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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은 낙엽처럼 퇴출되어야 한다
한계기업은 낙엽처럼 퇴출되어야 한다
  • 권의종
  • 승인 2018.09.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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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퇴출, 당장은 경제에 부담...중장기적으론 국가경제를 회생시키고 꽃피우게 하는 자양분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한여름 무더위가 엊그제인데 설악산에는 벌써 단풍 시작이다. 머지않아 무성했던 잎들이 낙엽으로 땅바닥에 뒹굴 게 된다. 생활에 쫓기고 세파에 찌든 도시인들에게 낙엽은 낭만보다는 귀찮은 존재로 다가온다. 치워지고 버려지고 태워져야 하는, 그 수명을 다한 존재일 따름이다. 그러나 낙엽은 쓰레기와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꼭 생태전문가가 아니라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자연계에서 낙엽이 감당하는 역할이 작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선 낙엽은 토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숲에서 덮개가 되어 비바람으로부터 땅을 감싸준다. 빗방울이 쏟아져 땅바닥을 때리면 흙 알갱이가 튕겨 나가 토양이 유실되고, 심하면 거친 물살을 일으켜 지표면을 깎아 내린다. 하지만 낙엽 덮인 숲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낙엽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토양을 완충하여 급격한 온도변화와 수분증발을 막아줌으로써 미소동물의 삶의 터전이 되는 한편 이들의 먹거리가 되기도 한다. 종류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략 g당 4.7Kcal 가량의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고, 낙엽을 분해하는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균, 곰팡이, 버섯, 노래기, 지렁이 등이 낙엽에서 영양소를 섭취해 살아가고, 이들은 다른 생물에게 잡아먹혀 먹이사슬을 이룬다.

낙엽이 많은 땅은 부드럽다. 낙엽이 썩어 부식질이 흙과 섞이기 때문이다. 흙이 부드럽다는 것은 그만큼 흙 알갱이 사이에 빈틈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 같은 토양에서는 물이 잘 흡수되고, 비가 그친 후에도 많은 비가 땅속에 저장되어 지표 위를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진다. 부식질로 물을 머금은 토양은 홍수방지에 유용할뿐더러 그 땅에 사는 생물들에게 요긴하게 사용된다.

수명 다한 낙엽의 섭리... 토양 보호·완충, 홍수방지 등 자연계에서 감당하는 역할 작지 않아

결국 떨어진 낙엽은 나무 주변을 보호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생물의 먹이가 되며, 썩어 진토가 되어가면서까지 자기가 태어난 나무에 대한 기여를 그치지 않는다. 정호승님의 시집 ‘사랑하다 죽어 버려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뿌리 있는 쪽으로 나무는 잎을 떨군다. 잎은 썩어 뿌리의 끝에 닿는다’는 대목이다. 낙엽은 생의 끝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약속하는 자연의 섭리임을 담아낸 것이다.

비유컨대 산업계의 낙엽은 한계기업일 수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치 못하는 한계기업이 3천112개에 이른다. 전체 외부감사 대상 비(非)금융법인의 13.7%를 차지한다. 이들 중 942개사, 즉 3곳 가운데 1곳 가량은 한계 상황이 7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10년 이상 되는 ‘장기연명’ 기업만도 393개, 전체의 12.6%나 된다.

게다가 한계기업의 정상화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정상화되는 기업의 비율은 1년 후에는 18.8%이나, 4년 후에는 1.2%로 뚝 떨어진다. 그나마 5년 이후부터는 희생하는 기업이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을 강화와 금융기관의 대출건전성 관리 강화가 시급하다. 한계기업이 늘면 자금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위기 때 금융시스템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생만이 능사는 아니다. 낙엽을 쓰레기로 여겨서는 안 되듯 부실기업의 퇴출 역시 경제적 손실로만 파악할 수 없다. 아프지만 잘 감내할 경우 산업과 경제에 주는 유용함이 적지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업원 실직, 협력업체 도산, 해외신인도 추락 등의 피해의식보다 이를 값진 대가로 치르며 얻게 될 교훈과 소득을 생각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의 경쟁력 유지 비결 중 하나... 성공 기업보다 망하는 기업이 훨씬 많은데 있어

이렇듯 자연법칙이 갖는 보편성을 전제로 한 ‘낙엽 유용론’에서 부실기업의 퇴출이 주는 효용성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첫째, 기업퇴출은 사업성이 없는 기업이 망함으로써 산업과 경제 전체의 효율을 제고시킬 수 있다. 자원 배분을 최적화시키고 시장경제 원리에 보다 충실해질 수 있다. 더욱이 한계기업의 퇴출창구가 항상 열려있는 경제구도 하에서는 많은 기업이 일거에 쓰러지는 연쇄도산 등의 재앙도 피할 수 있다.

둘째, 부실기업의 퇴출은 살아남은 다른 기업에게 적지 않은 가르침을 전한다. 인수, 합병, 청산 등을 거친다고 퇴출기업이 지녔던 경험, 노하우, 기술력이 백퍼센트 그대로 사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상당부분은 다른 기업에 직간접으로 이전되고 전파되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낙엽이 썩어 미소생물에게 필요한 에너지와 자양분으로 공급되듯, 퇴출기업의 강점은 물론 약점과 실패까지도 타 기업들에게 참고가 되고, 거울이 되고 좌표가 될 수 있다.

끝으로 기업퇴출은 산업 생태계 순환을 더욱 활성화시킨다. 경쟁력이 쇠잔해진 기업이 사업성이 유망한 기업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세대교체는 시장불안 해소와 안정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한계기업은 산업 내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이고 걸림돌이다. 이런 장애가 치워져야 우수 기업들의 전도와 활로가 트이게 된다. 낙엽에 기생하는 생물이 다른 생물에 잡아먹혀 생태계의 사이클이 유지되듯, 낡은 기업이 새 기업으로 대체되는 순환시스템은 경제에도 필요하다.

실리콘밸리가 세계최고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성공하는 기업보다 망하는 기업의 수가 훨씬 많은데 있다. 결국 기업의 퇴출은 당장은 경제에게 부담과 주름살로 작용하나, 중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를 회생시키고 꽃피우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어차피 망할 기업이라면 차라리 빨리 망하는 게 낫다. 상처가 곧 스승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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