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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붕괴된 금감원의 독립성
도덕성 붕괴된 금감원의 독립성
  • 정종석
  • 승인 2018.01.3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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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공공기관 지정 대상서 제외..'역주행' 계속하면 금피아들만 득세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금융감독원이 올해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자체혁신안 이행 등을 조건으로 공기업 지정을 피했다.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간 치열한 물밑 다툼에서 금감원 측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금융권과 학계에서는 금감원의 거듭된 채용비리와 방만경영 등에 많은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 이뤄질 예정임을 고려해 지정을 유보하기로 했다는 것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설명이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이 불발되면서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지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기재부는 결과적으로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기재부는 최근 금감원과 수은 등에서 불거진 채용비리 등을 거론하며 줄곧 공공기관 지정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을 방패로 내세운 금융위와 금감원의 논리에 밀리고 말았다.

준정부기관은 공공기관 운영법이 규정한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 3개 공공기관 유형 중 둘째로 높은 수준의 정부 통제를 받는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2009년 독립성 보장을 이유로  기타 공공기관에서 해제돼 현재는 공공기관이 아닌 금융위원회 설치법에 따른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될 경우 이사회·임원 임명 등 지배구조상 견제 시스템이 깐깐해지는 것은 물론 직원 성과급과 기관장 인사 조처를 좌우하는 기재부의 경영실적 평가까지 받게 된다.

금감원, 작년 채용비리와 직원 불법 주식 거래, 사내 불륜 스캔들까지 줄줄이 터지는 역대 최악의 한 해 기록

현재 금감원은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지정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정부가 위탁한 금융 감독 업무를 하며 금융기관에서 걷은 감독 분담금이 기관 전체 수입의 절반을 넘는다는 근거에서다. 금감원은 지난 해 채용 비리와 직원 불법 주식 거래, 사내 불륜 스캔들까지 줄줄이 터지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가 급물살을 탄 것도 감사원의 방만 경영 지적에 따라 작년 10월 국정 감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것이 계기가 됐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놓고 찬반논리가 줄곧 대립해 왔다. 반대론자들은 공공기관 지정은 감독기구의 독립성을 해치고 규제 산업인 금융의 ‘관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기재부가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속셈에는 결국 금감원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다. 자세히 보면 채용비리도 밑의 실무자가 반대하지만 조직의 장이나 위에서 찍어누르니 발생하는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당채용과 방만경영 등을 방지하려면 정부로부터 더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옳은 방법이 될 수가 있다.

한국은행의 경영이 나름대로 투명한 이유는 한은의 독립성 수호와 관련이 깊다. 마찬가지 논리로 정부로부터의 금융감독 기구를 독립시키는 것이 금융개혁의 핵심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 실제로 정부 금융 정책 및 감독 업무 개선책을 모색한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지난 해 말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혁신위는 보고서를 통해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재지정하는 것은 감독기관 독립성과 책임성을 약화시켜 정치권 등 외부 압력에 더욱 취약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지난 해 7월 금융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내용의 금융 산업 구조 선진화를 새 정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제시했다.

금융위가 가진 정책 및 감독 기능을 떼어내 금감원이 정책 당국 이해 관계에 맞춰 규제 칼을 휘두르는 관치의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다. 반면 해외에서도 금융감독기구를 정부기관으로 운영하는 곳이 더 많다. 감독권력이 자기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정부기관으로 두는 게 훨씬 맞다는 논리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 제외 놓고 "김동연 부총리가 ‘정권실세’ 등에 업은 최흥식 금감원장 위세 꺾지 못한 것”

금감원이 당분간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는 대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채용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비효율적 조직 운영 등에 관한 감사원 지적 사항 등을 개선하겠다고 공운위에 약속했다. 또 앞으로 경영공시를 공공기관 수준으로 수행하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중 일부가 참여하는 경영평가도 받기로 약속했다. 대신 기대하는 수준의 변화가 없으면 내년이라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보면 이번 일이 외관상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지분이 없는 김동연 부총리가 결국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최흥식 금감원장의 위세를 꺾지 못한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온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이참에 아예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수 없게끔 법으로 못을 박겠다”며 정치권 로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은 금감원을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사실 권한이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금감원은 금융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잃은 지 오래다. 금융을 면허사업으로 국가가 허가를 내주고, 그 허가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금감원이다. 금감원은 과거 임직원이 저축은행 비리 등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는 등 시고가 잇달았다.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인 금감원은 반관반민의 독특한 조직이다. 사실상 정부 규제를 위탁받아 행사하는 준정부기관이다.

