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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신재민 구하기
김태우·신재민 구하기
  • 이도선
  • 승인 2019.01.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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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칼럼] 김태우 수사관(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과연 이들의 폭로대로 야당 정치인을 비롯한 민간인 사찰,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운용, 부당한 국채 발행 압력 등이 자행됐다면 당연히 정권 탄핵감이다. 그런데도 사안의 본질은 외면하고 공익제보자 여부나 따지는 곁가지에 매몰돼 있으니 어이없다. 나라를 두 동강 낸 진영논리가 또 맹위를 떨치는 탓이다. 좌파 내부에서 엇갈린 주장들이 미약하게나마 새어 나오는 게 조금 이채롭다고나 할까.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불리한 제보에 인신공격으로 대응하거나 진영논리에 따라 부정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며 두 사람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청와대와 여당을 질타했다. 이 이사장은 27년 전 14대 총선 때 군 부재자투표 부정 실태를 현역 중위 신분으로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킨 인물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공익제보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내부자 폭로의 대부’ 격인 그는 비리행위자는 놔두고 공익제보자들만 처벌해 사회적 낙오자로 전락시키는 풍토를 개탄했다.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도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을 비난하고 “개인적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이므로 제2, 제3의 신재민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제2, 제3의 신재민을 막겠다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들이댄 기재부 입장과는 정반대다. 참여연대조차 “내부 고발을 가로막는 입막음”이라고 거들었다. 비록 하루 만에 신 전 사무관은 공익제보자가 아니라고 한 발 빼며 정권 우호 세력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긴 했지만.

해를 넘긴 논란은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자칫 흐지부지될 판이다. 문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김 수사관의 권한남용 여부가 수사로 가려질 것이라고 말하고 신 전 사무관은 “자기가 보는 좁은 세계로 판단한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개인의 일탈로 매도하며 사건을 조기 종결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대목이다. 공익제보자 보호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집권 후에는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시킨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수사·재판 지침을 하달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만도 하다.

김 수사관은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겠느냐”며 공포심을 호소했다. 대검찰청 징계위원회가 바로 다음 날 김 수사관 해임을 의결한 것을 보면 괜한 엄살만도 아니다. 그와 함께 업자에게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로 검찰로 원대 복귀됐으나 서면 경고에 그친 전 특감반 동료 2명과는 딴판이다. 이미 청와대에 의해 고발된 김 수사관은 직속상관이던 특감반장과 반부패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맞고발했다. 행정소송 등으로 해임 결의를 무효화하겠다며 여차하면 추가 폭로도 불사할 기세다. 김 수사관 혼자 1년 반 동안 직권남용을 거듭하다 제재를 받곤 했다는 청와대 해명보다는 감찰 활동 대부분이 윗선 지시로 이뤄졌고 독자적으로 수집한 첩보도 윗선을 거쳐 다양하게 활용됐다는 김 수사관의 ‘고백’에 설득력이 더 실리는 분위기다.

‘일개 사무관’ 운운하며 ‘좁은 세계’로 몰아넣은 가벼움도 동의할 수 없다. 사무관보다 실무를 많이 아는 고위 공무원은 드물다. 모르긴 몰라도 국채 문제라면 문 대통령이 신 전 사무관에게 한참 배워야 할 처지다. 국채 발행이나 상환 계획 번복이 재정 운용상 필요 때문인지, 전 정권을 겨냥한 국가채무율 조절 때문인지도 분간 못한대서야 제대로 된 사무관이 아니다. 대통령보고 정책의 최종 결정을 내리라고 국민이 선거했다지만 어느 국민이 전 정권 모함이나 하라고 대통령을 뽑겠는가.

김 수사관과 신 전 사무관은 매우 곤궁한 신세다. 실직과 투옥 위기에 몰리고 심리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집권당 대표는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고 의원들은 ‘양아치’ ‘꼴뚜기’ 등의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때 고영태를 의인으로 떠받들던 시절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두 폭로자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더 이상 선진사회가 아니다. 야권이 특검법과 공청회를 추진하고 일부 변호사도 돕겠다고 나섰으나 그 정도론 부족하다. 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를 가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요긴하다. IMF 사태 때 인기 있었던 외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국가가 ‘김태우·신재민 구하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적폐 청산을 부르짖는 이 정권에서 이런 당연한 요구가 거부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이젠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후원단체를 만들어 유용한 정보를 공유·전파하고 기금도 조성해야 한다. 두 사람을 공격하는 이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것도 필요하다. 공익제보자 보호와 불이익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오만과 독선의 정권을 단죄하는 일이라면 크건 작건 너나없이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가 잘하고 못하고는 국민의 자질에 달렸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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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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