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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책 없이 빗장 풀린 연대보증 폐지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책 없이 빗장 풀린 연대보증 폐지
  • 권의종
  • 승인 2018.04.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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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도개선 취지에도 어설픈 사전-사후 관리..설익은 풋과일은 영양은 커녕 건강만 해쳐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4월부터 정책금융에 대한 연대보증제도가 개편된다. 기업이 신용보증기금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보증이나 대출을 받을 때 법인 대표자의 연대보증이 전면 폐지된다. 기업경영과 무관한 가족이나 동료에게 요구되던 제3자 연대보증이 2012년 폐지된 지 6년 만에 대표자 연대입보마저 없어진다. 창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 혁신성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가 내세우는 추진 배경이다.

금융환경이 앞선 선진국에서조차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파격적 결정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 중소기업청 자금의 경우 20%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자는 모두 연대입보를 한다. 독일 보증은행도 대표자는 반드시 입보하고 가능한 물품이 있을 경우 담보로 제공한다. 일본은 ’경영자보증 가이드라인‘을 시행, 법인·대표자 간 자산분리, 자기자본비율 등 재무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연대보증을 면제한다.

연대보증의 폐해는 심각하다. 기업 부실화에 따른 채무는 보증선 개인으로서는 감당키 힘든 부담이다. 실패자의 주홍글씨를 천형처럼 여기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한다. 당장의 생계조차 꾸리기 힘든 형편에 통상 수억 원이 넘는 채무상환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첨단의 기술을 갖고도 재도전 창업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실패는 했지만 축적된 값진 사업경험과 소중한 노하우는 일거에 사장되고 만다. 개인과 기업의 손해를 넘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공공기관 연대입보는 타당성 측면에서 논쟁의 소지가 있다. 신용조사를 통해 기업의 신용을 보완해주는 신용보증기관에서 연대보증이라는 인적담보를 세우는 구조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정책기관이 부담해야 할 부실위험을 보증인에게 떠넘기는 행위라는 비난도 나올만하다. 그럼에도 연대보증제도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대표자의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이다.

연대보증 폐해 심각.. 거대채무 상환 어렵고 신기술 있어도 재도전 창업은 ‘언감생심’

실제로 사업이 힘들어지면 고의 부도를 내고 친지나 종업원의 명의를 빌려 새롭게 사업을 영위하는 ‘차명(借名)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기업일수록 예전에 이용했던 정책금융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들다. 허위 자료나 위장 수법을 동원해서라도 다시금 신용보증이나 정책자금 활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연대보증 폐해를 근절하는 동시에 기업의 도덕적 해이까지 차단하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시도는 가상하다. 기업의 고충 경감과 창업 활성화라는 정책 방향에 토를 달 사람도 없다. 실패경험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용기 있는 재도전 기회를 마련하려는 정책 추진은 의당 박수감이다. 다만, 정부의 연대보증 개선방안에 ‘옥에 티’가 적지 않은 게 흠이다.

대책에 담긴 내용의 현실성이 뒤진다는 평가다. 연대입보제도가 유도해온 책임경영 문제를 체크리스트나 평가지표 신설 등 여신심사 개편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시도야말로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시각이다. 위장 경영, 대출금 유용, 세금 체납 등 투명성 관련 정보를 활용해 기업의 도덕성을 측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전임 대통령과 관련하여 ㈜다스의 실소유주를 밝히는 과정을 보자. 사법당국이 그토록 오랜 기간 공권력을 총동원하고도 진상 규명에 무진장 애를 먹지 않았던가. 책임경영에 의심이 가는 기업들 대다수는 심증은 있어도 물증을 찾기 어렵다. 이를 제대로 판별해낼 수 있는 법률적 수단도 획기적 재간도 시간적 여유도 금융기관 실무자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심사기준 개선으로 도덕적 해이 차단 어려워,, 부실위험 커버할 재원 확충 시급

제도 시행에 따른 시행착오 또한 걱정이다. 특히 현장에서의 소극적 업무처리가 우려된다. 심사기준에는 저촉되지 않아도 부실가능성이 농후한 기업을 대하는 실무자의 고민은 커지게 마련이다. 부실발생에 대한 우려와 함께 업무처리 결과에 대한 문책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책임져야 할 의사결정자는 보이지 않고 애꿎은 실무자만 처벌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기업은 기업대로 까다로운 절차에 시달릴 수 있다. 자사(自社)의 투명성과 경영자의 책임성 입증을 위해 수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장황한 정황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추가될 수 있다. 소수의 거절업체를 가려내기 위해 모든 기업들이 고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지원이 늦어지고 금융의 가용성과 접근성이 방해될 수 있다.

사전 대책은 그렇다손 치더라고 사후 대책이 전무한 게 더 큰 문제다. 연대보증 폐지에 따른 채권회수 감소나 늘어날 부실위험을 커버할 재원마련 방안은 정부 발표 어디에도 언급이 없다. 미처 거기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거나, 당장 적절한 방안이 없어 추후 과제로 미뤄졌을 수 있다. 하지만 재정이 소요되는 국책사업일수록 국회심의 등 국민적 동의가 선행되는 게 맞다. 재원의 최종 부담자는 결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성급한 시행은 또 다른 근심거리다. 제도를 시행할 정책금융기관은 심사기준 변경, 전산시스템 구축, 실무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을 게 분명하다. 기업이 처한 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치밀한 사전 준비와 완벽한 사후 대책을 강구한 연후에 제도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 행여 일단 제도를 시행하고 예상 문제점은 그때그때 보완하려는 계획이 아니기를 바란다. 조급한 시작은 허술한 결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설익은 풋과일은 영양은 커녕 건강만 해칠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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