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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조국...'2003 호시우행(虎視牛行)'과 '2018 호시우보(虎視牛步)'
문재인과 조국...'2003 호시우행(虎視牛行)'과 '2018 호시우보(虎視牛步)'
  • 김명서
  • 승인 2018.12.0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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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수석 메시지, 문 대통령 하고 싶은 말 대신 한 듯...이례적인 경제 성적표 반성 토로 주목

[김명서 칼럼] ‘호시우보’(虎視牛步). 요즘 뉴스의 중심인물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달 25일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의 주제어다. ‘호랑이처럼 살피고 소처럼 걷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우보만리’(牛步萬里·소걸음으로 만리를 간다)‘를 덧붙였다. 소처럼 뚜벅뚜벅 가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노정 갈등이었던 것 같다. 민주노총이 탄력적 근로제 확대 등에 항의해 총파업을 비롯한 집단행동을 본격화하는 상황이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진보 진영의 ‘실력자’까지 동조하면서 청와대로서는 고심이 깊어갈 수 밖에 없었다.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났지만, 경제 성장동력 강화 및 소득 양극화 해결에 부족함이 많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나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의 국정 성과를 요약해 소개한 뒤 “문재인 정부는 한 번에 ‘비약’은 못할지라도 한 걸을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호시우보’와 ‘우보만리’를 언급했다. 메시지 해석에서 복잡할 여지는 없다. 다만 본인 ‘전공 분야’도 아닌 경제 쪽 성적표를 반성한 점이 이채롭고, 진보 진영에 대해 이해와 협조를 주문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글에 앞서 조 수석은 페이스북에 또 다른 글을 올려 “노동문제와 관련해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대정부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상황의 기시감이 든다”고 밝혔다.

노무현정부 초기 기본스탠스는 ‘호시우행’...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승부수

기시감(旣視感)은 예전에 보았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미. 조 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기 상황이 기시감을 갖게 한다고 지목했지만, 기실 ‘호시우보’ 자체가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같은 의미인 ‘호시우행(虎視牛行)’은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국정운영의 기본 스탠스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03년 4월 18일 새벽 ‘호시우행’의 뜻을 담은 편지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노 대통령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나를 흔드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누구 편도 아니다. 소처럼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나를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고 썼다. 불편한 심경이 행간 곳곳에 두루 담겨 있었다.

당시는 정권 출범 초기인지라 국정운영에 활력과 탄력이 넘쳐야 하는 시기.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 사건 수사가 큰 부담이 됐다. 야권의 공세가 치열한 가운데 여권 내부에서도 갈등과 분란의 양태가 이어졌다.

노조 문제도 악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철도 민영화’와 관련해 철도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은 노 대통령이 ‘호시우행’ 편지를 올린 다음 날 정부가 이를 철회함에 따라 가까스로 봉합됐다. 하지만 얼마 후에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갔고, 민주노총이 이를 주도하면서 노정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그 무렵 노동계와의 협상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스트레스에 치아를 10개나 뽑기도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호시우행’은 소신껏 밀고 가겠다는 ‘독야청청’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반발도 컸고,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그 해 1분기에 60%를 넘던 국정지지율은 4분기에는 22%로 떨어졌다.

2018년 ‘호시우보’의 승부수는? 경제 난국 타개 위한 강력한 ‘한 방’ 필요

호시우행, 호시우보는 우두머리의 언어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판단하되,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하겠다는 것은 아랫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인 조 수석에 대해 비판이 거센 것은 당연하다. 야당에서는 ‘군군신신(君君臣臣)’, 즉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라는 힐난조 논평이 나오기도 했다.

조 수석도 본인이 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사후의 비판적 여론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임종석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의 처신에 대한 여론도 곱지가 않은 터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 조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총대’를 멨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듯 싶다. 문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조 수석이 대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 수석의 얘기를 문 대통령이 직접 했더라면 그 파장은 무척 컸을 것이다. 특히 “경제 성장 동력 강화 및 소득 양극화 해결에 부족함이 많았다”고 토로한 대목은 다양한 해석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03년 ‘호시우행’의 승부수는 그 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새천년민주당을 떠나 딴 살림을 차린 것이다. 2004년 초 대통령 탄핵사태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그 해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대반전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2018년 ‘호시우보’의 승부수는? 그런 게 있다면 총체적 위기를 맞은 경제 쪽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승부수가 호랑이의 ‘한 방’처럼 결정타가 될지는 그 다음 문제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정확하고, 예리하고, 강력한 ‘한 방’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면 꾸준히, 견고하게 밀고 가야 한다. 그 ‘한 방’이 궁금하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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