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송이 코트의 추억과 공인인증서 폐지, 그리고 새로운 과제
천송이 코트의 추억과 공인인증서 폐지, 그리고 새로운 과제
  • 정종석
  • 승인 2020.05.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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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규제 만들면 없애는 것 어려운 현실 잘 말해줘...정부와 국회, 기업 발목잡는 입법 자제, 규제 혁파 나서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해외 소비자들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공인인증서 때문에 사고싶은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지난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 끝장토론회에서 ‘천송이 코트’를 언급, "우리나라에서만 요구하고 있는 공인인증서가 국내 쇼핑몰의 해외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공인인증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3~2014년 인기 리에 방송된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얘기할 때 이른바 ‘천송이 코트’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주인공 천송이(전지현)가 입고 나온 코트다.

당시 한류 열풍으로 ‘천송이’가 입었던 코트를 많은 중국인들이 구매하고 싶어 하지만 공인인증서 때문에 사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박근혜 대통령이 그대로 청와대 규제개혁 회의에서 전한 것이다.

이에 관계부처는 공인인증서 폐지와 규제 완화를 약속했고, 금융위원회는 2015년 3월 ‘전자금융감독규정’ 개정안을 의결,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제도를 폐지했다. 이와 함께 비대면 직불수단 이용 한도를 기존 3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렸다. 30만원 이상 고액 거래를 지원하는 다른 인증방법이 등장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공인인증서 폐지 속도가 더 빨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였던 2017년 공인인증서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불필요한 인증절차를 과감히 없애 당시 정부가 미진하게 추진했던 공인인증서 폐지를 실현한다는 방침이었다. 실제로 이번에국회에서 통과된 전자서명법 전부개정안을 내놓아 기존 공인인증서 제도와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공인인증서 폐지 못한 배경엔 보안업체의 로비-4,000원 발급비가 걸린 범용 공인인증서 막대한 수익 걸려있어

공인인증 제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7월 전자서명법 시행을 통해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국가적 정보화를 목표로 ‘전자정부’ 사업을 추진했다. 전자정부 사업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원거리에서 송금·결제를 할 수 있는 비대면 전자상거래였다. 이때 거래 상대방의 신원을 보증하기 위해 전자서명과 공인인증서가 도입됐다.

공인인증서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쇼핑몰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 큰 장점이 있었다. 1999년 도입된 공인인증서는 온라인에서 신원을 확인하거나 문서의 위·변조를 막기 위해 만들어져 민원서류 발급 같은 전자정부 서비스, 인터넷 금융 등에 활용됐다.

다만 발급이 번거롭고 관련 플러그인 기술인 ‘액티브X’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인인증서가 여러 가지 대체 수단이 생긴 지금에는 끔찍한 구세대의 족쇄가 되어버렸다.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는 한국인을 괴롭혀 온 대표적인 온라인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인터넷 뱅킹·증권·보험, 전자입찰, 인터넷 결제·납부, 주택 청약 등 생활 전반으로 확산돼 있다.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민원 서류를 발급받거나 국세청 자료를 검색할 때도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금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조회할 때도 공인인증서로 본인인증을 해야 했다. 이번에 정부가 공인증서 제도를 폐지,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지긋지긋한 규제가 드디어 풀리게 됐다..

그동안 온갖 폐지 주장에도 공인인증서를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은 다양한 이권이 개입된 보안업체의 로비, 그리고 4,000원의 발급비가 걸린 범용 공인인증서의 막대한 수익 때문이았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공인인증서를 작동하는 ‘액티브X’라는 플러그인 기술은 해킹 위험에 시달렸고 해외로부터의 온라인 구매도 불가능하게 했다. 공인인증서가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은 결과 관련 업계는 보안투자에 나설 유인이나 동기가 약했다. 새로운 인증체계가 들어와도 경쟁을 하기가 어려웠다.

공인인증서 외에 핀테크-빅데이터 등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걸림돌 많아...규제 틀어쥔 공무원들 대오각성해야

지난 21년 동안 공인인증서가 독보적으로 생활 속에 군림한 것은 독점적 지위로 형성된 기득권과 고착화한 ‘경로의존성’이 성역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민들이 속 터지는 공인인증서가 떠난 자리에 지문인식·블록체인 등 간편하고 안전한 인증 방식이 대를 이어갈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언제 또 이런 족쇄가 생길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2의 공인인증서외 같은 불편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서서히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폐지 논란에도 공인인증서 발급 건수가 매년 증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공공기관 등에서 본인인증에 공인인증서를 우선 수단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각급 공공기관은 아직까지도 공인인증서로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공인인증서 제도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행정의 규제완화 문제일 것이다. 이제 공무원들은 시장개입 유혹을 버리고 진정한 규제완화에 나서야 한다. 업계를 '시장의 룰'에 맡겨 승자를 결정토록 해야 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일상화하면 그것이 바로 규제가 된다. 나아가 민간의 기술개발과 시장 경쟁을 왜곡하는 등 부작용을 양산한다.

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존재해 왔다.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와 규제만능주의가 오랜 세월 국민들에게 불편을 안겨주고 있다. 일단 규제를 생산하면 이를 없애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이번 공인인증서 폐지가 웅변한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규제를 틀어쥠으로써 자신들의 파워를 기르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해 왔다. 일부 부처에서는 규제가 곧 이권과 밥그릇으로 통했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규제완화와 개혁을 큰소리로 외치지만 조금만 지나면 시들해지고 말았다.

우리 생활 주변에는 공인인증서 말고도 핀테크나 빅데이터 등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지를 계기로 규제를 틀어쥔 공무원들의 대오각성을 거듭 촉구한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와 21대 국회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입법을 자제하고 전면적인 규제 혁파에 앞장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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