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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채용비리 공화국' 어쩌다 이 지경까지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채용비리 공화국' 어쩌다 이 지경까지
  • 권의종
  • 승인 2018.02.0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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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일수록 경영자의 자기성찰 중요.. 사람 가벼이 여기는 오만한 사고부터 고쳐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해도 해도 너무했다. 짐작은 했지만 이 지경인 줄은 몰랐다. 공공기관과 금융권의 채용비리 특별점검에 대한 발표가 믿기지 않는다. ‘비리 백화점’이라는 비난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인사시스템은 있으나마나 했고 심사위원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기회 평등의 염원은 송두리째 내팽개쳐졌다. 규모면에서도 역대급이다. 15개 부처 산하기관 1,190개 중 80%에 해당하는 946곳에서 4,788건의 채용 비리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68곳은 수사의뢰까지 되었다. 비리의 민낯은 실로 가관이었다.

고위 인사가 찍어주면 합격이었다. 직무와 무관한 경력자 채용은 예사였다. 커트라인을 낮추고 면접은 짬짜미로 진행되기 일쑤였다. 낙하산 앉히려고 기존 직원에 권고 사직시키는 일도 흔했다. 합격자수를 늘리고 점수를 조작하고, 면접위원이 아닌데도 면접장에 들어가 질문을 해 가점을 주었다. 윗사람 한마디에 합격은 번복되었다. 채용이 부결되면 인사위원회가 또 열렸다. 계약직으로 뽑은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수법은 이미 고전에 속했다.

전·현직 간부 자녀의 특혜 채용은 일상이었다. 고위직 자녀의 경우 지원 서류를 안냈는데도 합격시키고, 특정인을 위해 단독 면접까지 실시했다. 지인 합격을 위해 면접관에게 "이런 질문하라"고 문자까지 보낸 기관장도 있었다. 명문대출신 7명을 뽑기 위해 이들의 면접점수를 올려 합격시키고, 합격권의 타 대학출신 지원자들의 점수를 깎아 탈락시키는 대담함도 선보였다. 청탁이 쇄도하다보니 명부를 관리해하면서 수십 명을 합격시킨 간 큰 은행장도 등장했다.

채용 비리에 관한한 더 이상의 수법이 나올 게 없을 정도로 기상천외의 ‘꼼수’들이 망라되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서 최소한의 도덕성은 고사하고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었다. 조직을 망치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저지르기 힘든 작태가 버젓이 연출되었다. 채용 비리가 이 정도일진데, 이번 조사대상에서 빠졌기 망정이지 승진이나 이동 비리도 못지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혹시라도 해외토픽으로 나라밖에 알려질까 두렵고, 국내 기업들의 학습 자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채용비리는 단순히 인사실패 넘어 스스로 기관 해치는 자해(自害)행위.. 제 발로 찾아오는 인재마저 내쫓아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채용 비리는 인사관리 실패에 그치지 않는 점이다. 기관을 해치는 자해 행위라는 사실이다. 경쟁은 노력을 불러오고 노력은 성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영의 신(神)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라는 말로 비즈니스의 본질을 명쾌히 정의했다. 조직은 사람을 중심으로 발전하며 성과 또한 적절한 사람을 얻고 쓰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강조했던 경구(警句)다. 비즈니스도 ‘사람 장사’라는 얘기다.

전통 있는 기업이나 좋은 아이템을 가진 회사라 하더라도 그 전통과 품목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가 확보되지 못하면 쇠락하게 마련이다. 부하직원을 대하는 경영자의 마인드나 태도 역시 경영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우수한 직원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데도, 자기보다도 못한 사람을 뽑아 일을 맡기며 지시하고 참견하다보니 일을 그르치고 만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이 ‘인재 양성’을 최우선 경영과제로 설정하고 '사람을 찾고, 키우고, 능력을 살려 쓰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좋은 사람을 발 벗고 찾아나서도 시원찮을 판국에 제 발로 찾아오는 인재마저 쫓고 있는 조직의 미래가 보장될 리 없다. 상당수 공공기관의 경우 성과가 미진하고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해온 데에는 인재경영의 중요성을 망각한 경영자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주나라 주공(周公)의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 고사.. 경영자들, 소명의식으로 중무장해야 

인재욕심 많기로는 중국 고대 주나라의 주공(周公) 만한 사람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만들고, 인재를 찾으면 등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다. 하루에 70여 명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정도로 인재에 대한 관심이 컸고, 인사관리 능력 또한 탁월했다. 그는 아들 백금에게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라는 명구로 인재관리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한 번 머리를 감다가 세 번이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밥 한 끼를 먹다가 먹던 것을 세 번 뱉어내다”라는 뜻이다. 주공은 머리를 감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감던 머리채를 붙들고 손님맞이에 나섰고, 식사 중에도 내방객이 있으면 세 번이나 먹던 것을 뱉어내고 영접했다는 일화다. 공자가 그를 가장 바람직한 정치가로 꼽았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기관장 8명을 해임하고 연루된 임직원 266명을 업무에서 배제시켜 퇴출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기 어렵다. 부정합격자를 퇴출시켜 5년간 공공기관 응시기회를 제한한다고 흙수저들의 절망과 박탈감이 원상 복구될 리 만무하다. 청탁자 실명을 공개하고 비리 행위자에 대한 ‘원스트라익 아웃제’를 법제화한다 해서 비리가 근절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공기관 경영자는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오만한 사고부터 고쳐야 한다. 어느 곳으로부터 어떠한 청탁을 받더라도 직(職)을 걸고 소신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수 인재를 널리 구하고 공정한 절차로 적임자를 투명하게 선발하는 소명의식으로 중무장해야 한다. 나중에 채용비리로 잘릴 바에는 청탁거절로 중도 하차하는 게 낫다는 결기도 필요하다. 결국은 경영자가 바로서야 비리는 사라지고 경쟁력은 살아나는 법이다. 위기일수록 경영자의 자기성찰이 중요한 까닭이다. 동요의 한 소절 ‘당당하고 씩씩하게’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 경영자에게 더 필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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