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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와 버스파업, 그리고 아마추어 정책
주 52시간 근무제와 버스파업, 그리고 아마추어 정책
  • 권의종
  • 승인 2019.05.1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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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면 정책 실패는 필연적 귀결...정책 만들 때 “제발 검토 좀 철저히 하시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버스 노조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14일 자정까지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15일 첫차부터 전편 파업을 강행할 기세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버스업체 노조가 주 52시간제 도입과 준공영제 등에 따른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밝혔다. 파업 찬반투표에서 96.6%의 압도적 찬성을 얻었다. 대체 운송수단 마련 등 정부가 비상수송대책을 시행했으나 시민의 불편과 불안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을 소집해 버스요금 인상 등을 당부한 바 있다. 버스업계의 인력 추가 고용을 위해서는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대해 지자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오히려 중앙정부 차원에서 버스업계 지원을 위해 교통시설특별회계 내에 ‘버스 계정’을 설치해줄 것을 원하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기획재정부가 반대다.

지역별 사정도 제각각이다. 서울·인천·부산 등 대도시는 대부분 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버스회사 수입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모자라면 지자체가 지원하는 구조다. 버스회사로서는 지자체만 바라보면 되는 느긋한 입장이다. 또 상당수가 1일 2교대제라서 주 52시간 이슈에 덜 민감한 편이다. 솔직히 버스요금 인상이 당장 급하지 않다.

준공영제 미실시 지역인 경기도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운전기사가 더 필요하고 임금 보전을 위해 요금 인상이 절실한 형편이다. 게다가 7월부터 주 52시간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버스업체 대부분이 경기도에 몰려 있다. 경기 시내버스의 경우 주 52시간을 맞추려면 적게는 3500명, 많게는 6000명이 넘는 운전기사를 새로 뽑아야 한다.

버스 총파업 '초읽기'...정부는 지자체에 버스요금 인상 당부, 지자체는 중앙에 재정지원 요구

경기도는 수도권 통합환승 할인제도가 운영 중인 점을 들어 서울시와 인천시도 같이 요금을 올릴 것을 희망한다. 경기도만 요금을 올릴 경우 인상된 수입이 세 곳으로 분산,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 말고도 요금 인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나눠 갖으려는 의도가 이면에 숨어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여당과 청와대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를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국토부 공무원들이 일을 엉망으로 해 지금의 버스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는 것 같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나눈 대화 중에 이런 속내가 들어났다.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나무라는 둘만의 대화가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당청이 공직사회를 대하는 오만한 시각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장면이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대로 과연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일처리를 잘못해 버스 파업이 발생된 걸까? 1년 전 상황을 보면 사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대통령 공약사항인 주 52시간 근로제를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버스업계에 적용되던 특례 조항도 없앴다.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해 노사합의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했던 단서가 삭제되었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주 52시간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당시에 버스업계는 주 52시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과 재원의 부족을 토로했다. 1년 뒤에 주 52시간을 준수하려면 전국적으로 신규 채용 버스기사만도 1만 5000명에 달하고, 이로 인한 인건비 소요가 조 단위에 이를 거라는 계산을 내놨다. 버스기사의 과로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면서 안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에 상응한 조치는 없었다. 그것만 봐도 국토부에만 책임을 지우는 건 온당치 못하다.

국토부만 나무라는 당청 인사들...정작 걱정할 사항은 청와대와 정부 간 경직된 수직 관계

정작 우려할 사항은 청와대와 정부 간 경직된 수직 관계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정책의 구상과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할 정부 부처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청와대의 눈치나 살피고 지시를 받는 상황에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지시와 주문은 청와대가 내리고 실행과 책임은 정부 부처가 감당하는 구도에서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정부 부처에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정책의 생산 부서로서 합당한 역할을 못하는 잘못이 가볍지 않다. 정책을 만들면서 “제발 검토 좀 철저히 하시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도 봄부터 그렇게 울어대는 데, 관료들에게는 그런 영혼과 투혼이 안 보인다. 정책 하나를 만들어도 심도 있는 검토가 필수적이다. 현상 진단, 문제점 파악, 개선의 당위성, 효율적 대안 등 타당성을 꼼꼼히 짚어가며 일일이 살펴야 한다.

정책 시행에 필요한 예산규모 추정과 조달 방안 등을 치밀히 따지는 등 경제성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거친 연후에 정책이 나오는 게 정도(正道)다. ‘검토는 디테일하되 결론은 심플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해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역기능이 속출하게 마련이다. 정책 수립에 온갖 정성, 인고의 노력,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어지는 이유다.

대선 공약이라고, 당청 지시라고, 장관 하명이라고 정책을 급하게 성안하면 안 된다. 덤벙대고 서두르면 정책 실패는 필연적이다. 지금 겪는 버스 파업의 경우 결국 해법이라고 나온 게 요금 인상이다. 수익자 부담만 늘리는 주 52시간제와 같은 정책이라면 누군들 못 만들겠나. 수익자 부담 증가로 귀결된 주52시간제의 역설, 제대로 살폈다면 이런 결말이 나올 리 없다. 퍽 아쉬운 대목이다. 앞으로나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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