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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유연성과 합리성...여론 수렴하고 반대의견 포용해야
문재인 정부의 유연성과 합리성...여론 수렴하고 반대의견 포용해야
  • 권의종
  • 승인 2018.12.0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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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의 ‘입 큰 정부’ vs 경청의 ‘귀 큰 정부’ 간 국민의 선택은?..."정책 변경은 실패의 자인도, 무능의 소치도 아니다"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에서일까. 한동안 난이도 논란의 중심이었던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31번 문제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뒤늦게 시도했다. 시간이 흘러도 충격의 여진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 진정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문제와 지문의 일부는 이러했다. “31. <보기>를 참고할 때, [A]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구는 무한히 작은 부피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부피 요소들이 빈틈없이 한 겹으로 배열되어 구 껍질을 이루고, 그런 구 껍질 들이 구의 중심 O 주위에 반지름을 달리하며 양파처럼 겹겹이 싸여 구를 이룬다. 이때 부피 요소는 그것의 부피와 밀도를 곱한 값을 질량으로 갖는 질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지문 바로 아래에 있는 5개 답안 중 틀린 것을 찾는 문제였다.

부족한 실력에도 용기를 내 풀어보고자 했다. 내용도 쉽지 않았지만 무얼 묻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질문에 나오는 [A]가 지문에서 안 보였다. 한참을 해매서야 ‘문제 27~32’ 관련한 지문 중 4번 째 문단 옆에 있는 걸 찾을 수 있었다. 문단이 무려 8개로 A4용지 두 쪽에 상당하는 분량이었다. 기가 질렸다. 이런 지문을 언제 다 읽고 어떻게 풀 수 있단 말인가. 16쪽에 이르는 이런 유의 문제들을 80분에 다 읽고 풀어야 한다는 게 황당했다.

과학 시험인지 국어 시험인지 분간키 어려웠다는 수험생 불만이 이해될 만했다. ‘국어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점마저 들게 했다. 어떤 과목이든 사회에 나와 잘 활용하려고 학습할 터인데, 이런 식의 문제 풀기는 사회생활에 도움이 안 되어 보였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의 어학 공부에서 국어 수능만 왜 ’읽기‘ 학습에만 국한하는지. 듣기평가를 위해 항공기 이착륙까지 막으며 요란 떠는 영어수능과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읽기’만 고집하는 국어 수능...듣기 평가 위해 항공기 이착륙까지 막으며 요란 떠는 영어 수능과도 대조적

듣기도 중요하다. 글을 잘못 읽어 생기는 애로 못지않게 말을 잘못 듣거나 듣지 않아 생기는 문제 또한 적지 않다. 기업 경영에서도 ‘듣기’의 중요성은 간과되기 어렵다. 첨단 기술, 혁신 제품이라도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게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못 넘는다. 원리 자체가 새롭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이나 수단은 기존의 것을 동원하게 마련이다.

회사 안팎의 지식이나 정보, 경험, 노하우 활용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다보니 관련된 정보, 데이터, 특허, 보고서를 열심히 찾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성공한 결과와 과정만 쓰여 있어 디테일까지 파악키 힘들다. 결과에 이르기까지 겪게 되는 시행착오, 실수, 실패는 나와 있지도 않다. 관련자들끼리 자주 만나 많이 이야기하고 잘 들어야 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런 걸 알고 일을 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을 들먹이며 많은 것을 기록하게 하고, 비싼 서버를 두고 관리를 해보지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기록을 않거나 기록을 해도 제대로 하지 못해 찾아 읽어도 이해가 쉽지 않다. 직접 만나 대화를 해야 깊은 것까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쓰고 말하고 듣는 게 이처럼 중요하지만 우리의 교육 과정에는 이런 훈련이 없다. 듣기 교육이 특히 빈약하다.

듣기에 취약한 현실은 자기주장만 할 뿐, 남의 말은 듣지 않으려는 문화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특히 정부쪽 사람들이 그래 보인다. 탈 원전이 그렇고,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최장 근로시간 이슈에도 의견들이 홍수를 이루나 경청의 기색은 뚜렷치 않다. 되레 귀에 거슬리는 얘기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 쪽, 자기주장만 하고 남의 말 안 듣는 문화적 특성이 문제...佛 마크롱 정부 정책의 유연성 참고할 만

반대 목소리가 우리에게만 있을까. 동서고금 모든 나라가 직면하는 공통 사항이다. 민권이 신장된 국가일 수록 반정부, 반정책의 목소리는 크고 거칠다. 엊그제 벌어진 프랑스 ‘부유세 부활’ 논쟁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노란 조끼’ 집회가 극도의 폭력으로 치 닫자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유류세 인상을 연기한 데 이어 부유세 부활도 검토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부유세를 대체한 부동산자산세(IFI)에 대해 “우리가 취한 조치들이 별다른 효과도 없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바꿀 것”이라는 급한 입장 선회가 있었다. 지난해 부유층과 외국 투자가들의 투자 촉진을 명목으로 기존의 부유세를 부동산자산세로 축소 개편하면서 사실상 폐지한 부유세였다. 하지만 “돈이 중소기업의 혁신과 고용 등에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효과도 없다고 판단되면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태도를 돌연 바꾸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성난 여론에 정책을 줄줄이 U턴 시키는 프랑스 정부의 태도 변화를 정부실패나 정책실패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혁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연성과 합리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현명한 현실 인식일 수 있다. 정책 전환은 실패의 자인도 무능의 소치도 아니다. 여론 수렴과 반대의견 포용은 민주정부가 구비할 필수 덕목이자 준수할 기본 책무에 속한다.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말에도 보석같이 값진 정보가 숨어있을 수 있다. 들으려하다 보면 들리게 마련이다. 듣지 않으려다보니 안 들리는 것이다. 자기 말 잘하는 ‘입 큰 정부’와 남의 잘 들어주는 ‘귀 큰 정부’. 이 둘 중 국민들은 과연 어느 쪽을 택할까. 당연히 후자다. 국민의 선택만큼 두렵고 떨리는 존재도 없다. 군말 없이 따르는 게 상책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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