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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홍수(洪水)'...‘위원회 없애기 위원회’를 아시나요?
위원회 '홍수(洪水)'...‘위원회 없애기 위원회’를 아시나요?
  • 권의종
  • 승인 2018.10.2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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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같잖은 위원회는 없애야 하고 새로 만들어도 안 돼...위원회다운 위원회만 운용하는 게 옳아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웃을 일이 없었던 요즘. 지인이 보내온 글을 읽고 ‘빵 터지고’ 말았다. 폭소가 아니라 실소(失笑)였다. 글쓴이의 느낌을 살리고자 원문 내용을 가급적 그대로 옮겨본다. “‘위원회 없애기 위원회’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교육부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미래교육위원회’와 ‘국가교육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는 정책 발표에, 어떤 사람이 ‘교육부는 위원회를 없애는 일부터 해야 한다’면서 했다고 합니다. 시의적절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라 몇 번을 곰씹어봤습니다.”

“교육부에는 법정 위원회 31개, 비법정 위원회 25개가 있는데다, 위원회에는 분과위원회를 둔 경우도 적지 않답니다. 법정 위원회만 따져도 소속 위원이 668명이나 되지만, 위원회의 연평균 회의 실적은 4.5회에 불과합니다. 아예 회의가 없었던 경우도 적지 않으니 위원회를 정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요. 세상에, 무슨 결과를 내놓은 게 실적이 아니라 회의를 개최한 횟수가 실적이라는 말에, 또 위원회 만드는 것을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말에 분노가 치밀 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위원회가 그냥 생기고 거저 열립니까, 교통비와 식사비에 국민들이 낸 세금이 적지 않게 들어가잖아요. 위원회의 정리는 불가피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뭔가 목적을 갖고 만들었기 때문에 없애려면 그에 반대되는 명분을 내야 하는데. 그 많은 위원회가 왜 생겼고, 어떤 일을 해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는 취임 한 달도 안 된 장관이 알 리가 없고, 실무진도 파악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마저도 당장은 그렇게 못하겠네요. ‘위원회 없애기 위원회’를 만들려면 ‘채용 판단 위원회’와 '위원회 설치 위원회'부터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 ‘위원회 없애기 위원회’가 좋은 대책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이 위원회마저 같은 패턴으로 진행될 게 뻔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내용을 읽노라면 위원회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예사치 않음을 직감케 된다.

“위원회 개최횟수가 실적?”... “위원회 만드는 걸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말에 국민 분노 치밀어”

정부나 공공부문의 위원회가 홍수를 이룬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전수조사 없이는 위원회 총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오직 신(神)만이 알 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만하다. 실제로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은 각종 위원회에 참석하느라 일상이 매우 분주하다. 정작 본업은 틈을 내 짬짬이 처리해야 할 지경이다.

기실 알고 보면 위원회만큼 유용한 제도가 없다. 순기능이 크고 장점이 많다. 위원회 제도는 의사결정의 책임과 권한을 분담하거나 견제하기 위한 선한 취지에서 출발했다. 공동의 사고를 통해 좀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안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청취함으로써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운영이 문제였다. 좋은 제도가 나쁜 의도로 활용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역기능이 불거지고 단점만 부각된 꼴이었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 보다는 결정에 대한 책임의 회피. 차단, 분산의 수단으로 악용된 측면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졌다. 일이 잘못되어도 처벌할 대상이 모호하다. 의사결정 책임자가 누구인지 파악이 힘들다. 그렇다고 위원회 구성원 모두를 처벌할 수도 없다. 유야무야 흐지부지 넘어갈 공산이 크다.

위원회 운영도 형식에 흐르기 쉽다. 안건이 생길 때나 절차상 필요에 따라 열리다보니 요식행위에 그치곤 한다. 충분한 이해와 토론을 통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안 마련이 힘들다. 위원회가 소집되어도 위원들은 사안과 쟁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료는 회의에 참석해서야 접하곤 한다. 회의 중에 허겁지겁 자료를 살피다보니 활발한 의견 개진이나 토론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책임과 권한의 분담·견제를 위한 위원회 제도... 책임 전가·회피·차단 수단으로 악용하는 게  문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위원들은 거수기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시간상 제약도 한계 요인이다. 통상 한두 시간 회의가 진행되는데, 먼저 실무자가 자료를 이삼십 분 가량 설명한다. 십여 명이 참석한 위원회라면 한 사람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내외다. 입심 좋거나 고집 센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발언할 기회조차 얻기 내기 힘들다.

말을 아끼는 게 상책이라는 잘못된 믿음도 퍼져있다. 발언시간이 길어지면 눈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눈총을 받거나 핀잔을 듣기 일쑤다.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면 말꼬리를 잡힐 염려도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주최 측 분위기에 맞춰주는 게 상식이자 순리로 통한다. 운영방식이 이렇다보니 회의를 오래 하거나 여러 차례 한다고 해서 뾰족한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회의(會議)라는 단어는 모을 회(會), 말씀 언(言), 옳을 의(義)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말을 모으는 과정을 더 자주 더 깊이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런 깊은 의미를 가진 회의에서 참석자들 대다수가 함구하고 있다면 무슨 효과가 얼마나 있겠는가. 뜻있는 위원이라면 자괴감만 커질 게 뻔하다. '구태여 참석할 필요가 있었나?“, ”내가 참석해서 뭘 했지?“ 등의 탄식과 아쉬움만 키울 따름이다.

요즘 나랏일이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럴수록 위원회에 대한 운영의 묘(妙)가 긴요하다. 소중한 지혜와 지식, 비싼 노력과 비용, 값진 시간과 공간이 투여되는 만큼 제도의 좋은 취지를 살려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위원회 같잖은 위원회는 당장 없애야 하고, 새로 만들어져서도 안 된다. 위원회다운 위원회만 살려 제대로 운용하는 게 옳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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