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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안정화는 고용안전망 확충과 병행해야
노동시장 안정화는 고용안전망 확충과 병행해야
  • 이병희
  • 승인 2018.06.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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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희 칼럼] 실업 위험 높고, 저임금 비중 높아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외국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 특징은 실업률도 낮고 장기실업자의 비중도 매우 작지만, 실업 위험이 높고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도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국제비교 통계를 제시하는 OECD 보고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OECD의 2014년 고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매월 실업 상태로 유입하는 비율은 비교대상 33개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세 번째로 높다. 또한 OECD의 2018년 보고서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비교대상 26개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실업과 저임금 고용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고용안전망의 미비가 존재한다. 실업기간 동안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 어떤 일자리든 빨리 취업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적합한 일자리가 아니면 반복적인 실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OECD가 지난 3월 〈한국의 더 나은 사회 및 고용안정을 향하여〉보고서를 통해 일자리 질의 개선과 사회적 보호의 확충을 제안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존재한다.

고용안전망 사회적으로 필요, 그러나 사각지대 넓어

실업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게으름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기 변동의 위험에 취약하며, 우리나라는 특히 대외적인 요인에 의한 경기 변동의 가능성이 높다. 실업을 사회적 위험의 하나로 인식하여 실직으로 인한 소득 상실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고용보험이다. 고용보험은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노동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를 받는 비율은 실업자 10명 가운데 3명에 그치고 있다. 이는 취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실업급여 수급자격 요건이 엄격하며, 실업부조가 없기 때문이다. 실업급여와 실업부조를 합한 실업관련 급여 수혜율의 국제비교를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가장 낮다.

고용안전망의 확충은 실업자에게 단순히 소득 보장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적합한 일자리 탐색과 취업능력을 제고함으로써 노동력의 효율적인 배분을 촉진하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과 고용보험 적용 패러다임의 개편을 제안한다.

일해도 가난한 ‘근로빈곤 현상’

일을 해도 가난에 머무르는 근로빈곤 현상은 우리 노동시장과 고용안전망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기준 중위소득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 가구의 근로능력자가 2015년 기준으로 250만 명이며, 그 가운데 한 해 동안 구직활동을 경험한 자도 74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 퇴직금조차 없는 근로빈곤층이 실업급여를 받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실업 기간 동안의 소득을 지원하는 정책에 인색하다. 대신 공공근로와 같은 일자리나 훈련을 제공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러나 재정을 통한 직접 일자리 제공은 민간 일자리 취업과 연계되지 않은 단기 일자리에 불과하였으며, 참여 기간 동안의 생계 문제를 안고 있는 근로빈곤층이 장기간의 훈련을 받기도 어렵다.

한국형 실업부조의 도입을

근로경력이 없거나 짧아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을 노동시장에 안정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외국에서는 실업부조를 운영한다. 실업부조는 고용․기여 이력이 없더라도 근로빈곤층에게 소득을 지원하며, 지원 과정에서 구직활동 의무를 부과한다. 고용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간 사각지대가 넓은 우리나라에서도 실업부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에서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을 국정과제로 제시하였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우리 근로빈곤층의 특성을 고려하여 실업부조를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 근로빈곤층은 외국에 비해 노동시장 활동성이 높다. 장기적인 빈곤 상태에 머무르기보다는 단기간의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면서 반복적인 빈곤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실업부조를 구직활동 등 의무이행 조건부 권리로

따라서 한국형 실업부조는 최저소득보장보다는 더 나은 일자리로의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취업지원 프로그램 참여 등 적극적 구직활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하되, 급여 수준은 구직활동 등의 의무이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하고, 수급기간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계속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실업과 빈곤의 구조화 추세를 막기 위해 한국형 실업부조는 수급요건을 충족하면 제공되는 권리보장형 제도로 도입하되, 구직활동 의무이행을 조건으로 하는 권리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현행 고용보험은 사각지대 너무 넓어

1995년 7월에 도입된 고용보험은 꾸준히 적용을 확대하여 왔지만, 여전히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는 넓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가사근로자, 초단시간 근로자, 65세 이상 근로자, 자영업자는 법적으로 적용이 제외되어 있으며, 적용대상이더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공식 근로자 또한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 고용보험은 하나의 사업장에서 고용이 안정된 근로자를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용역계약을 통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임금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또한 복수의 일자리에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증가하고 있으나, 피보험자격의 이중취득이 제한되고 있어서 고용보험 급여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그리고 취업과 실업이 명확히 구분된다고 가정하여 실업급여를 운영함에 따라 수급기간 중의 소득활동을 억제하고 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의 적용방식과 급여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여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고용보험 적용해야

우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여야 한다.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계약상의 지위만으로 고용보험의 보호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 국회에는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9개 직종을 중심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법률안들이 제출되어 있다. 주로 하나의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전속성 요건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근로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를 이유로 고용보험의 적용을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보험 적용을 과세소득 기준으로 개편해야

나아가 고용보험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의 적용기준을 과세소득으로 개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일정 금액 이상의 보수를 받는 종사자의 가입을 의무화하게 되면, 주된 사업장을 정할 필요가 없이 피보험자격의 이중취득이 허용되며, 복수의 일자리에 종사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적용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하나의 일자리에서 실직하였을 때 다른 일자리의 보수가 일정한 수준보다 낮으면 부분 실업급여를 제공할 수 있으며, 실업급여 수급기간 중에도 일정한 소득활동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사업주의 신청에 기반한 사회보험료 지원이 아니라 임금 수준이 일정한 저임금선 이하면 자동으로 사회보험료를 감면하는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과세소득 기반으로 고용보험의 적용 패러다임이 개편되기 위해서는 조세행정을 중심으로 사회보험 적용과 징수체계의 일원화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이 병 희(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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