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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율과 경제에 주는 부담과 상처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율과 경제에 주는 부담과 상처
  • 권의종
  • 승인 2018.10.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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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築城)과 수성(守城)...새로 시작하는 창업도 좋지만, 기술·노하우 무장된 기존 기업 지켜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요즘 사장은 사장도 아니다. 사장 노릇하기가 예전만 못하다. 일을 시키려 해도 직원들 눈치부터 살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직원을 나무라기도 조심스럽다. 최장 근로시간이나 최저임금 같은 사소한 문제로 형사고발과 감옥행도 각오해야 할 판이다. 기업 밖이라고 사정이 다를 리 없다. 항시 거래처에 선처를 호소해야 하고 자식 또래의 고객사 실무자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오나가나 힘들고 서글픈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의 일상이다.

정작 말 못할 걱정은 따로 있다. 사업할 맛이 부쩍 떨어진다. 힘이 빠지고 사기는 바닥이다. 솔직히 출근하기 싫은 날도 많다. 기업을 내다 팔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럴만한 이유야 한 둘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을 자세히 알고 나서부터 사업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기업 대물림에 적용되는 상속세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간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고생한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계속 보장하고, 회사를 키워 자식에게라도 물려주고 싶은 기대감에 힘입은 바 크다. 있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인지상정 아닌가. 이런 이슈로 성직자들까지 세상을 어지럽히는 판국에, 유독 기업인 상속에 집중되는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럽고 억울하다. 사장도 다 같은 사람이다.

사업을 접고 싶다는 사장들의 볼멘소리를 그냥 해보는 푸념이나 엄살로 흘려들어서는 곤란하다. 그러기에는 당면한 현실이 심상치 않다. 최고경영자의 의욕이나 사기가 떨어지면 회사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순식간의 일이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을 팔거나 해외로 이전할 경우 기업 만의 손해에 그치지 않는다. 국부 유출이나 성장잠재력 저하로 국가경제에 파급되는 악영향이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자칫 방심이 근심을 부를 수 있다.

사업할 맛 안 나는 기업주들...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주된 요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케 된다. 가업승계 시 부담하는 상속세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직계비속에게 적용되는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한국이 50%로 최상위권이다. 일본의 55%에 이어 2번째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속 형태인 '주식으로 직계비속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경우 최대주주 주식 할증(최대 30%)이 적용되어 실제 부담하는 최고세율은 65%로 높아진다. 일본의 55%에 비해서도 고율이다.

현실적으로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상속세 감당이 버겁다. 예비된 자금이 없다보니 회사 주식을 대거 팔아야 한다. 주식으로라도 물납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정부가 주요 주주 내지는 최대 주주로 부상한다. 상속되는 순간 사기업에서 ‘공기업’ 내지는 ‘국영 기업’으로 간판이 바뀌게 된다. 기껏 힘들게 기업을 키워봤자 결국은 정부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기업인이 몸 던져 사업하고 싶을까. 절대 생겨서는 안 될 일이 현실화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해외에서는 직계비속 기업승계 시에는 일반 상속세율보다 낮은 세율로 내려주거나 큰 폭의 공제 혜택을 부여,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35개국 중 30개국은 직계비속 기업승계 시 상속세를 감면하고 있다. 17개국에서는 상속세가 없고, 13개국은 세율 인하 혹은 큰 폭의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는 게 경총의 설명이다.

기업 승계, 단지 ‘부의 대물림’, ‘불로소득’의 편향된 시각으로 봐선 안 돼

특히 독일, 벨기에, 프랑스는 가족에게 기업을 승계할 경우 세율 인하뿐만 아니라 큰 폭의 공제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승계 시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이 기존 50%에서 30%로 인하되며, 큰 폭의 공제 혜택까지 적용되면 실제 부담하는 최고세율은 4.5%까지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기업승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 건 아니다. 중소ㆍ중견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미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도입하여 운용 중이다. 다만 외국에 비해 요건이 까다롭고 대상도 제한되어 활용도가 낮은 게 흠이다. 가업상속공제의 상한을 1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리고 대상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에까지 확대했다. 그럼에도 사업영위기간 10년 이상, 10년간 대표직 및 지분 유지 같은 까다로운 사전ㆍ사후적 요건으로 활용이 저조하다. 이에 비해 해외 국가들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요건이 간소화되어 있고 공제 상한도 없어 상속세 부담이 작다.

우리나라도 기업승계 시 해외보다 불리하게 적용되는 상속세율을 과감하게 하향 조정해야 한다. 기존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을 50% 이하로 대폭 낮추고, 가업상속공제의 요건 완화와 대상 확대 등의 세제 개선으로 원활한 기업승계를 뒷받침 할 필요가 있다. 비단 기업을 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경제 발전에 긴요한 사안이기에 기업승계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다.

선진국에서 다수의 강소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장수기업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배경과 정부의 강력한 세제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기업 승계를 단지 ‘부의 대물림’, ‘불로소득’ 이라는 편향된 시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다. 기업의 존속, 노하우 체화, 핵심 기술 전수, 일자리 창출, 기업가 정신 고양 등 긍정적 관점에서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툴게 새로 시작하는 창업도 좋지만, 기술과 노하우로 무장된 기존 기업을 지키는 일은 더 중요하다. 수성(守城)이 축성(築城)보다 쉽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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