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풍작 걱정하는 한국 농업, 활로는 어디에?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풍작 걱정하는 한국 농업, 활로는 어디에?
  • 권의종
  • 승인 2017.10.0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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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 우려..‘기업형 영농조합’으로 규모의 경제 꾀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넓은 들이 온통 황금물결이다. 벼농사가 5년 째 풍작이다. 지난 해까지 4년 연속 풍년에 이어  올해도 평년작을 넘는다는 예상이다. 기뻐해야 할 농심은 벌써부터 슬픈 표정이다. 생산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 우려 때문이다. 정부도 추석민심이 신경 쓰였던지 연휴시작 전날 서둘러 수급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쌀값 안정을 위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정부매입 물량을 72만톤으로 늘리겠다는 발표다. 공공비축미 35만톤과 시장격리 물량 37만톤이다. 농민단체가 요구한 정부 매입 100만 톤에는 미달하나 역대 최고 규모다. 이 말고도 민간의 벼 매입 확대를 위해 정부와 농협의 융자지원 규모도 3조3천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천억원 늘리기로 했다.

그래봐야 일 년짜리 미봉책이다. 올 한해는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당장 내년에 가면 더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농민들은 내년에도 여전히 벼를 재배할 것이고 쌀은 과잉 생산될 것이다. 정부는 금년보다 더 많은 예산으로 쌀을 매입해 정부미 재고는 넘칠 게 분명하다. 정부의 쌀 재고량은 이미 포화상태로 206만톤에 이른다. 정부가 매입한 쌀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의무 수입하는 밥쌀용 쌀 등이다. 보관비용만도 연간 6000억원이 넘는다.

쌀의 공급 과잉, 재고 누적, 농가소득 감소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안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런 묘책이 없다. 정부로서도 임기응변식 단기 대책만 반복하며 그저 한해 한해를 넘기려 들 수밖에 없었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풍년으로 기뻐해야 할 농심은 벌써부터 슬픈 표정

쌀 공급과잉의 해법을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찾으려던 지금까지의 접근방법은 현실성이 없다. 쌀 소비를 늘리고 생산을 줄이는 방식은 실현불가능하다. 쌀 소비가 늘기는커녕 매년  줄고 있다. 올해 1인당 쌀 소비량이 61킬로그램까지 떨어졌다. 1980년의 46% 수준이다. 60킬로그램 붕괴도 시간문제다. 해법이라곤 쌀 생산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쌀 재배 면적을 줄여야 하는데 우량농지 훼손과 식량안보를 내세운 반대 목소리가 커 이마저 힘들다.

현행 방식을 무작정 이어가기도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쌀 수입을 막아주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매가를 높여 농가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없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궁극적으로 한국 농업의 경쟁력을 자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질병은 병인을 찾아내야 완치가 가능하다. 우리나라 쌀 문제의 원인은 규모의 영세성에 있다. 다수의 농민이 좁은 농토에서 저마다 소량의 쌀을 생산하는 후진적 구조가 발단이다. 국내 농가당 평균 쌀 경작면적이 1.11ha에 불과하고 1ha 미만의 농가가 전체의 57.9%에 이르는 상황에서 경쟁력이 나올 리 만무하다. 농업이 정부의 단골 보호 산업으로 연명해올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문제가 곧 답이 될 수 있다. 농가의 영세성 탈피가 관건이다. 농가들이 연합하여 ‘기업형 영농조합’을 설립하여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해법이다. 뜬금없는 얘기로 들릴지 모르나 뉴질랜드의 키위 농업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 뉴질랜드산 키위는 전 세계시장의 20~30%를 차지한다. 이 나라가 키위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화산재 모래가 섞인 토질의 덕분도 있지만, 농민단체들이 세운 기업형 조합의 전략이 적중한데 기인한 바 더 크다.

세계적인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zespri)가 그 대표적 사례다. 제스프리는 뉴질랜드 농가들이 연합해 만든 기업형 조합이다. 뉴질랜드 농가들도 우리 농민들과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 1980년대 들어 키위가 과잉 생산되고 수출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자 키위 값이 폭락했다. 시장개방정책에 따라 보조금도 폐지되면서 파산 농가가 속출했다. 이때 뉴질랜드 정부는 보호정책 대신 오히려 농가 구조조정에 나섰다.

벼랑 끝에 내몰린 2700여 농가들이 모여 제스프리라는 기업형 조합을 결성했다. 키위 재배 농가들이 주주로 참여했다. 주주들은 재배 수익과 배당을 얻는 구조였다. 제스프리는 품질 관리, 품종 개발, 해외시장 개척 등에 힘써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쌀 문제의 질고를 완치할 처방

남들이 하는 일을 우리라고 못할 리 없다. 정부의 결단과 농가들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농가들이 연합하여 ‘기업형 영농조합’을 세워 경작 규모의 확대, 시설투자, 품질관리, 혁신적 영농기법 등으로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가공, 운송, 보관, 유통 등 연관 산업들과의 연계 강화를 통한 원가 절감과 수익성 향상으로 대량생산의 이익, 대규모 경영의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다.

농사 기술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여 지능화된 스마트 팜으로 경쟁국 농업을 앞질러 갈 수도 있다. 생산·유통·소비 과정에 걸쳐 생산성, 효율성, 품질 향상 등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출 길도 열릴 수 있다. 인접국가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식량수입국이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540만 톤의 쌀을 수입했다. 농가 입장에서는 농지와 노동을 제공하고 급여와 배당으로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소득보다 낫다면 농가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전쟁에서도 연합군이 승리한다. 제1·2차 세계대전이 그랬다. 한미연합군사령부도 한반도를 수호하는 든든한 지킴이다. 경제에서도 다국적기업이 힘이 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해방 후 좌우익 분열이 극심할 때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단결을 위해 호소했던 이 한마디가 작금의 쌀 문제의 질고(疾苦)를 완치하는 명의의 처방이 되었으면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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