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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화해 이후의 대만
북·미 화해 이후의 대만
  • 허영섭
  • 승인 2018.07.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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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미래 정세를 생각하게 된다. 6·25전란 당시의 미군 전사자 유해를 송환한 북한의 이번 조치가 단순히 양국 사이의 화해 차원에서 파급효과가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북이 포함되는 종전선언이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결국에는 양국 수교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동북아 역내 질서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도 미군 유해가 송환되긴 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또 다르다. 미군 수송기가 북한 지역까지 직접 들어가 유해를 반환받았다는 사실부터가 그러하다. 미국이 암묵적으로나마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지켜준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고 언급한 데서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이어지는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게 된다. 아직 북한의 핵폐기 절차가 남아 있고 경제 제재도 당장 풀리지는 않겠지만 일단 양국 신뢰관계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부터다. 일찌감치 논란을 빚었듯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문제가 본격 거론될 소지가 적지 않다. 어떤 경우가 됐든 주한미군의 역할이 줄어드는 결과만큼은 불가피하다.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해소된다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미 연례적인 한·미 군사훈련이 취소됐고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병력에 대한 철수 방안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역할만 놓고 본다면 과거 닉슨독트린 당시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북핵 해결을 원했던 우리의 당초 의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같은 동북아에 위치한 대만의 위상과 역할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이냐 하는 점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기꺼이 화해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대만을 지금처럼 미적지근한 관계로 놓아두겠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다. 설사 북한에서 핵무기가 제거되더라도 강압체제는 그대로 유지될 테고 인권문제 또한 금방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격상시키면서도 민주 체제인 대만과는 미수교 상태를 유지하겠느냐는 형평성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미국이 과거 적대국으로서 교전 상대였던 베트남이나 쿠바와 국교를 체결했다고 해서 대만과의 수교 명분이 쌓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이 과거 중국과 수교하면서 약속했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견해들이 미국 내에서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대세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무역 및 환율 분야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아직은 중국을 정식 대화 상대로 끌어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대만의 입장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중국이 대만의 수교국을 빼앗아가는 등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을 극구 제약하는 가운데서도 미국은 대만을 지원한다는 약속만 내세울 뿐 실질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세계 주요 항공사들을 겨냥해 "대만을 중국 영토로 표시하라"는 중국의 최근 압력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전체주의 방식’이라고 비난하는 데 그칠 뿐 정작 아메리칸 에어라인, 델타항공,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등 자국의 대표적인 항공사들이 굴복하는 데 대해서조차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러나 군사적 측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갈수록 노골화하는 중국 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의 지정학적인 측면 때문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바로 코밑에서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 병력을 대만에 이동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최근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2대가 대만해협 통과작전을 펼친 것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과는 별개로 대만의 전략적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 측면보다 병력유지 비용을 줄이는 데 더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도 주한미군의 역할은 축소될 소지가 커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서조차 서슴없이 불만을 드러내는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에 미뤄서도 충분히 전망이 가능하다. 이렇게 초래된 안보 공백을 다자간 안보체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구상도 벌써부터 논의 중이다. 결국 동북아 일대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강화되는 결과만 초래될 뿐이다. 반면 부분적이나마 대만의 견제 역할이 커지게 되면서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대치점이 한반도에서 대만해협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증대될 것이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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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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