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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금융’으로 금융 개혁을
‘포용적 금융’으로 금융 개혁을
  • 조영철
  • 승인 2017.08.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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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 독과점부터 해결..금융정책-금융감독 업무도 분리해야

 

<조영철 칼럼> 2017년 상반기 은행산업 영업실적을 보면 당기순이익이 8조원을 넘고 있다. 금융산업의 수익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 정책이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에 초점을 두면서부터다. 금융회사가 경제발전을 위해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하느냐는 정책 이슈는 뒤로 밀리고, 총자산수익률(ROA)과 자기자본수익률(ROE)이 높은 대형 금융회사 육성이 중시되었다.

당시 유행했던 신자유주의 금융자유화 논리에 따르면 선진적 금융산업의 발전이 경제발전을 선도한다는 것이었고, 금융을 발전시키려면 미국의 월가처럼 금융산업이 마음껏 수익을 추구할 수 있게 금융자유화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모피아(옛 재무부 관리를 마피아에 빗댄 용어)는 금융산업을 선진화한다면서 일부 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하고 금융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대형화가 필요하다며 합병으로 금융산업을 독과점화했다.

이런 정책으로 금융산업의 수익성이 올라갔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산업발전 기여도가 높아진 것은 아니다. GDP 대비 금융산업 부가가치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별 차이가 없고 2012년 이후에는 오히려 감소 추세에 있다.

금융회사는 대형화되었지만 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해 경쟁하기보다 국내금융시장의 독과점체제에 안주해 전당포식 담보대출로 손쉽게 고수익을 내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경제학 책에서 말하듯이 금융의 독과점화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금융 배제로 양극화 심화에 일조

BIS비율 등 재무건전성이 강조되면서 은행들은 리스크가 큰 기업금융보다 주택담보대출과 같이 리스크가 낮은 소매금융에 집중하였고, 그 결과 은행 대출 중 가계 대출 비중은 1998년 28%에서 2016년 48%로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가계부채가 1400조원에 이를 정도로 증가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인한 소비 침체와 부채위기 가능성 등 거시경제 위험성도 심화되었다.

금융정책의 기본 방향이 수익성 중심이 되면서 금융의 공공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은행산업은 인허가 산업으로 사회적 책무성도 지니고 있었고, 은행의 지급결제 시스템은 개별 은행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공적 자산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수수료와 금리로 고객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수익성에 도움이 안 되는 고객을 암암리에 밀어내는 경영전략이 거리낌 없이 실행되고 있다.

영세자영업자, 창업자, 청년,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는 돈이 절실히 필요해도 담보가 없으면 은행 같은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돈이 없는 사람은 창업이나 사업 확장의 기회가 적고, 고금리 대부업체의 약탈적 금융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이에 반해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공무원, 공기업·대기업 직원 등 안정적 직업을 가진 고소득층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기 쉽다. 고소득층은 기존 아파트를 담보로 저금리 대출을 받아 전세 낀 아파트를 구매하는 갭투자로 부동산 자산과 불로소득을 늘리고 있다.

좋은 직장과 담보를 댈 수 있는 자산보유 계층에겐 대출기회가 활짝 열려있고, 그렇지 못한 저소득 계층에게는 금융 접근성을 제한하는 ‘금융 배제(financial exclusion)’ 현상이 심화되고, 이런 계층 간 금융 격차가 부동산 투기와 결합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독과점 속에 신용평가와 기술평가 능력은 소홀

금융산업의 독과점체제는 산업발전도 저해하고 있다. 제도 금융권은 담보 중심의 금융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기에 굳이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와 기술평가 능력을 키우는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창업 벤처기업의 잠재가치와 중소기업의 상환 능력에 대한 신용 평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담보 없는 중소기업은 대출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용보증 지원 등의 정책금융을 확대했고, GDP 대비 중소기업 정책금융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정책금융으로 중소기업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기업 대표의 연대보증제로 인해 사업에 한 번 실패하는 경우 중소기업 대표가 다시 재기하기가 어렵다.

이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금융정책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신용과 담보능력 격차는 개인의 책임이고 그에 따른 금융 격차는 시장경제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금융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복지정책의 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례로 저신용 서민들을 위한 신용관리 교육과 금융소비자 보호 등은 금융정책의 영역이다.

모피아들은 고수익 독과점 금융산업체제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을 하던 고위 공무원은 퇴임 후 관련 협회, 연구기관, 대학에서 몇 년간의 신분 세탁을 거친 후 금융회사 고위 임원으로 다시 취임하여 상위 0.1%의 상류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모피아 세계의 정형화된 공식이다. 모피아와 감독대상인 금융회사는 사실상 한통속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이 초래한 금융 배제, 금융 격차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2010년 부산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포용적 금융(inclusive finance)’에 대한 세계은행 팀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2012년 멕시코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도 ‘금융 포용(financial inclusion)’ 실현 방안을 의제로 논의하였다.

책임성 강화하고, 포용적 금융 확대해야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그리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금융 접근성 격차 문제가 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는 가계부채 대책 정도 외에는 금융 격차를 완화하고, 포용적 금융을 확대하는 본격적인 대책을 볼 수 없다.

먼저 금융산업의 독과점부터 해결해야 한다. 1993년 이후 은행의 신규 설립이 없었고, 지방은행 통폐합과 시중은행 흡수로 지역금융이 약화되었고,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은 정체에 빠진 병목 상황을 깨려면 금융산업의 신규진입을 촉진해 경쟁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물론 상호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금융 허용으로 부실화된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신규진입을 통한 경쟁체제를 촉진하면서 동시에 건전성 감독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신규 진입정책을 통해 독일의 저축은행·주립은행과 같은 지방금융기관을 육성해 지역의 중소기업과 밀착된 관계금융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 접근이 어려운 저신용 서민들이 겪는 금융 격차를 완화하려면 각종 금융 협동조합에 대한 시장 진입 규제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모피아가 금융산업정책, 금융감독,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으면서 실질적 책임은 지지 않는 거버넌스 구조도 개혁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 국민연금 가입자 손실을 초래한 잘못된 결정이라면, 일제히 찬성의견을 낸 국내기관투자가들도 투자 고객에게 손실을 끼친 것으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특검과 법원이 국민연금 관계자를 단죄했는데 반해, 금융감독기구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금융감독장치가 그만큼 비정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해상충 문제로 원래 분리되어 있던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업무를 이명박 정부 때 금융위원회로 통합한 것은 감독기관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악화시킨 잘못된 정책이란 것이 학계의 다수 의견이므로 두 업무를 분리하는 정책 개혁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금융배제를 일삼는 금융회사와 금융포용을 추구하는 금융회사를 구분해 정책적으로 차별 대응하는 인센티브 체제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을 위해서는 금융정책이 금융 격차를 완화하고 포용적 금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조영철

·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 전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장

· 저서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당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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