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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조급증 ‘졸속 행정’ 불렀나?
‘실적’ 조급증 ‘졸속 행정’ 불렀나?
  • 김명서
  • 승인 2019.02.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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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CES' 허점 투성이...개최 열흘 전 해당 기업에 통보...무더기 불참 속 기대 이하 평가

 

[김명서 칼럼]집권 3년차의 조급증 탓으로 봐야 하나. 청와대의 새해 목표는 성과 창출’. 무슨 일이 있어도,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다. 그런데 간간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뒤뚱대며 잡소리를 내고 있다. 한쪽은 숨돌릴 틈 없이 다그치고, 다른 쪽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시늉을 내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한쪽은 청와대, 다른 쪽은 일선 행정기관이다. 그 결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허점 투성이. ‘졸속행정날림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한국 전자IT산업 융합 전시회도 그 중에 하나.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나흘 동안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에 참가한 국내 기업들의 전시 제품들을 소개하는 CES 축소판 행사다. 그래서 한국판 CES’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가 전시회 개최를 최종 결정한 것이 지난 21. 행사 개최를 불과 열흘 앞두고 삼성, LG 등 해당 기업들에게 참가 요청을 시작했다. 당초 보도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결정적인 계기. “문 대통령이 미국에서 열렸던 CES에 큰 관심을 가졌고, 우리도 최신 트렌드를 검토하고 업계 요구 사항도 들어보자는 취지로 한국형 CES 기획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가 나가자 정부쪽 설명은 바뀌었다. CES에 참석했던 기업들이 총리실에 요청해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쨌든 일정을 번갯불에 콩 볶듯이 잡은 것은 정부다. 해당 기업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실상 1주일도 안 됐다. 빠듯한 기간 동안 전시 기획부터 세팅까지 마무리해야 하니 낮밤으로 매달리는 비상 상황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선박에 선적했던 전시품을 부랴부랴 내려 비행기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고 한다. 급박한 일정 때문에 불참 기업도 속출했다. 미국 CES에 참가했던 317개 기업 가운데 40개 기업만이 동대문 행사에 동참했다.

급박하게 치르려다보니 전시회 장소 선정부터가 부적절했다. 행사장인 DDP 알림 1관의 크기는 대략 905. 미국 CES 당시 삼성전자 한 곳이 꾸렸던 부스가 1021평이었으니, 그보다도 116평가량 좁았다. 그러다보니 행사장 분위기도 옹색할 수밖에 없었다. OLED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로봇과 가상현실(VR) 이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던 미국 CES와는 사뭇 달랐다. 미국에서 인기를 모은 일부 제품들은 전시되지 않았다. 당연히 관람객들의 평가도 기대 이하 또는 실망이라는 쪽이 다수.

행사를 서두른 이유에 대한 정부 관계자는 학생들의 방학 일정과 설 명절 연휴, 전시 가능한 공간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방학 일정을 고려했다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관람케 하겠다는 뜻. 하지만 불과 900평 남짓한 공간에서, 겨우 3일 동안 행사를 치르면서 학생 관람을 고려했다는 것 자체가 억지다. CES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지만, CES 분위기를 갉아먹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라는 얘기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을 판이다.

미세먼지 관련한 인공강우 실험도 과학 아닌 요행에 기대

지난 25일 서해상에서 실시한 인공강우 실험도 무분별한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역시 직접적인 계기는 문 대통령의 발언. 문 대통령은 22일 국무회의에서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인공강우, 고압분사, 물청소, 공기필터 정화, 집진기 설치 등 새로운 방안들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23일 기상청과 환경부는 인공강우가 미세먼지 저감에 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인공강우 실험을 25일에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미 충분히 준비를 마친 양, 그리고 의미 있는 성과라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보도자료를 냈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같은 실패는 이미 예고된 것과 다름없었다. 우리나라의 인공강우 기술능력은 선진국의 73% 수준이라고 한다. 2017년부터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전용 항공기를 동원해 실험을 거듭했지만 강우에 시원하게 성공했다는 기록은 없다. 비를 내리게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인공비로 미세먼지를 씻겨내는 실험을 하겠다고 한참 더 나아간 것이다. 과학이 아닌 요행에 기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량과 더불어 대통령 지시량도 줄여야

기상청과 환경부가 무엇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실험을 실시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대통령이 직접 이를 지시했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전문성이 필요한 사안인데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라고 보기에는 과정과 결과가 너무 어설프고 부실했다. 만약 대통령의 지시를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처리했다면 때 아니게 레임덕 현상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 배경은 실적에 얽매인 청와대 참모, 부처 수뇌부의 조바심에서 찾는 게 합당할 듯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언급한 사안만이라도 즉각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자칫 미운털이라도 박힐까봐 시키는 대로만 따라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겹치면서 터무니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얼마 전 청와대 참모들에게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는 보고량을 줄이라고 업무 지시를 했다. “대통령 삶에 쉼표를 찍어 주자, 저녁이 있는 삶을 드리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보고량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대통령의 지시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 한 마디에 앞 뒤 가리지 않고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공직사회의 행태를 감안하면 한국판 CES’나 인공강우 실험처럼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의 지시가 잦다보면 일선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청와대만 바라본다는 것은 익히 경험한 바다.

대통령의 삶에 찍힌 쉼표, 그 여유가 정말로 실현될지,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조급함, 조바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졸속 행정날림 행정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만은 분명하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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