는 룩셈부르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도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와 관련한 논란을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 논란이 제기된 지 벌써 20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정부 차원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다는 자체에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당연히 정부 책임인데도 침묵을 지키면서 당장의 골칫거리를 비켜 가려는 의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새 정부에서는 국민 복지를 중시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로 노인들이 더 이상 주눅들지 않으면서 지하철 적자도 해결될 수 있도록 현명한 해법이 제시되기를 바랍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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