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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 출입 거부한 유엔본부
대만인 출입 거부한 유엔본부
  • 허영섭
  • 승인 2018.10.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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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대만(중화민국) 국민에 대해서는 유엔본부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논란을 빚고 있다.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는 유엔조차 일반인에게 허용된 내부 관람에서부터 대만인들을 차별 대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최근 대만 연합보(聯合報) 소속 여기자가 뉴욕을 방문한 길에 유엔본부 건물에 대한 안내원 투어(guided tour)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데서 비롯됐다. 대만 여권을 제시했으나 출입이 거절당하자 중국 당국으로부터 발급받은 ‘교포증’을 제시하고도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의 신분이 신문기자이긴 하지만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관람 목적으로 투어를 신청했는데도 출입을 봉쇄당했다는 점에서 대만 내부의 여론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함께 줄을 섰던 다른 대만인도 똑같이 투어 신청이 거부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게 그 여기자가 연합보에 기사로 증언한 내용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으나 이번 보도로 대만에 대한 유엔의 차별 대우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대만 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만을 국가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의미이기 때문이다. 과거 중화민국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하나이던 시절과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그나마 중국이 발급한 교포증으로 유엔본부 관람이 허용되던 규정이 폐지됐다는 사실도 새로이 확인됐다. 대만인들이 대륙을 왕래할 때 중국 당국으로부터 신분 확인용으로 발급받는 증명이지만 해외에서도 제한적으로 대만 여권을 대체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던 셈이다.

유엔사무처 규정이 강화됨으로써 이 교포증으로도 유엔본부 출입이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규정이 강화된 시점이 대략 1년 전이라고 하니 현 안토니오 구테헤스 사무총장 취임 이후의 일이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민진당 정부가 출범한 이래 중국의 압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대만의 입지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지금의 추세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이 세계 148개 국가 또는 지역과 비자면제 협정을 맺음으로써 대만 국민들이 자기네 여권으로 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유엔본부에서는 여권의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 어색하다. 유엔본부에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지만 가입국에서 제외됐다는 이유로 괄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 평화를 지키는 총본산이라고 하면서도 어차피 회원국 위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바티칸과 팔레스타인의 경우 정식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유엔에 옵서버로 참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만인들에 대해 내부 관람에서부터 제외시킨 조치는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비록 ‘타이베이 차이니스’라는 이름을 내걸망정 올림픽에도 참가하고 지난해에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도 개최한 대만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대만이 유엔에 항의를 전달할 적당한 채널이 없다는 점이다. 대만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이 뉴욕주재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에 즉각 이러한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적당한 채널을 통하거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항의를 전달하라”고 지시를 내린 데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대만은 차이 총통 취임 이래 지금껏 2년여가 지나는 동안 이미 상투메 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엘살바도르 등 5개국이 수교국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는 등 심각한 외교력의 열세를 겪고 있는 중이다. 남태평양의 팔라우도 조만간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바티칸과의 관계다. 중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진전됨으로써 대만과의 관계 단절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대만 천젠런(陳建仁) 부총통이 최근 바오로 6세 전 교황의 시성식에 참석차 바티칸을 방문한 기회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타이베이를 방문토록 초청했으나 바티칸이 명백한 거부 의사를 표명한 데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교황이 북한 방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는 보도와 거의 동시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대조를 이룬다.

이런 처지에서 대만의 국제무대 활동은 자꾸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내달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인터폴 총회에 참가를 희망했다가 거절당한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옵저버 참가 자격을 두고도 몇 해째 계속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평화를 위한다면서도 차별에 앞장서는 유엔이나 바티칸의 조치부터 야속하다 할 것인가.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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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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