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가 능사 아니다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가 능사 아니다
  • 권의종
  • 승인 2017.09.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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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 자율성 침해..적합업종 규제를 연장하는 선에서 자율 합의가 바람직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옛날 중국인들은 한국을 해 뜨는 동방의 예의지국으로 불렀다. 서로 양보하고 싸우지 않는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바르다하여 일컬은 표현이다. 공자도 평생의 소원이 뗏목이라도 타고 조선에 가서 예의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적 정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양보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아니하는 호양부쟁(好讓不爭)의 민족성은 어느 새 입에 발린 칭찬으로 들린다. 다투기를 좋아하여 양보를 하지 않는 '호쟁부양(好爭不讓)'으로 비쳐질까 두렵다. 외세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고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좁게 살다보니 삶이 고단해진 탓일 터이나 딱한 모습이다.

한 해 고소·고발 건수만도 70만 건에 이른다는 통계다. 일본에 비해 60배나 높다는 추산이 믿기지 않는다. “일단 고소·고발부터 하고보자”는 풍조로 낭비되는 행정력과 혈세가 천문학적 규모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도 충분한 일도 법의 심판에 맡기려 든다. 툭하면 “법대로”다.

하기야 강자에 시달리는 약자로서는 법만큼 든든한 안식처도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법령의 수가 4천688개나 된다. 올해도 지난 8개월간 200개가 넘는 법령이 새롭게 탄생했다.

법에 기대고 싶은 정서는 중소기업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작금 논란이 일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법제화 요구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올해 안에 끝나는 업종 규제를 연장하고 적합업종을 법제화하려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도 충분한 일까지 법의 심판에 맡겨.. 툭하면 “법대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출발은 38년 전으로 소급한다. 1979년 23개 품목을 지정하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로 시작되었다. 1987년에는 품목수가 237개까지 늘어났다가 외국 기업의 국내 시장 진입을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통상 논쟁이 불거지면서 2006년 폐지되었다.

2011년 대기업의 중소기업 골목상권 침해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중소기업 간 상생 정책으로 부활되었다. 대신 법적 강제력은 없어지고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적합업종 지정 권고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의하면 최종 지정이 이루어지는 자율조정 방식으로 바뀌었다.

적합업종 규제는 최대 6년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고, 올해 안에 74개 품목 중 49개가 규제에서 풀리게 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가 재개될 것을 우려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법제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현행 민간 자율합의 방식은 합의 자체가 쉽지 않고 대기업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제재수단이 없어 아예 법으로 막아달라는 요구다.

법제화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제도가 다른 기업에게 피해를 주거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70여 년간 간장, 고추장, 된장 사업에만 주력해온 샘표식품의 경우 2011년 장류가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심각한 판매난에 시달려야 했다. 두부의 경우 적합업종 지정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영세 상인과 농가들이 하루아침에 납품이 끊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업종의 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것도 명분이 약하다.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세세분류 기준으로 천196개에 달하는 업종 중에서 유독 74개 업종만 생계형 업종이라는 뚜렷한  기준도 제시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의식주나 생계와 연관되는 업종이 그 정도뿐이겠는가.

시장질서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등..  법제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적합업종 규제가 국내 대기업만을 상대로 하다 보니, 외국 기업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매장을 늘릴 수 있다. 외식 시장에서 CJ의 계절밥상, 신세계의 올반 등 국내 토종 기업들이 고전하는 사이, 외국계 펀드가 인수한 치킨업체 BHC, 놀부 등이 시장점유율을 늘렸던 사례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통상 마찰의 빌미도 줄 수 있다. 국제통상규범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난 해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이 제도를 무역장벽으로 지목한 바 있다. 금년 초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기 적합업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적도 있다.

민생에 영향이 큰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함으로써 소상공인과 영세 기업의 사업영역을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골목상권까지 침해하는 대기업의 공세를 막아내려는 중소기업의 자구 노력 역시 눈물겹다. 그렇다고 법제화를 강행할 경우 세차게 휘몰아칠 역풍 또한 감당하기 버겁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지금의 상황이다.

진퇴양난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한 발씩 양보하는 중용지도가 방책일 수 있다. 법제화까지는 가지 않으면서도 만료되는 적합업종 규제를 연장하는 선에서 자율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 법제화의 역풍도 잠재울 수 있어 보인다.

일찍이 하이에크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의 자율성을 규제하게 되고 이는 비효율적인 체계를 가져온다고 설파했다. 정녕 작금의 현실을 갈파한 지언(至言)이 아닐 수 없다, 법제화는  효과가 확실한 만큼 치러야할 대가도 크다. 만능의 칼로 선뜻 빼 쓰기보다는 최후의 보루로 아껴두는 게 낫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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