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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수읽기 싸움 최종 승자는 누구?
한반도 수읽기 싸움 최종 승자는 누구?
  • 이도선
  • 승인 2018.03.1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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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칼럼]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면서 서울과 평양,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고단수의 수읽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먼저 판을 뒤흔든 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다. 남북 관계 개선과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가 담긴 신년사로 깜짝수를 두더니 대북 특사단 파견이란 문재인 대통령의 응수에는 남북 정상회담과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란 회심의 한 수로 한술 더 떴다. 평양에 이어 워싱턴으로 부리나케 날아간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서 5월 북미 정상회담을 다짐받았다. 문 대통령이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라며 반색할 만도 하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명하자 미국이 대북 강경 일변도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분위기다. 틸러슨 장관은 “날씨 이야기라도 하자”며 조건 없는 대북 대화를 거듭 주장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면박당할 정도로 대북 온건파의 좌장으로 꼽힌 인물이다. 반면 폼페이오 지명자는 북한의 정권 교체는 물론이고 나아가 수뇌부 암살까지 주장하는 ‘원조 매파’다.

이에 앞서 강경파이지만 대북 선제공격에는 반대하는 빅터 차 주한 대사 지명자는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동의)까지 받은 상태에서 낙마했고 온건파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물러났다. 대북 정책 참모진을 강경파로 채운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발탁이란 초강수로 최대한의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하려는 의중을 확연히 부각시켰다. 김 위원장은 물론이고 문 대통령과의 수읽기 싸움에서도 기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를 처음 보고받고 “대북 대화에서 가능성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기대를 표시하면서도 “거짓된 희망(false hope)일지 모른다”며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핵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며 핵 얘기만 나와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던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서겠다니 최선을 다해 대응하겠지만 북한의 기만전술에 놀아나곤 했던 과거의 잘못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무위로 끝나면 곧바로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까지 나오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국내는 온통 장밋빛 전망뿐이다. 다음 달 말 판문점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의 유력한 의제로 떠오른 ‘신(新)베를린 선언’도 그런 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이 선언은 6·15 공동 선언과 10·4 정상 선언으로 되돌아가자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든 말짱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뭐니 뭐니 해도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다. 한국이나 미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한 전례가 없는데도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을 보면 진정성은 애초부터 없어 보인다. 6.25를 비롯해 1.21 사태, 무장공비 침투, 아웅산 테러,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숱한 대남 도발을 자행하고도 외려 군사적 위협 운운하다니 어이없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란 말도 고약하다. 북한의 핵실험 6번 중 4번이 김 위원장 집권 이후에 강행됐으니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어겼다고 본인 스스로 실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언론이 비핵화나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일체 함구한 채 “핵 무장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당한 권리”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약속을 뒤집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례로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10만 명이 동원된 집단체조를 관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장면을 묘사한 카드섹션을 가리키며 “마지막 미사일 발사”라고 장담했다. 당시 워싱턴에서는 북한이 ‘돌아갈 수 없는 지점(Point of no return)’까지 모습을 드러냈다며 반겼고 서울에선 “한반도 위기 끝!”이라고 떠들어 댔으나 그의 말은 곧 공수표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이 마치 묘수나 되는 것처럼 자랑하는 ‘한반도 운전대론’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손에 쥐고 있는 상황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고 해서 미국을 젖혀 놓고 한반도란 차를 마음대로 몰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미 대화를 중재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란 단견도 금물이다. 북미가 협상 끝에 대륙간탄도탄(ICBM) 포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고받기라도 하면 우리에겐 재앙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갑자기 들고 나온 유화책은 국제사회의 제제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끝에 나온 궁여지책일 뿐이다. 최후의 수읽기 싸움에서 이겨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려면 남남 갈등 해소와 한미 공조로 대북 압박 강도를 최대한 높이는 게 유일한 정수다.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하고 한국을 방패막이 삼아 제재의 쓰나미를 피해 가려는 김 위원장의 노림수에 말려든다면 그보다 더 큰 대역죄도 없을 것이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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