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김태일 기자]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 측에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그러나 사내이사 후보로 지명한 대한항공 출신 김치훈 전 상무가 자진사퇴하며 "내 의도와 다르게 일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3자연합 진영이 귀퉁이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상무는 또 "3자연합(조현아·KCGI·반도건설)의 주주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논란의 단초가 될 전망이다. 당사자 동의 없이 무리한 이사후보 추천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KCGI는 17일 보도자료를 내 “한진그룹 경영진의 현 경영 위기에 대한 입장을 듣고 동료 주주, 임직원, 고객들의 의견을 나누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라고 제안 배경을 밝혔다.

이어 “가능한 일시를 2월 20일까지 답변해주기 바란다”며 날짜를 못박는 강수를 뒀다. 공개 토론이 성사되면 KCGI 측에선 강성부 대표와 신민석 부대표가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KCGI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낙후된 지배구조 탓에 회사 가치가 저평가됐고, 경영진이 경영 효율화를 위한 의지나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적 부진도 지적했다. 지난해 한진칼은 연결기준 당기순손실 2558억원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 “KCGI가 대한항공의 과도한 부채비율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한진칼 경영진이 실효성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본질적 의도는 따로 있어 보인다. 3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앞두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KCGI, 반도건설 등이 맺은 3자 연합 쪽으로 최대한 많은 주주의 지지를 끌어오겠다는 셈법이다.

공개토론 제안에 조 회장 측이 어떤 선택을 하든 3자 연합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조 회장 측이 3자 연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 회장이 주주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현재 3자 연합이 보유한 의결권 유효 지분은 31.98%, 조 회장 측 우호 지분은 33.45%로 불과 1.47%p 차이다. 주주 한명의 표가 절실한 상황에서 그룹 수장의 이미지 타격은 표 대결에서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조 회장 측이 제안을 수용해 공개토론이 성사되면 3자 연합은 주주 제안에 대한 정당성을 공개토론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노조를 비롯해 상당수 주주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주주 제안의 내용을 공개하고 음성적으로 진행되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지난 13일 3자 연합이 한진칼에 추천한 8명의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킴으로써 구성상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노조, “한진그룹 공중 분할 계획 절대 용납할 수 없다”...조원태에 힘 실어주기

한진그룹은 공개토론 요청에 ‘입장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상 거절한 셈이다.

앞서 한진그룹은 지난 14일에도 KCGI 강성부 대표를 발기인으로 하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으로부터 공개토론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노조는 17일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한항공·한진·한국공항 노조는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KCGI의 한진그룹 공중 분할 계획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해선 “복수심과 탐욕을 버리고 자중하라”고 했으며, 반도건설에는 “상도덕을 지키고 본업에 충실하라”며 경고했다.

노조는 3자 연합 핵심 축을 모두 비판하며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현 경영진에 지지를 보내는 모양새다.

‘조현아 연합’ 추천 이사 김치훈 전 상무 사퇴...자충수 되나

양쪽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3자 연합이 지난 13일 한진칼 측에 추천한 8명 이사 중 한 명인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가 17일 후보 사퇴 의사를 밝혔다. 3자 연합에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3자 연합이 ‘참심하고 전문성 있는 경영인’이라고 야심차게 홍보한 이사 중 한 명이 추천 나흘 만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3자 연합에 적지 않은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상무는 “3자연합이 주장하는 주주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며, 본인의 순수한 의도와 너무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오히려 동료 후배들로 구성된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 전 상무에겐 전문성을 둘러싼 문제제기가 있었다. 대한항공 임원 경력도 없는 데다 조 전 부사장 측근이라는 점에서 ‘대리인’ 의혹도 있었다.

이번 사퇴 의사 표명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털어 3자 연합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인지, 조 회장측에 지지를 보내는 것인지 주목된다. 또 실제 표 대결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결국 양쪽이 진행 중인 공방의 종착지에는 조 회장의 대표이사 연임이 있다. 다음 달 말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결판날 예정이다.

김태일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