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마저 보험료로 충당?...국민연금판 '가렴주구(苛斂誅求)'
월급마저 보험료로 충당?...국민연금판 '가렴주구(苛斂誅求)'
  • 김명서
  • 승인 2018.11.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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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임직원 월급을 가입자들 낸 보험료로 줘...운영비 부담은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김명서 칼럼] 국민연금공단 임직원 월급을 연금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준다는 얘기를 얼마 전 언론계 지인에게서 들었다. 그는 “빼 쓸 데가 따로 있지…”라고 혀를 차면서 “1면 톱으로 '조져야(비판해야)' 하는데 제대로 보도한 신문이 없다”고 씁쓰레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사실이었다. 지난 번 국정감사에 즈음해 몇 개 매체가 보도한 내막은 이렇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공단 운영비는 4776억 원. 이 가운데 97.9%인 4676억원을 국민이 낸 보험료로 충당하고 있다. 정부는 100억원만 정액으로 부담한다. 지분으로 치면 2.1%. 그런데도 감 놔라 배 놔라, 시어머니처럼 간섭한다. 수뇌부 인사도 입맛대로다. 몇 년 새 이어진 ‘낙하산 인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본래는 이렇지 않았다. 1988년 국민연금 출범할 때부터 1991년까지는 운영비의 100%를 국가가 지원했다. 그러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는 50%, 2008년 이후에는 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100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지난 26년 동안 공단으로 들어간 운영비는 5조831억원.

명분은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혜택을 본 사람이 소요경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낸 돈보다 받은 돈이 많으니 ‘혜택’이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월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이라야 고작 38만원 남짓. 그야말로 ‘용돈’ 수준이니 ‘혜택’이라는 말 자체가 억지나 다름없다.

경기도가 시행에 들어간 ‘청년국민연금’도 문제...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오나

지난 해 기준 공단 임직원은 5천6백여명으로, 평균 연봉은 6천7백여만 원.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다. 그런데도 노후 대비로 알뜰살뜰 부어온 돈에서 월급을 떼어가? 가입자가 이 사실을 안다면 그 심정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알바생 월급을 본인 수입보다 높게 올려줘야 하는 편의점 주인의 쓰라린 마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공단이 월급 값을 제대로 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없고 ‘뚜껑’ 열리게 만드는 소리만 들린다.

경기도가 시행에 착수한 이른바 ‘청년국민연금’ 문제도 그 중 하나다. 국민연금 가입자격이 생기는 만 18세 청년 주민의 첫 보험료 9만원을 도에서 대신 내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해당자들은 이후 보험료를 안 내더라도 수입이 생긴 다음에 밀린 보험료를 납부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미납기간도 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그 만큼 수령액이 많아진다. 대상은 해마다 16만명. 그런데 늘어난 수령액은 어디서 나오나.

전 국민이 낸 보험료에서 지불해야 한다. 다른 지자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전라남도는 희망자 4500명을 대상으로 첫 보험료를 지원하겠다고 이미 발표한 터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국민연금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앞 뒤 가리지 않고 생색만 내려는 전형적인 ‘정치 포퓰리즘’ 이라는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희한한 것은 당사자인 복지부나 국민연금공단의 태도다. 공식 입장 표명 하나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안 자체가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는 원칙과 상식의 문제인데도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미 옳고 그름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는, 난이도 최하등급의 OX 문제인데도 그렇다.

상황이 이러니 신뢰는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외풍까지 곁들인 난이도 높은 사안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공단이 주인 대접 하려면 진정한 ‘국민 눈높이’ 제대로 헤아려 제 목소리 내 줘야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11월 초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미 따끔하게 침을 한 방 맞은 상태다. 연금보험료 두 자리 수 인상을 골자로 한 연금제도 개편안을 보고했다가 퇴짜를 맞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검토를 지시했다.

보고를 앞두고 그 내용이 언론에 누설됐다는 이유로 복지부 담당 국장과 과장이 청와대에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조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복지부로서는 바짝 긴장한 자세로 ‘눈높이’를 살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그 것이 ‘국민 눈높이’인지, ‘청와대 눈높이’인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부터 TV에는 국민연금 광고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 만큼 국민연금공단의 처지가 어려워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광고는 “국민이 주인인 연금, 국민연금”이라는 코멘트로 끝을 맺는다. 주인으로 잘 받들어 모시겠다는 다짐의 뜻이겠지만, 주인답게 섭섭한 점이 있더라도 참고 넘어가 달라는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참는 데는 이골이 났기에 공단이 국민 심기를 걱정할 일은 없을 듯 싶다. 주인인데도, 갑인데도, 시혜의 대상인 양, 신세를 지는 을의 처지처럼 지낸 세월이 하루 이틀이었나. 그래도 주인 대접을 하려면 진정한 ‘국민 눈높이’를 제대로 헤아려 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공단 운영비만 생각하면 계속 속은 불편할 것 같다. 월급마저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몰염치한 일이다. 국민연금 월 평균 수령액이 38만원 남짓이다. 38만원… 그런데도 월급을 빼내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현대판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따로 없다. 운영비 부담은 당연히 정부가 져야 한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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