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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에 무너지는 ‘금피아’...유재수 사태와 곯아터진 금융위원회
뇌물에 무너지는 ‘금피아’...유재수 사태와 곯아터진 금융위원회
  • 정종석
  • 승인 2019.11.3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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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유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영화 '블랙머니' 속 모피아의 교훈 새겨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태가 정국을 강타한 가운데 금융위원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관료 출신인 유 전 시장의 이력에서 돋보이는 것은 금융위 핵심요직인 금융정책국장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가 구속된 혐의의 대부분이 이 자리를 역임할 때 또는 그 앞 뒤로 일어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유 전 부시장이 역임했던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자리는 이른바 모피아(옛 재무부의 영문 이니셜 MOF와 이탈리아 범죄조직 마피아의 합성어)로 불리는 금융재무관료 세계에서 최고 노른자위 보직이다. 금융권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과거 재무부 이재국장이 바로 지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다.

과거 모피아의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재무부 이재국장이 부르면 은행장들은 언제나 즉각 달려와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은행장 소집권이다. 이재국 사무관도 심심찮게 국책·시중은행장, 기업 임원들을 호출했다.

사무실에 들어온 40대 후반~50대의 금융회사 고위 임원들은 새파란 20대 후반의 사무관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허리를 굽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시중은행장도 금융정책국장에게 면담을 쉽게 요청하기 어려웠다.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은행 증권 보험 금고 등 수천여개에 이르는 우리나라 모든 금융회사와 인사와 경영에 관한 대부분의 결정사안이 재무부 이재국의 사실상 '허가사항'이었다. 경제부처 가운데 가장 막강한 파워부처(powerful)가 재무부였다. 이재국의 막강한 권한이 바로 재무부(MOF)의 파워를 대변했다.

이재국장은 막강한 파워와 위세를 누렸지만 정작 장차관까지 출세한 관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재임 도중에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도 재무부 근무 중 옷을 벗었다가 나중에 여러 정권이 바뀌고 금의환향한 경우다. 그래서인지 재무부 안에서도 '이재국은 터가 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유재수 사태, 정권이 바뀌어도 모피아는 역시 뇌물로 무너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유 전 부시장도 이런 옛 이재국의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구속되는 불명예를 지고 말았다. 과거에도 현대차 비리같은 기업 뇌물과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면서 모피아가 궁색한 처지에 놓인 적이 있다. 상당수 인사가 구속돼 법정에 서는가 하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문제는 이들이 받고 있는 혐의 대부분이 뇌물수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사자는 물론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배공무원들을 크게 당혹스럽게 했다. 유재수 사태도 시작은 뇌물이었다.

유 전 부시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뇌물수수, 수뢰후부정처사,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그는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펀드운용사 등 금융 관련 업체들로부터 골프채, 항공권, 자녀 유학비용 등 금품과 향응을 제공 받은 혐의로 2017년 10월 경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받았다.

하지만 유 전 부시장은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고 금융위에서 명예퇴직했다. 이후에도 특감반 감찰은 더 진행되지 않았고 유 전 부시장은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이어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영전을 거듭했다.

수사가 계속되던 가운데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 무마를 윗선이 지시했다'는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진술이 나오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현재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무마 의혹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유재수 사태는 국가경제 주요정책의 입안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피아의 후예 금피아(금융위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부패가 현 정부에서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모피아는 역시 뇌물로 무너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모피아의 위기는 과거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도 있었다. 달러가 부족해 국가부도사태가 닥치고 있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당시 재경부 장관 등이 직무유기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유재수 사태 등 현실 속 금피아 스캔들, '블랙머니' 등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범죄와 비슷

그러나 현재의 금피아의 위기는 당사자들이 뇌물수수에 연루됐다는 것에 비추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최고 엘리트 공무원이라는 자부심과 국가경제를 책임진다는 경제관료의 자긍심도 한낱 허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최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는 IMF 이후 외국 자본이 한 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론스타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보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천억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을 보며 금융감독원,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당시 "해외 사모펀드가 헐값에 국내 대형은행을 삼켰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후 론스타는 2012년 1월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팔고 한국을 떠났다. 영화에선 수사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막 나가는 양민혁 검사(조진웅 분)가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의 자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는 과정을 담았다. 대한민국 최대의 금융스캔들이 일어났으나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시작부터 줄거리가 픽션임을 밝히고 있지만, 영화관을 나온 관객들은 “현실은 더 암담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2012년 론스타는 “한국정부가 매각을 방해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규모의 ISD를 제기한 상태다. 7년째 소송이 진행 중이다. 만일 패소 땐 거액의 혈세가 지출될게 뻔하다. 한번 잘못 꿴 실이 옷 한 벌을 통째로 망칠 수도 있는 형국이다.

영화를 관람한 참여연대ㆍ금융정의연대ㆍ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최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한 재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화내용이 상당 부분 허구라고 해도 몰입감이 큰 이유는 일정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다.

금융위원회 고위 간부로 재직 당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례를 비롯해 현실 속 금피아의 스캔들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범죄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최근 들어 금융범죄를 다룬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를 공감하는 관객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더우기 금융위는 청와대로부터 유재수에 대한 비리 통보를 받고도 징계없이 사직서를 처리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유재수 사태에 대해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나 금융위 대변인이라도 나서서 국민들에게 사과라도 한마디 할 법 하지만 이들이 내내 '꿀먹은 벙어리'라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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