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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지지자인가, 훼방꾼인가?
북한 비핵화 지지자인가, 훼방꾼인가?
  • 이도선
  • 승인 2018.11.0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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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칼럼] 한미 관계가 전 같지 않다. 양국의 마찰이 부쩍 늘어나면서 이러다 우려하던 사태, 즉 70년 혈맹의 붕괴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였으니 국제사회가 화답할 차례라는 문재인 정부의 논리에 미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뉴욕 회동에 앞서 ‘선(先) 비핵화 - 후(後) 제재 완화’를 재확인했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이뤄졌다는 쪽과 어림없는 소리라는 쪽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남북 관계 과속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이 모든 비난을 감수하며 남북 관계에 매달리는 것은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선도해 평화 체제 구축을 앞당길 것이라는 계산에서일 것이다. 그 덕분에 남북은 올 들어 해빙 조짐이 완연하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 진작부터 밀담이 오갔는지는 모르나 표면적으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보낸 대남 유화 손짓이 물꼬를 텄다. 남북 관계는 이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전격 참가와 세 차례의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파죽지세다.

하지만 문 대통령 말대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이란 희망이 만들어졌는지는 의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주변 4강의 이해와 겹겹이 얽혀 있고 특히 미국을 배제하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과 대륙간탄도탄(ICBM)을 한 손에 거머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남북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계속 삐거덕대며 악화일로를 치닫는 한미 관계가 우려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지난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북핵 신고를 미루자”고 제안했다가 묵살당한 데에서도 양국의 불협화음은 쉽게 감지된다. 강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5.24 대북 제재 해제를 언급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주권침해성 발언을 여러 번 했지만 우리 정부는 아무 반박도 못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국정감사에서 “미국과 이견이 있다”고 시인했지만 곳곳에서 남북의 합의가 미국의 제지로 허공에 뜬 상태다.

미국이 지난달 말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서울로 보내 한미 워킹그룹을 발족시킨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미 우리 정부를 제치고 국내 기업과 은행들을 직접 접촉해 대북 제재 위반을 경고한 뒤끝이다. 기업과 은행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에 걸렸다간 살아남기 어렵다. 청와대는 워킹그룹이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논의 창구’라며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미국이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협력”을 강조한 것을 보면 ‘남북 교류 감시 창구’일 공산이 크다.

정부가 “빈틈없는 한미 공조”를 아무리 외쳐도 양국 관계의 이상 기류를 덮기엔 역부족이다. 트럼프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안 믿는 정황이 점점 또렷해지는 추세다. 불신은 한국 정부가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가 ‘김정은의 대변인’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지난달 유럽 순방 당시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의 정상들과 만나서도 같은 주장을 폈으나 한결같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CVID)’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가 필요하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이쯤 되면 한국 정부가 북핵 폐기를 관철하려는 건지, 아니면 교묘하게 훼방 놓는 건지 헷갈린다. 미국도 한국 정부가 누구 편인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게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간 미국의 보복을 감당할 수 없다”고 문 대통령에게 실토한 게 사실이라면 국제사회의 강력한 공조야말로 비핵화를 담보하는 유일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도 따지고 보면 김 위원장이 절체절명의 궁지에서 겨우 찾아낸 탈출구인 셈이다. 이 결정적 대목에서 ‘운전자론’ 운운하며 김 위원장 숨통을 터 줬으니 다 된 죽에 코 빠뜨린 격이다.

북한은 그런데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남한 기업총수들을 윽박지르고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 맡기면 안 된다”며 여당 정책위 의장을 면박하는 등 적반하장이다. 이런 국가적 모멸조차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받은 엄청난 환대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는 뚱딴지 변명에 급급한 이 정부는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혔길래 이리도 비굴하단 말인가. 남-남 갈등은 극심해지고 한미 동맹이 금 가는 소리도 요란하니 북한은 이제 살판났다. 성공의 상징인 대한민국이 실패 국가의 대표인 북한에 먹힐지 모른다는 나라 안팎의 걱정이 제발 기우이길 빌 뿐이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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