그래서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풀어줬더니 관도 민간도 아닌 회색 지대에서 몸집이 커지고 자기 편한대로 하다가 스스로 대형사고를 치는 꼴이다. 오죽하면 저축은행 피해자들로부터 “금융감독원이 금융강도원이냐”는 치욕적인 비난을 들을 정도였을까.

조선왕조 500년을 회고하는 학자들은 나라가 오래 갈 수 있었던 배경에 국가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왕을 향한 언로의 개방을 꼽는다. 귀와 눈을 막으면 원기가 끊긴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신랄하고 시쳇말로 '버르장머리 없는' 간쟁이라 할지라도 쉽게 처벌하지 못했다. 그 발언들의 원천이 어딘지를 알기 위해 "누구로부터 그 말을 들었는가?"라고 캐묻기도 어려웠다.

도덕적 '불감증' 걸린 금감원..위신이 땅에 떨어진 상태로 무슨 금융기관의 채용비리 감독하겠다는 건지 의문

조선왕조는 그런 공론장을 제도적으로 갖춘 나라였다. 임금과 권신들 모두 간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비판에 귀를 막으면서도 그 자체를 폐하자고 나선 일은 조선 역사에 드물었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의 삼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제도는 현대인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언로(소통)를 담당한 삼사는 조선이 수많은 당파 싸움에도 불구하고 500년 역사를 유지할 수 있게 한 버팀목이었다.

조선건국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던 성리학에 따르면 문무 양반 관료들의 주 임무는 국왕이 덕치를 행하도록 돕고 백성이 올바르게 살도록 하는데 있었다. 왕이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덕치의 원칙에서 벗어날 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간언’을 하는 것이 자신들의 도리라고 보았다. 조선시대 삼사와 같은 정치기구는 양반관료들이 국왕의 전제적 통치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권력이 독재로 흐를 경향을 보이면 그를 제지하고 권력의 남용을 막을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포퓰리즘이나 중우정치(衆愚政治)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 무절제한 욕망에도 선을 긋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늘날 법을 만들고 실행하며 그 행위의 합법성을 판단하는 권력이 입법, 행정, 사법부로 삼권분립되어 있는 것 또한 그 일환이다. '만장일치는 무효'라는 유대인들의 오랜 지혜 역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요체의 반영일 것이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유보는 '정치적 무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금감원은 권능과 역할상 공공기관 중의 핵심 공공기관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당연히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여긴다. 금감원이 그동안의 숱한 비리에도 아직도 건재하고 공공기관 지정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 무능한 정치의 결과이다. 금감원이 현재 상태로 민의의 통제를 벗어나서 역주행을 계속한다면 결국 관료 마피아(금피아)가 득세할 것임이 자명하다.

금감원의 감독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은 물론 보장돼야 한다. 다만 그 독립성은 도덕성의 기반이 있어야 존재가 가능하다. 현재의 금감원은 채용비리와 방만경영 등으로 도덕성이 현저히 붕괴돼 있는 상태다. 마치 도적적 불감증에 걸린 금감원을 보는 것 같다. 각종 채용비리로 자신의 도덕성과 위신이 땅에 떨어진 금감원이 무슨 금융기관 채용비리를 감독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제외에 따른 공방과 논란을 보면서 금융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독립성과 도덕성,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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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규 2018-02-02 11:08:14
청렴도 꼴찌, 업무능력 평가 하위, 암입원보험금 등 민원 처리 불투명, 불명확... 이런 조직을 어디다 쓸까요? 연봉은 왜 그렇게 많이 줘서 방만하게 만들었을까요? 보험사들이 왜 ? 보험민원감독원의 기능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늙은 공룡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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