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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역설과 '은행습격 사건'
가계부채 역설과 '은행습격 사건'
  • 최영희 기자
  • 승인 2017.07.2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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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사상최대 실적..금융정책이 은행들 배 불리는데만 기여

[금융소비자뉴스 최영희 기자] 중국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이 상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기 이 방패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나 단단해서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또 이 창을 보십시오. 이 창은 어찌나 끝이 날카로운지 어떤 물건이든 모두 뚫을 수 있답니다."

상인의 방패와 창을 동시에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창 모(矛) 방패 순(盾)을 사용해 '모순'이라고 한다. 참(옳은 것)이라고 말하거나 거짓(틀린 것)이라고 말하거나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처럼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모순된 문장이나 관계를 '패러독스(paradox)' 또는 '역설(逆說)'이라고 한다.

엄청난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이러 가운데 1천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자 국내 은행들의 때아닌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민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는 반면 은행들의 곳간은 돈으로 가득 찼다. 국가경제가 가계부채로 신음을 하고 있으나 은행들은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역설을 연출했다.

문득 이것이 가계부채의 역설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혹시라도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니라 ‘빈곤 속의 풍요’는 아닐까. 가계대출은 금리 상승과 맞물려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로 경계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은 모두 1조 원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은 상반기에만 1조2천9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2012년 이후 5년 만에 상반기 '1조 클럽'에 가입했다.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1조1천43억 원으로 2011년 이후 최대 실적을 냈다.우리은행도 1조98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시장의 기대치를 크게 넘어섰다.은행의 핵심 성과 지표인 순이자마진(NIM) 개선세가 연초 이후 이어지며 호실적의 배경이 됐다.미국의 기준금리 상승 추세와 맞물려 국내 은행의 NIM 개선 추세는 당분간 지속하리란 게 업계 중론이다.

정부의 주택담보 대출 규제를 앞두고 가계대출 선수요가 늘어난 게 은행의 이자수익에 주효하게 기여했다. 선 수요가 늘어나며 은행이 선제로 주택담보대출의 가산금리를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새 정부가 사실상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선언하며 6·19대책을 발표, 부동산 비율 규제를 다소 강화했지만, 은행의 대출 수요를 줄이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상태다. 아니러니하게도 정부의 금융정책은 가계부채를 못잡고 은행들의 배만 불리는데 기여하고 말았다.

새 정부가 사실상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선언하며 6·19대책을 발표, 부동산 비율 규제를 다소 강화했지만, 은행의 대출 수요를 줄이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상태다.가계대출에 대한 선 수요와 금리 상승, 여기에 부동산 거래까지 늘면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5%까지 육박하고 있다.당국의 총량 관리가 은행의 가산금리를 올리는 배경이 된 것이다. 금리가 올라도 실수요는 여전하다. 결국 은행의 이자수익은 줄지 않을 것이다.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하나로 내년부터 지역재투자 제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역재투자란 지역에서 예금을 받는 금융회사가 해당 지역에서 번 이익의 일부를 환원토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국정자문위는 내년부터 지역 내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대출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먼저 추진키로 했다.

지역재투자가 이뤄지면 은행 등 금융회사는 상대적으로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지역사회 중소기업, 소농민, 중산층 이하 계층에 의무적으로 대출을 해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에 돌입하면서 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이 높아졌는데 지역재투자가 시행되면 취약차주 대출 어려움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정부가 대출할당과 점포, ATM 설치 여부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친 관치금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익성이 떨어지면 결국 금융회사 건전성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다. 지금 은행들은 수익성을 높이려고 돈 안되는 지역 중심으로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이나 지방 거주자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지역재투자법이 시행될 경우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강화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맞아 은행들은 단순히 수익챙기기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달성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아울러 가계부채의 역설이 서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은행습격사건'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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