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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에서 '타이완'으로
'중화민국'에서 '타이완'으로
  • 허영섭
  • 승인 2018.07.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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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대만은 과연 나라 이름을 바꿀 것이며, 나아가 독립을 선언할 수 있을까. 요즘 유력 인사들을 중심으로 국호변경 운동을 펼치고 있는 대만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질문이다.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란 이름을 ‘타이완(Taiwan)’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역사적으로 대만이 중국과 연관성이 별로 없는데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온 이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금과 같은 갈등구조가 생겨났다는 판단에서다. 아예 국호를 바꾸는 방법으로 중국과의 역사·문화적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지난 4월 결성된 ‘시러다오(喜樂島) 연맹’이다. 이 모임에는 리덩후이(李登輝)·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을 비롯해 뤼슈렌(呂秀蓮) 전 부총통, 장준슝(張俊雄)·유시쿤(游錫堃) 전 행정원장 등 독립론자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날 정부 요직을 지냈지만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의 운동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이 모임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궈페이훙(郭倍宏) '민간전민TV(民視)' 회장이 과거 대만독립건국연맹 미국본부 대표를 지냈다는 점에서도 이 모임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동 목표는 일단 내년 4월에 맞춰져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국호 변경이 확정된다면 즉각 국가 독립을 선언하고 유엔 가입을 신청한다는 후속 절차도 마련돼 있다.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타이완’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다는 것도 부수적인 목표다. 연맹 이름으로 내세운 ‘시러다오’라는 자체가 대만의 별명인 ‘메이리다오(美麗島)’를 연상케 한다. 16세기 말 포르투갈 선원들이 대만을 처음 발견하고 불렀다는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의 번역어가 바로 ‘메이리다오’다. 대륙의 간섭이 없었던 원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느 나라나 국민들의 결집된 의사에 따라 국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만의 경우는 예외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이 독립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국명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서도 정부 차원에서는 ‘현상 유지’ 입장만 밝히고 있을 뿐 아무런 공식 견해조차 표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민간 차원에서 이러한 운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한 2016년 5월 이래 파나마, 상투메프린시페, 도미니카, 부르키나파소 등이 중국의 압력으로 연달아 수교국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초래된 위기감의 발로다.

그러나 이들이 국민투표를 추진한다고 해서 뜻대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규상 헌법 질서에 위배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를 불허하고 있다는 게 우선의 걸림돌이다. 대만의 현재 여건상 독립 추구가 헌법 규정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시러다오 연맹이 입법원에 대해 이러한 제한 규정을 없애도록 공민투표법을 개정토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법원이 선뜻 나서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설사 공민투표법이 고쳐진다고 해도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국민투표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국민투표가 실패로 끝날 경우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국민들 상당수가 중국으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닥칠 위협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대만이 독립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여차하면 무력 침공하겠다는 속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미 장쩌민(江澤民) 주석 시절이던 2005년 ‘반(反)국가분열법’을 제정해 대만이 어떤 식으로든 독립 움직임을 보일 경우 물리적인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밝혀놓은 상태다.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대만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 세력에 쫓겨오면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청일전쟁에 패배한 청나라가 1895년 대만을 일본에 식민지로 넘겨주었으므로 1911년 건국한 중화민국이 역사적으로 대만을 실효 지배한 적도 없다. 더 나아가 1951년 9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일본은 대만 및 펑후(澎湖) 제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내놓는다"고만 했지 누구에게 넘긴다고 귀속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명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비단 대만의 경우만은 아니다. 국제적 상황이 변하면서 지금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와의 합의에 따라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키로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얘기다. 지난 4월에는 아프리카 스와질랜드가 ‘이스와티니 왕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종래 버마로 불리던 미얀마의 국호 변경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필리핀, 멕시코 등에서 국호 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에서는 대만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어느 나라에서도 국호는 국민 단합을 위해 가장 상징성을 지니는 요소다. 역사와 문화, 국민성을 총체적으로 대표하는 게 바로 국호다. 나라 이름을 놓고 변경 필요성이 제기됐다면 보통 고심했을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2300만 대만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이며, 그들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현실적인 장벽이 생겨났을 뿐이다. 대만이 상당수 국민의 뜻대로 당장 ‘타이완’이란 국호로 바꾸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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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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